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한 대 들고 맨몸으로 세계를 누빈 이가 있다.
프로그램 이름처럼 ‘걸어서 세계 속으로’ 들어간 김가람 PD다. 토요일 브라운관을 통해 시청자에게
세계 곳곳의 매력과 세계인의 일상을 담백하게 보여 주던 그가 이제 또 다른 세계를 비춘다.
우리가 외면하는 사이 처절히 망가지고 있는 ‘환경’이라는 세계다.
글. 임산하 사진. 박충열
우연히 환경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다
김가람 PD가 환경을 직시하게 된 것은 2020년 KBS 1 프로그램
<생로병사의 비밀>을 제작하면서부터다. 그때 ‘암 마을’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암 마을이란 말 그대로 암이 집단으로 발병하는 곳으로, 또래 사람들보다 적게는 5배, 많게는 20배까지 수치가 나타난다. 모두가 예상하듯 그 안에는 환경문제가 산재해 있었다. 그중 한 곳이 충청도 지역에 자리한 소각장 밀집 지역이었다. 반경 2km 이내에 소각장이 3개 있고, 산업폐기물이 500톤씩 소각되었다. 주민이 암에 걸리고, 다이옥신이 초과 검출되어 제재를 받았음에도 소각량은 계속 늘어났다.
“당시 주민들은 아프다고 말한 지 20년이 넘었다고 했어요. 그분들이 보여 준 사진을 보니 마을 위로 핑크색 연기가 올라가는 거예요. 그때 생각했죠. 만일 제가 근무하는 KBS 앞이나 국회, 여의도공원에 이런 연기가 뿜어져 나오면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까. 그런데 이 마을의 문제에 대해서는 단순히 어르신들의 소란 정도로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때 내린 결론은 ‘내돈내산’에 큰 오류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전에는 환경문제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어요. 일회용품을 쓰든, 물건을 많이 버리든 저는 제 돈을 내고 적법하게 샀고, 적법하게 버렸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사실상 그렇지 않다는 거죠. 쓰레기를 멀리 보낼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그로 인해 누구를 아프게 하고, 심지어는 누군가를 사망에 이르게 한다면 그건 값을 치렀다는 말로 어물쩍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거죠.”
나이지리아의 ‘전자제품 무덤’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인 환경문제
환경문제에 대해 김 PD는 시야를 넓히기 시작했다. <환경 스페셜> PD가 되어 세계 곳곳에 산재한 문제를 마주했고, 울트라 패스트패션 문제를 지적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를 기획했다. 시작은 ‘우리가 입던 옷은 어디로 갈까?’라는 궁금증이었다. 그리고 ‘상상의 영역’이던 ‘쓰레기 행선지’가 상상 이상으로 끔찍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나 수도 아크라에는 서아프리카 최대 중고 의류 시장 ‘칸타만토’ 가 있어요. 전 세계에서 매주 1,500만 개의 헌 옷이 수입되는데, 이곳 가까이의 ‘옷 무덤’ 위에서는 소들이 먹을 것을 찾죠. 또 끝없이 쌓이는 옷을 태우느라 연기가 자욱해요. 해변으로는 수입 중고 의류들이 떠밀려 오고요.”
김 PD에게는 이 모든 것이 부당하게 느껴졌다. 경제의 풍요 속에 이를 누리는 사람과 치우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 게다가 그가 목격한 일들이 결코 ‘특종’이 아니라는 것도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기존 인권 단체 보고서나 외신 기사, 그리고 환경 단체의 SNS 등을 통해 수없이 나온 내용이죠. 현장에 가면 힘들게 찾지 않아도 자료 화면에서 보던 10여 년 전과 똑같은 모습을 지금도 촬영할 수 있어요. 이후 ‘아이를 위한 지구는 없다’에서 다룬 나이지리아 라고스의 ‘전자제품 무덤’에서 전선을 태우며 유독가스를 흡입하는 아이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배터리의 재료인 코발트를 캐다가 광산이 무너져 죽거나 다치는 아이들까지 이 모든 문제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에 알려졌어요. 그런데 10년이 지나 제가 현장에 가 봐도 여전히 문제는 진행 중이었죠.
경기도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함께하는 환경 실천에는 힘이 있어요. 사용하지 않는 이가 많아지면 일회용 컵 생산을 줄이는 시스템도 운영될 테고요. 많은 이가 환경 실천에 동참한다는 건 기업의 생산이나 정부 정책에도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환경 실천은 노후를 위한 일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김 PD에게 환경문제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자신처럼 환경에 관심이 없던 이에게도 말을 건네고 싶어 기후 위기 르포 <우리가 말하지 않는 지구>를 출간했다. 책 말미에 그는 말한다. “환경이 중요한 화두가 아닌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꿈꾼다”고.
