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다. 이 안에는 삶의 지혜가 담겨 있고,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가르침이 있다. 오늘도 자연에 깃든 생명에 대해 말하고,
그 깊이를 전하는 선재 스님. 그의 수행이 우리 모두를 살린다.
글. 임산하 사진. 박충열
사찰음식에 담긴 지혜를 전하는 수행자
음식에는 요리하는 사람의 마음이 담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강단 있게 움직이고, 명확하게 만들어내는 그의 요리는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대단한 재료가 들어간 것 같지 않은데 음식을 맛본 심사위원마다 감탄을 쏟아내니, 많은 이가 ‘사찰음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가 바로 대한민국 1호 사찰음식 명장인 선재 스님이었기 때문이다.
선재 스님은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 2에서 단연 화제를 모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늘 이 순간, 현재에 최선을 다한다는 선재 스님은 그저 ‘내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말한 ‘내 일’은 수행자로서 사찰음식에 담긴 지혜를 전하는 일이었다. 이는 오래전부터 변함없이 그가 해오는 일이기도 하다.
“출가 후 수행을 하며 살아가던 중 간경화로 1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어요. 죽음이 예정되어 있다면 이를 받아들여야 했지만, 가장 마음에 걸리는 분이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보다 먼저 죽는 불효를 저지를 수 없어 제가 썼던 ‘사찰음식문화연구’ 논문을 꺼내 읽으며 자연 그대로의 음식, 제철 음식, 때에 맞는 음식, 즉 ‘약이 되는 음식’을 스스로 해 먹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몸이 가벼워졌고, 놀랍게도 병이 나았습니다. 그때 제가 직접 몸으로 겪은 사찰음식에 담긴 힘을 사람들에게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이후 그는 어린이집, 학교 등 어디서든 사찰음식에 대해 강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김치를 얻기 위해 어린이집에 찾아온 부모를 보고 요리를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요리 선생까지 자처하게 되었다.
“제가 죽음의 문턱에 갔을 때 음식을 할 줄 몰랐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릅니다. 저는 체질상 인삼을 먹지 못합니다. 그런데 만약 남이 음식을 해준다면 어떤 재료를 어떻게 썼는지도 모른 채 먹어야 할 테죠. 자기가 먹을 음식을 직접 만들 줄 아는 것은 삶을 지키는 일입니다.”
칡순물김치와 수박절임
우주의 생명을 지키는 일
“음식은 온 우주의 생명.” 선재 스님이 잊지 않고 하는 말이다.
하나의 작물이 자라기 위해선 땅과 물, 바람, 햇빛이 있어야 한다. 이들은 비바람을 견디며 뿌리내리고, 뜨거운 태양 아래 솟아나며, 흙 속 영양분을 먹고 자란다. 작물 하나에 온 우주의 생명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비바람이 부는 곳을 피하고, 시원한 그늘을 찾지만 농작물은 인내합니다. 또 우리는 흙에 미네랄이 아무리 많아도 직접 먹지 못하는데, 작물들은 흙의 좋은 에너지를 먹으며 자라나죠. 이 모든 것은 자연이 ‘나’ 대신 해준 일입니다. 우주의 생명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우리도 우주의 생명을 함부로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 자연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는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직결된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물어요. 꿀벌하고 우리하고 비교하면 누가 더 위대한 것 같냐고요. 그러면 아이들은 ‘우리’라고 대답하죠. 그렇다면 우리는 꿀벌보다 나아야 하는 거예요. 꿀벌은 꿀을 얻는 과정에서 열매를 맺게 해주는데, 우리는 어떻게 하나요? 꽃을 해칩니다.”
선재 스님은 농사를 지을 때에도 자연에 깃든 생명을 행복하게 하는 데 집중한다. 나만 먹기 위해 농사를 짓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농약을 치지 않으면 땅이 건강해지고, 공기가 맑아지며, 식물이 행복해진다. 행복하게 자란 식물을 먹는 사람도 기쁘다. 이 순환이 선재 스님 삶의 원동력이다.
양평 용문산 산나물 축제에서 강연 중인 선재 스님(양평군 제공)
선재 스님은 농사를 지을 때에도
자연에 깃든 생명을 행복하게 하는 데 집중한다.
나만 먹기 위해 농사를 짓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꿋꿋이 지켜가는 우리 음식 문화
선재 스님은 저서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에서 수행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스님 그리고 수행자는 완전히 깨달은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매일매일 밥을 먹는 것처럼 매일매일 수행하며 깨달은 마음을 하루하루 연장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출가했고, 그 행복을 나누는 방법이 바로 사찰음식이라는 선재 스님. 위법망구(爲法忘軀, 바른 길을 전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음)의 마음으로 사찰음식에 대해 전하는 그가 지금까지 해온 강연은 4,000여 회에 달한다.
이 모든 것은 선재 스님이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물려받은성품이 바탕이 되었다. 독립운동을 한 아버지는 한의학에 밝았고,
마을 사람들을 치료해 주곤 했다. 하지만 치료비를 받지 않아 사람들은 곡식과 작물로 마음을 전했다.
어머니는 그 식재료로 손님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어 내어주었다. 수라간 궁녀였던 외할머니의 솜씨를 물려받아 늘 정성스럽게 음식을 차렸다. 그 곁에서 선재 스님은 나눔을 배웠다. 그리고 독립운동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독립유공자 신청을 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꼿꼿함까지, 모든 것이 선재 스님을 키웠다.
어릴 적 배움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선재 스님은 어린이 음식 교육에 힘쓰고 있다. 우리가 오랜 시간 지켜온 음식 문화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다. 장과 김치 등 발효식품과 제피, 방아 등 우리 식재료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서도 노력한다.
“아이들이 우스갯소리로 저에게 물어요. ‘스님, 물 들어올 때 노 안 저으시나요?’ 그럼 저는 ‘내 노는 음식 문화를 지키는 일’이라고 답하죠. 이 문화에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집약돼 있어요. 꾸준히 지켜내기 위해 그 배를 띄우고 싶어요. 그러니 저와 함께 노를 저어 주세요.”
Tip.
선재 스님이 전하는
일상에서 ‘나’를 훈련하는 방법
‘나’라는 존재 돌아보기
무언가를 잘하고 싶다면 ‘나’라는 사람을 잘 보존하고 잘 관리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나’에 대해, ‘나’의 역할에 대해 공부해야 해요. 한번 돌아보세요. 잠은 하루에 얼마나 자고, 아침에 일어나 화를 내지 않는 시간은 얼마나 되며, 남을 비방하기보다 칭찬을 얼마나 했는지….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제때, 좋은 음식 먹기
동식물은 스스로 무얼 먹어야 하는지 알아요. 특히 뱀은 허물을 벗을 때면 염분이 필요해 장독대 옆에서 떨어진 장을 먹죠. 먹는 것을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우리 삶과 직결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끼니를 거르지 말고,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음식을 통해 배우기
요리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2할밖에 차지하지 않습니다. 어떤 식재료를 고르고, 어떤 메뉴를 구성하고, 누구에게 어떤 음식을 해줄 것인지, 어떤 순서로 만들고, 어떤 그릇에 어떻게 담을 것인지, 그리고 음식을 먹은 다음 설거지하는 것까지가 8할이죠. 그래서 음식을 만드는 것도 배움과 훈련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