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5일 광복절, 광복 80주년을 맞아 특별한 발걸음이 한국 땅을 밟았다.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중국에서 머나먼 여정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이들은 바로 계봉우·왕산 허위·이동화 선생의 후손들이었다. 이들의 발걸음 하나하나에는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들의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계봉우 선생(1880~1959)
연해주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민족 교육자로, 북간도 지역에서 동포들에게 국어와 역사를 가르치며 민족정신을 지켰다.
계봉우 선생의 손녀 계따찌야나
할아버지는 늘 한국에 오시길 바라셨지만, 시대 상황이나 전쟁으로 인해 한국에 오실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 이렇게 초청해 주셔서
저와 제 아들, 사촌 친척들이 할아버지께서
그토록 그리워하신 땅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습니다. 입국
심사대에서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조국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할아버지는 늘 하얀 한복을 입으시고 정성스럽게
글을 쓰시던 모습으로 남아있는데, 나중에야 할아버지가 얼마나
위대한 교육자셨는지, 한국어와 한국 역사를 알리는 데 얼마나
헌신하셨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할아버지가 더욱 자랑스럽습니다.
조국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고, 그 뜻을 후손들과 함께 기리기 위한
이번 초청은 그 자체로 깊은 의미를 지녔다.
혈맥을 따라 이어진 애국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왕산 허위 선생(1854~1908)
의병 활동의 구심점으로, 13도 창의군의
군사장으로서 서울 진공작전을 진두지휘한 업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왕산 허위 선생의 손자 허블라디슬라브
저희를 따뜻하게 맞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할아버지를 직접 뵌 적은 없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서대문형무소에서 돌아
가셨을 때가 1908년이었는데, 제가 태어난 해가 1951년이니까요. 다만 아버지께서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지금까지도 한반도가 통일되지 못하고 분단된 모습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아시면, 마음 아파하시면서 아직도 독립운동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곧 한국이 통일되어 할아버지의 독립운동이 진정으로 완성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이동화 선생(1896~1934)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의열단의 단원으로, 독립운동가의 교관으로 독립군의 실전 역량을 키워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동화 선생의 외손녀 주용용
처음 초청을 받았을 때부터 기분이 좋아서 잠들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중국에 ‘가장 가까운 사이면 집으로 초대한다’라는 얘기가 있는데요. 관저로 초대해 주시니 저희를 가족처럼
생각해 주시는 것 같아 더욱 감사합니다. 할아버지가 계시던 역사의 현장에 있으니,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
께서 생전 품으셨던 뜻과 걸어오신 길을 보며 자유와 평등, 그리고
동포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저 역시도 제 일을 열심히 하면서 할아버지께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겠지요. 한국에서 마지막 생애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이 뭉클한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