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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의 경기도

신석기시대 돌도끼

신석기시대 돌도끼

광명 가학동 청동기시대 고인돌

광명 가학동 청동기시대 고인돌

경기도는 지리적으로 한반도 중앙에 위치하며, 해로와 육로를 이용하여 국토의 남부와 북부를 쉽게 연결할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에 자리하여 일찍부터 우리 역사의 중심무대가 되었다. 특히 한강, 임진강 등을 끼고 있어 농사짓기와 교통이 편리하여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모여 살았다.

1978년 연천 전곡리에서 동아시아 최초로 발견된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세계 구석기 연구의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2000년 이후 구석기 유적이 폭발적으로 발굴됨에 따라 구석기 시대 경기도에 살았던 구석기인의 생활상을 대략적으로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는 민무늬토기와 간석기가 보편적으로 이용되고, 청동기를 제작・사용한 시기로서, 고인돌과 같은 정형적인 무덤이 등장하고 농경이 주요 생계경제가 되었던 시기이다. 경기도에서는 주로 천변의 충적지와 산지 또는 구릉에 유적들이 입지하고 있다. 장방형의 주거지 유적과 고인돌을 중심으로 하는 분묘 유적이 대부분이다. 이밖에 초기철기시대의 유적들도 다수 확인되고 있다.

출처 및 사진제공 : 경기학연구센터

삼국시대의 경기도

고구려 호로고루 성벽

고구려 호로고루 성벽

백제토기

백제토기

경기도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기원전 1세기 무렵 백제가 하남위례성에 도읍하면서부터였다. 한강유역은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경계지역이었으며, 이곳을 차지하는 국가가 역사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처음 경기도에 정착한 국가는 백제였다.

백제는 서해 연안을 차지하고 중국과의 교통로까지 장악하여, 마한 등 여러 나라들이 개별적으로 누리고 있던 중국과의 교역창구를 독점하게 되었다. 이어 중부 내륙지역까지 영역을 넓혀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한 지역연맹체의 맹주가 되었다. 백제는 4세기 한강유역을 기반으로 오늘날의 호남지역까지 그 세력을 확대하고 고구려 평양성까지 공격하는 등 위세를 크게 떨쳤다.

5세기 무렵 고구려는 전성기를 맞아 한강유역에 손을 뻗쳤으며, 이후 삼국이 이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놓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다. 백제는 고구려의 남진으로 인해 도읍을 웅진(공주)로 옮기게 되면서 경기지역은 더 이상 백제의 중심지로 남을 수 없었다. 6세기 중반 백제와 신라가 연합하여 한강유역을 공략하기까지 70여 년간 경기지역은 고구려 세력 하에 놓여있었다. 오늘날 임진강과 한강 주위에는 고구려 관방유적들이 남아 있다.

백제와 신라는 한강 하류와 상류지역을 각각 차지했으나 신라가 하류지역까지 모두 점령하면서 양국의 동맹은 깨졌다. 임진강유역을 포함한 경기지역 전역을 장안한 신라는 이곳에 신주(新州)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삼국통일이 될 때까지 한강유역은 전쟁의 추이에 따라 혼란스런 상황이 지속되었다.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당나라 세력을 몰아낸 후 신라는 9주 5소경의 편제를 시행하였다. 9주 중 규모가 가장 큰 한산주는 지금의 경기도와 충청북도, 황해도를 포함하였다. 통일신라말의 혼란으로 신라의 지배체제가 한계를 드러내자 후삼국이 건립되어 각축을 벌였다. 한산주 관내에서도 장군과 성주를 지칭하는 호족들이 할거하게 되는데 궁예가 지역을 평정하고 후고구려를 세웠지만 왕건세력에 의해 제거되었다.

출처 및 사진제공 : 경기학연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