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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의 딸, 무대와 세상을 밝히다 배우 홍지민
vol.194
변화 경기 人터뷰
독립운동가
의 딸, 무대와 세상을 밝히다 배우 홍지민2025. 08 무대 위에서 쏟아지는 조명 아래,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뮤지컬 배우 홍지민. 그녀의 삶에는 예술가로서의 열정과 더불어, 독립운동가의 딸로서 이어온 도전과 나눔의 역사가 깊게 흐르고 있다. 글. 백미희 사진. 김경수 꿈과 성공, 좌절과 성장의 여정 1960~1970년대 미국 음악 산업을 배경으로, 여성 보컬 그룹의 성공과 갈등, 성장과 화해를 그린 작품인 뮤지컬 <드림걸즈>.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폭발적인 가창력과 강한 자존심을 지닌 메인 보컬 에피 화이트가 있다. 2009년 뮤지컬 <드림걸즈>로 한국 뮤지컬대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홍지민 배우에게 있어서 에피 화이트 역할은 마치 페르소나 같다. “제가 지금은 경기도에 살고 있지만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어요. 어린 시절부터 배우와 가수의 꿈을 키우며 상경해서 치열한 시간을 보내왔어요. 결국 뮤지컬 배우로서 자리를 잡고 결혼도 했죠. 다양한 일을 경험하며 꿈을 향해 도전하고 성장하며 삶의 다양한 굴곡을 겪은 에피 화이트와 저의 삶이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홍지민 배우는 1996년 뮤지컬 <애랑과 배비장>으로 데뷔한 이후, <드림걸즈> 이외에도 <맘마미아>, <브로드웨이 42번가>, <스위니토드>, <그리스> 등 다양한 작품에서 주연을 맡으며 30년 넘게 무대와 방송을 오가고 있다. 그는 지난해에 태권도 4단도 취득했다. 태권도 4단은 사범(지도자) 과정에 도전할 수 있는 성인태권도 레벨이다. 어린 시절부터 태권도를 배워온 홍지민 배우는 이를 통해 체력뿐 아니라 마음의 힘도 키울 수 있었다. 그리고 어린 딸에게 태권도를 배울 것을 권유한 이는 바로 아버지 홍창식 선생이었다. 홍지민 대한민국 대표 뮤지컬 배우이자, 독립유공자 홍창식 선생의 딸로 <드림걸즈>, <맘마미아>, <브로드웨이 42번가>, <스위니 토드>, <그리스> ... 딸, 무대와 세상을 밝히다 배우 홍지민2025. 08 무대 위에서 쏟아지는 조명 아래,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뮤지컬 배우 홍지민. 그녀의 삶에는 예술가로서의 열정과 더불어,
독립운동가
의 딸로서 이어온 도전과 나눔의 역사가 깊게 흐르고 있다. 글. 백미희 사진. 김경수 꿈과 성공, 좌절과 성장의 여정 1960~1970년대 미국 음악 산업을 배경으로, 여성 보컬 그룹의 성공과 갈등, 성장과 화해를 그린 작품인 뮤지컬 <드림걸즈>.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폭발적인 가창력과 강한 자존심을 지닌 메인 보컬 에피 화이트가 있다. 2009년 뮤지컬 <드림걸즈>로 한국 뮤지컬대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홍지민 배우에게 있어서 에피 화이트 역할은 마치 페르소나 같다. “제가 지금은 경기도에 살고 있지만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어요. 어린 시절부터 배우와 가수의 꿈을 키우며 상경해서 치열한 시간을 보내왔어요. 결국 뮤지컬 배우로서 자리를 잡고 결혼도 했죠. 다양한 일을 경험하며 꿈을 향해 도전하고 성장하며 삶의 다양한 굴곡을 겪은 에피 화이트와 저의 삶이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홍지민 배우는 1996년 뮤지컬 <애랑과 배비장>으로 데뷔한 이후, <드림걸즈> 이외에도 <맘마미아>, <브로드웨이 42번가>, <스위니토드>, <그리스> 등 다양한 작품에서 주연을 맡으며 30년 넘게 무대와 방송을 오가고 있다. 그는 지난해에 태권도 4단도 취득했다. 태권도 4단은 사범(지도자) 과정에 도전할 수 있는 성인태권도 레벨이다. 어린 시절부터 태권도를 배워온 홍지민 배우는 이를 통해 체력뿐 아니라 마음의 힘도 키울 수 있었다. 그리고 어린 딸에게 태권도를 배울 것을 권유한 이는 바로 아버지 홍창식 선생이었다. 홍지민 대한민국 대표 뮤지컬 배우이자, 독립유공자 홍창식 선생의 딸로 <드림걸즈>, <맘마미아>, <브로드웨이 42번가>, <스위니 토드>, <그리스> 등 다양한 뮤지컬과 드라마, 영화, 예능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세 딸의 아버지 홍지민 배우의 아버지 홍창식 선생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 홍창식 선생의 딸로 <드림걸즈>, <맘마미아>, <브로드웨이 42번가>, <스위니 토드>, <그리스> 등 다양한 뮤지컬과 드라마, 영화, 예능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독립운동가
