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찌개의 전설 의정부 경원식당

동두천, 송탄, 파주, 의정부. 부대찌개로 유명한 지역이다.
부대찌개는 경기도가 만든 기적의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중 의정부를 대표하는
부대찌개 노포가 바로 경원식당이다.

글. 박찬일 사진. 전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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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간 지켜온 한결같은 맛 먼저 질문부터 하고 가자. 부대찌개는 한식일까, 아닐까? 보통 퓨전이라고 대답할 듯하다. 나는 한식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말고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식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군이 오래 주둔한 일본에도 이런 음식은 없다. 오키나와 등지에 미국 재료를 약간 쓴 퓨전 음식이 있는데, 그들 역시 일식의 범주에 넣는다. 어쨌든 부대찌개는 한식으로 보자. 김치, 파, 마늘을 듬뿍 쓰고 고춧가루를 넣지 않나. 전형적인 한식이다. 게다가 사실상 한국인만 먹으니까.
의정부 경원식당은 의정부 부대찌개의 산증인이다. 가게를 연 분은 어머니 김명남(79) 씨다.
“의정부 일대에만도 미군 부대가 많았죠. 1군단이 있고 비행단, 탄약 부대 등 미군 부대가 많았어요. 동두천 전방 사단에서도 오고요. 뭐, 정품이 없었죠.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걸 썼어요. 지금은 다 정식 수입품이나 국산이죠. 부대에서 나오는 건 전혀 없어요.”
부대찌개 원조는 꿀꿀이죽이라고 한다. 힘들고 배고픈 시절, 미군 부대에서 나온 ‘잔반’을 끓여 먹었던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둘은 다른 음식이다. 꿀꿀이죽은 레시피가 없다.
잔반이나 부정 반출물에 흔한 밀가루를 풀어 먹었다. 그때그때 달랐다.
하지만 부대찌개는 의정부 미군 부대에서 나온 재료를 한국식으로 만든 ‘엄연한’ 음식이다. 가게마다 레시피도 있다. 경원식당은 44년이 흐르는 동안 거의 변하지 않는 조리법을 고수한다. 지금은 부대찌개 골목이라고 하는데, 과거에는 오뎅식당과 경원식당 정도만 영업했다. 점차 늘어 이제는 많은 가게가 노포 축에 들어간다. 언론 덕이 컸다. 값싸고 맛있는 이 요리가 신문, 방송을 타자 전국에서 먹으러 왔다. 우리 입맛에도 딱이다. 이제 부대찌개는 재료를 사서 집에서도 많이 만들어 먹는다. 밀키트 중 부동의 1위가 부대찌개라고 한다. 부대찌개는 가히 한국 음식사에서 혁명이었고, 의정부·동두천·파주·송탄·오산 등 미군이 주둔하는 경기도가 만들어낸 기적의 유행이었다. 이 음식에는 현대사의 우여곡절이 있다. 이처럼 부대찌개는 슬픈 음식에서 당당히 우리 음식사의 주역이 됐다. 놀라운 일이다.

경기옛길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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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국물 맛의 원천은? 경원식당은 원래 체신부 공무원이었던 김 씨의 아이디어로 시작했다. “제가 지역민이다 보니 아는 사람이 많았어요. 체신부 공무원들이 우리 가게에 와서 회식도 하고 모임도 했죠. 맛있다고 소문이 나다 보니 의정부 시내에서는 다 우리 가게를 알게 됐지요.”
지금은 별로 없지만 과거에는 계 모임이 흔했다. 상호부조의 전통이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우정을 다진다. 그때 부대찌개를 먹곤 했다. 싸고 맛있으니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단백질이 부족한 시대에 최고 영양 공급원이었다. 햄과 소시지를 듬뿍 넣어주니 더 좋아했다.
“우리 집은 햄, 소시지 등 기본 재료를 미군 부대에서 받았어요. 나머지는 순 한식이에요.”
이 식당 주방에는 아주 커다란 육수 통이 여럿 있다. 멸치를 일일이 끓여서 만든다. 깊은 맛의 원천이다. 미군 부대에서 재료가 나오지 않은 지는 오래되었다. 개업 초창기에는 주로 미군 부대 주방, PX 물건을 썼다. 근처 의정부시장에도 미군 부대 물건이 지천이었다. 거기서 사오기도 했다. 그러다 상황이 바뀌었다. 세무 당국, 보건 당국의 단속이 철저해지면서 ‘야미’라고 하던 반출물을 쓰기 힘들어졌다. 그 무렵 미군 부대에서도 반출을 칼같이 막기 시작했다. ‘어둠의 경로’가 점차 사라져갔다. 1990년대 들어서는 사실상 정식 경로로만 사서 쓰게 됐다. 수입도 많아지고, 국내 생산품도 질이 좋아졌다.

경기옛길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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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찌개는 여러 가지 스타일이 있다. 파주는 대파를 많이 넣고, 의정부는 김치를, 동두천은 여러 가지 육가공을 섞어 쓰고, 송탄과 오산은 칠리콩을 넣기도 한다. 각자 다른 방식의 부대찌개 조리법이 서로 경쟁하고 있다. 이 또한 놀라운 일이다.
경원식당은 아들 황승현 씨에게 대물림되고 있다. 찌개 한 냄비를 청했다. 국물이 시원하고 깊다. 햄과 소시지 등도 푸짐하다.
너무 기름지지 않으면서도 간결하다. 있을 것 있고 지나친 게 없다. 이게 좋은 부대찌개라고 생각한다. 한국 현대사의 아픔에서 당당히 대중적 미식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부대찌개.
아이러니한 음식에서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존재로 바뀌었다. 한국이 재미있는 건, 이런 음식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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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누군가는 ‘글 쓰는 셰프’라고 하지만 본인은 ‘주방장’이라는 말을 가장 아낀다.
오래된 식당을 찾아다니며 주인장들의 생생한 증언과 장사 철학을 글로 쓰며 사회·문화적으로 노포의 가치를 알리는 데 일조했다.
저서로는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이 있고 <수요 미식회> 등 주요 방송에 출연했다.

경원식당 경기도 의정부시 둔야로49번길 21
문의 0507-1420-5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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