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우리 집이 된 한국, 그렇게 나의 인생사에 들어온 한국사 벨랴코프 일리야 교수

이제는 우리 집이 된 한국,
그렇게 나의 인생사에 들어온 한국사
벨랴코프 일리야 교수

2026. 03

“Где родился, там и пригодился.” ‘태어난 곳이 곧 집이다’라는 뜻의 러시아 속담이다.
하지만 여기, ‘고향’과 ‘집’을 구분하는 러시아 출생의 한 사람이 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을 ‘집’으로 여기게 된 벨랴코프 일리야 교수다.
JTBC <비정상회담>에서 날카로운 시각과 뛰어난 언변으로 두각을 나타냈던
그는 이제 수원대학교 러시아언어문화과 교수로서 한국과
러시아 문화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글. 백미희 사진. 김규남
우연한 선택으로 뿌리내린 한국 생활
러시아에서 태어나 한국에 정착하고 한국 국적까지 취득 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명확한 계기나 거창한 이유를 묻는다. 하지만 그에게 장황한 서사는 없었다. 그저 갈림길에 설 때마다 자연스러운 선택이 뒤따랐을 뿐이다.
그가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건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집에서 가까운 러시아 극동국립대학교 한국학과에 입학한 게 시작이었다. 한국에 대단한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전공을 따라 졸업 후 기회가 생겨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이후 연세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에서 직장까지 구했다.
스무 살 이후 삶의 모든 것이 한국에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로 돌아가기보다는 ‘여기서 계속 살아갈 것 같다’는 생각에 일리야는 귀화를 결심했다. 그리고 2016년, 한국 국적을 취득해 한국인이 되었다.

자신이 쓴 책을 들고 환히 웃는 일리야 교수
언제나 되새기는 말, 역사 속에 답이 있다
일리야 교수의 이야기가 담긴 SNS 피드를 보면 유독 눈에 띄는 게 있다. 바로 ‘태극기’ 사진이다. 그는 한국의 국경일마다 SNS에 태극기를 올리며 그 의미를 되새긴다.
그는 2024년 경기도에서 진행한 ‘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1919년 당시 경기도 양주군 가납리에서 일어난 ‘가래비 3·1운동’ 이야기를 다룬 영상 제작에도 참여했다. 메시지는 단 하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것. 그에게도 3·1운동은 먼 나라 얘기가 아니었다.
“제가 자라온 블라디보스토크도 항일 투쟁이 펼쳐진 곳 중 하나였어요. 러시아에서 한국학을 배우며 우리 땅에서도 항일 투쟁이 있었다는 것을 인지했죠. 그때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헌납하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활동한 최재형 선생에게 관심을 가지며 3·1운동의 의미를 조금씩 알아가게 됐어요.”
현재 대학에서 러시아어권 학생들에게 ‘한국 역사’에 대해 강의할 정도로 지식이 깊은 그지만, 한때는 역사에 관심이 없는 학생이었다. 그러다 한국에서 살아가며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역사가 왜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고.
“정치인, 정당이 어떤 행동이나 발언을 하면 그걸 이해하기 위해 과거를 되짚어 봐야 했어요. 맥락을 봐야 이해가 되더라고요. 역사도 이와 같아요. 우리가 누구인지,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상황이 어떻게, 왜 발생한 건지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공부해야 해요. 그리고 문제가 있을 때 극복하고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도 역사가 필요하죠. 역사 속에 답이 있어요. 이미 우리가 겪어온 일이거든요.”

한국어를 배우며 더 활발해진 소통
그는 여러 방송에서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 이주민 정책이나 한·러 관계, 한국사 해석 등 어려운 주제를 풀어낸다. 오랫동안 공부하고, 또 고민해 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SNS에서도 일상이나 정치 이슈부터 학술 논쟁까지 한국어로 실시간 토론을 즐기는 그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의 삶이 한국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었던 건 이처럼 뛰어난 언어 구사력 덕분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유창했던 건 아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공부할 때는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한계가 드러났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언어의 벽’을 느꼈다고.
“학교에서 수업을 듣거나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언어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실제 업무에서는 한계가 느껴지더라고요.”
이후 조금씩 성장해 현재에 이른 그는 외국 생활을 할 때는 언제나 언어가 영순위라고 강조한다. 한국 생활을 힘들어하는 외국인들이 겪는 문제의 뿌리를 파고 들어가면 ‘언어’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고. 꾸준한 노력 덕분에 그는 한국어로 된 책도 여러 권 출간했다.
특히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는 우리가 러시아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한국에 살면서 들었던 러시아에 대한 질문들, 그에 대한 답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 지난해에는 러시아문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러시아의 문장들>도 펴냈다. 언어와 문화 그리고 문학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운수 좋은 날’, ‘B 사감과 러브레터’, ‘그리운 흘긴 눈’ 등이 실린 현진건의 단편집을 러시아어로 번역해 출간하기도 했다.
독서에 관심이 많다 보니 경기도의 ‘천권으로(路)’ 비전 선포식에도 참여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좋은 정책이라며 엄지를 치켜든다.
러시아어로 번역해 출간한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경기도가 외국인 챙기는 데 진심’이라고 입을 모아요.
AI 기술을 활용해 언어의 벽이 더 높은 이주민을 위한 시스템을 만든다니 환영할 일이죠.
이런 정책이 경기도에서 더 나아가 전국으로, 전 국민에게 확대된다면 더 반가울 것 같아요.”

경기도 이주민 정책에서 발견한 희망
언어능력이 본인이 갖춰야 할 소양이라면, 한국에 터를 잡고자 하는 이들에게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은 정책의 역할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2026년 5월 오픈 예정인 경기도의 ‘이주민 포털’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이주민들의 생활 편의를 높이기 위해 분산된 이주민 정책 정보를 통합하고, 실시간 다국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경기도가 외국인 챙기는 데 진심’이라고 입을 모아요. AI 기술을 활용해 이주민을 위한 시스템을 만든다니 환영할 일이죠. 이런 정책이 경기도에서 더 나아가 전국으로, 전 국민에게 확대된다면 더 반가울 것 같아요.”
이주민을 위한 정책이 다양해지는 데는 이주민 개개인의 역할이 크다. 그 안에는 일리야 교수의 몫도 있을 것이다. 그의 삶은 우연과 적응의 연속이었지만, 그 안에서 그는 자신만의 리듬과 평온을 찾아냈다. 그리고 마침내 묻는다. 제도와 언어, 역사의 틈을 잇는 일은 이제 우리 각자의 몫이 아니겠냐고. 그의 시선이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는 일리야 교수의 메시지

Tip.

일리야 교수가 말하는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우리가 어떤 민족인지, 지금 어떤 상황에 이르렀는지 이해하고 뿌리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미 일어난 실수를 다시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 상황을 역사적으로 되짚으며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역사 왜곡에서 벗어나기 위해
“역사는 승리자의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립’이라는 단어로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왜곡을 피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배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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