“이는 기후 위기가 사라진 세상, 절대적으로 해결된 완벽한 세상을 그린다는 것이 아니에요. 경제성장과 환경문제가 결코 상반된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환경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생산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변수가 될 거예요. 한 예로 국내 농작물 재해보험 가입자에게 지급된 보험금은 10년 만에 8배가 증가했어요. 해마다 집중 호우, 폭염 등 자연재해가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죠. ‘몇백 년 만의 폭우와 한파’는 우리가 구축해 놓은 인프라를 무너뜨릴 것이고, 이는 우리가 계속 부담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되겠죠. ‘환경’과 ‘경제’는 결부돼 있어요. 그러니 우리는 기온을 높이지 않기 위해 합심해야 해요.”
환경을 지키는 것이 노후를 지키는 일이라고 말하는 김 PD. 그는 경기도의 ‘기후행동 기회소득’ 정책에 박수를 보낸다.
“실은 환경 실천에 대한 ‘작은 일’에 대해 회의적이었어요. ‘내가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세상이 변할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죠. 그런데 환경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이러한 실천은 수요를 바꿀 거예요. 경기도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함께하는 환경 실천에는 힘이 있어요. 사용하지 않는 이가 많아지면 일회용 컵 생산을 줄이는 시스템도 운영될 테고요. 많은 이가 환경 실천에 동참한다는 건 기업의 생산이나 정부 정책에도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저서 <우리가 말하지 않는 지구>를 출간한 김가람 PD
Tip.
김가람 PD의 일상 속 환경 실천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 사용하기
쉽고 편하게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방법이에요.
생수 구매 No! 수돗물 마시기
노후화된 배관이 아니라면
수돗물도 안전해요.
여행지 ‘쇼핑 리스트’ 줄이기
여행 동선의 자유를
함께 만끽해 봐요.
내구성 좋은 물건 구매하기
만듦새가 좋은 제품으로 오래 쓰는 게 중요해요.
대중교통 이용하기
내 삶에 차가 꼭 필요한지
따져보는 것도 필요해요.
소비를 줄이며 가붓해진 일상
‘물건을 함부로 들이지 않는다.’ 일상 속 환경 실천에 여념이 없는 김 PD의 실천 모토다.
“환경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부터는 물건이 만들어지기 위해 들어갔을 자원과 그걸 버렸을 때 곳곳에 남는 흔적을 생각하게 됐어요. 생태적 문제에 대한 부담이라고 할까요. 물건을 사는 것에 대한 즐거움도 많이 줄었어요.”
‘예쁜 쓰레기’는 이제 그냥 ‘쓰레기’가 되었고, 그래서 그는 물건을 살 때 보다 꼼꼼히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단순한 소비를 지양하는 것이다. 2020년, PD로서 10년간 열심히 일한 자신에게 차를 선물하고 싶어 새 차를 예약했다가 취소한 것도 같은 이유다.
“차를 타지 말자는 건 아니에요. 각자 삶에서 차는 중요한 요소 이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왜 이 차를 사고 싶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남들 눈에 근사해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저까지 굳이 소비할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죠.”
김 PD는 여전히 ‘생각의 전환’을 겪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가 말하지 않는 지구>라는 책을 쓴 것도 ‘선언’이 아닌 ‘제시’였다는 그는 저널리스트로서 자신의 생각에 균열을 낼 준비가 되어 있다. 그 균열이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쓰레기를 멀리 보낼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그로 인해 누구를 아프게 하고,
심지어는 누군가를 사망에 이르게 한다면
그건 값을 치렀다는 말로 어물쩍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거죠.
수출을 기다리는 옷들이 쌓인 헌옷 집하장
Tip.
미세먼지가 걱정된다면,
대기질정보 알림톡서비스를 신청하세요!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이 ‘대기질 동네 예측 서비스’를 시작했다. 수원·용인·고양·화성·남양주·광주시 등 6개 시에서 시범 운영하며, 같은 시군 안에서도 주거 환경, 교통량, 산업시설 분포, 기상 조건 등에 따라 대기질이 달라지는 점을 고려해 생활 반경에 밀착된 동 단위 정보를 제공한다. 동네예측 서비스는 별도의 회원가입 없이 연구원이 운영하는 ‘대기환경정보서비스 누리집(air.gg.go.kr)’을 통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