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는 만세 운동의 함성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107년 전 경기도 전역에 울려 퍼진 ‘대한 독립 만세’의 외침,
그 간절한 염원을 다시 마음에 새기고 독립의 역사를
굳게 이어 더 큰 평화와 번영의 길을 열어가고자 한다.
그날의 용기를 되살려 내일의 희망을 키우는 3월,
뜨거운 만세 운동을 기억하는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을 찾아가 보자.
글. 임산하 사진. 박충열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경기도 화성시 만세구 향남읍 제암고주로 34, 031-5189-1950
<나의 경기도>에서만
들을 수 있는
역사학자 심용환의
경기도 화성 독립운동 이야기
지금, 경기도의 시간을 열어보세요!
화성에서 울려 퍼진 함성, 우리가 몰랐던 100년 전 그날의 이야기.
재생버튼을 누르면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강렬한 외침이 머무는 땅
“하나의 작은 돌은 쓰임이 적지만, 이들이 모이면 거대한 벽이 된다.
한 줄기 억새의 흔들림은 연약하지만, 군집의 억새밭은 큰 파도를 만들어낸다.
한 줌의 물은 작은 바람에도 흩날리지만, 이들이 모이면 넓은 하늘도 담는다.”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을 설계한 건축가의 말이다. ‘돌’과 ‘풀’과 ‘물’처럼 비록
작아 보일지라도 뭉치면 큰 힘을 낼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아낸 건축물에는
하나 되어 뜨겁게 외쳤던 독립운동가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하다.
두려움 속에서도 거친 손에 희망을 부여잡았던 그들.
그들이 걸었던 숭고한 길을 따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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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전시실의 체험형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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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하게 대항하며 스스로 써 내려간 역사
1919년 3월 1일, 경기도 화성에서도 격렬한 만세 운동이 벌어졌다.
강렬한 자주 독립의 열망 속에 강인한 저항이 불붙었다.
그러나 일제의 만행은 계속되었다. 주민들의 저항에도 살상을 서슴지 않았고, 1919년 4월 15일 ‘제암리·고주리 학살 사건’을 자행했다. 그럼에도 순국선열들의 뜻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고, 상설전시실에서는 그 치열한 항일 투쟁의 역사를 마주하게 된다. 어린이전시실도 마련되어 있어 누구나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들의 염원은 여전히 여기에 남아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상설전시실에서는 일제의 만행과 치열한 항일 투쟁의 역사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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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현장을 찾아 조사했던 스코필드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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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군인들이 교회를 둘러싸고
종이 창문 너머로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그제야 청년들은 명령의 진의를 알게 되었다.
그들 대부분이 죽거나 다쳤는데도 악마 같은 군인들은
불에 잘 타는 초가지붕과 목조건물에 불을 질렀다. (중략)
이것이 제암리에서 벌어진
피의 대학살 사건의 간략한 기록이다.”
일본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린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선교사의 보고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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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 23인의 발굴 유해가 안장된 합동 묘로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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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을 기리는 조형물 ‘자유롭게 저 하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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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순국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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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걸고 흔들었던 태극기, 그 고귀한 뜻
참혹한 학살 사건의 옛터에는 이제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이 자리한다. 죄 없는 주민이 스러져 간 이곳에는 그 희생을 기리는 기념탑과 기념비 등이 세워졌고, 순국선열이 ‘자유롭게 저 하늘을’ 날아다니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조형물이 그들을 추모한다. 23개의 크고 작은 돌기둥은 순국선열들의 혼을 담은 추모비이며, 높이 솟은 기둥은 무한한 자유를, 기둥의 원(○)은 시공간을 초월한 무한한 미래 세계를 상징한다.
뒤편 합동 묘로 올라가는 길에는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인다.
그날 하늘 위로 높이 들었던 선열들의 태극기가 여전히 휘날리는 듯하다.
기념관 내 전시관 복도에 놓인 빛의 통로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찬란한 빛
그날의 외침과 희생은 빼앗긴 들에 봄을 가져다주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길 위에서도 희망의 빛을 잃지 않았던 민족의 의지가 피워낸 봄이다.
그리고 봄처럼 밝은 빛이 지하의 기념관 내부를 밝힌다.
이 빛은 건축적 미학과 역사적 의미를 함께 담아낸다.
이곳은 일상을 즐길 수 있는 지상의 공원과
독립운동의 역사를 소개하는 지하의 기념관을
빛과 어둠이 대비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바로 위에는 평화로운 일상이 있음을, 그러나 결코
그 일상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되새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