이자, 세 딸의 아버지 홍지민 배우의 아버지 홍창식 선생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독립유공자다. 그는 일제강점기 시절, 16세의 어린 나이에 독립운동 조직인 ‘백두산회’에 가입해 항일운동에 투신했다. 백두산회는 일제에 맞서 독립을 위해 조직된 비밀결사로, 이곳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아버지는 일제의 감시와 탄압 속에서도 독립운동을 이어가다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되었고, 옥중에서 해방 소식을 들었다고 해요. 그래서 광복절은 저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날이에요. 광복절 이후 아버지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결국 어머니를 만나 지금의 저도 태어났으니까요.” 홍지민 배우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풍류를 아는 멋쟁이였다. 영문과출신으로 유창한 영어 실력을 자랑했고, 음악과 책을 사랑하는 아버지. 책이 너무 많아서 이사할 때마다 무거운 책을 이고 지고 다니느라 고생도 많았다. “스무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사실 독립유공자보다는 ‘멋을 아는 아빠’로 기억해요. 엄마가 노래를 잘하셔서 사람들은 제가 엄마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저는 아버지 판박이에요. 제가 가수의 꿈을 품게 된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 크죠. 고향을 그리워하며 <두만강 푸른 물>을 부르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가족과 함께한 졸업 사진(위) 웅변대회에 참가한 어린 시절의 홍지민 배우(아래) 홍창식 선생은 한국의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자식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그 영향을 받아 세 딸은 학창 시절 내내 공부를 열심히 했고, 모두 다 대학에 진학했다. “사실 그때 아버지 사업이 잘 안되어서 형편이 좋지 못한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으면서 학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죠. 지금까지도 정말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그래서 저는 경기도민으로서 경기도 정책 중에서 ... 뭘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는 어떻게 16살에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을 하고, 감옥생활을 견딜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에도 다른
독립운동가
동료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 마음속 깊은 곳에 울림을 주었죠.” 아직도 기록되지 못해 잊힌 지역의 독립운동가들은 많이 남아 있다. 이를 위해 경기도는 독립기념관 건립 준비와 관련해 경기도 지역의 독립운동사를 발굴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관련 사료를 수집하고 판결문, 수형인명부 등을 통해 독립운동가의 사료를 정리해 누락 인물이 있으면 국가보훈부에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할 예정이다. 또한, 독립유공자 2~3세대를 만나 정리하는 구술자료의 발간도 검토 중이다. 저는 경기도민으로서 경기도 정책 중에서 차상위계층 국가유공자를 위한 ‘생활보조 보훈수당’ 같은 부분에 관심이 많아요.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 사진 제공 : ㈜샘컴퍼니 아버지의 유산, 사랑과 나눔으로 나이가 들수록 홍지민 배우에게 아버지의 모습은 점점 선명해지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나눔을 실천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본받아 기부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21년 국제구호개발 NGO 희망친구 기아대책의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국내외 구호 캠페인과 미혼모 자립 지원 등 다양한 나눔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2023년에는 기아대책 고액후원자 모임인 필란트로피클럽 334호 회원으로 위촉되며, 1억 원 이상을 기부 또는 약정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올해에는 경남·경북 산불 피해 지역 이재민을 위해 1,000만 원의 성금을 기부하는 등 재난 구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저는 제 뿌리에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을 거예요. 아버지가 물려주신 재능이 꽃을 피워 뮤지컬 배우로 자리 잡을 수 있었고, 이제야 철이 들어서 아버지의 나눔 정신을 실천하고 있어요. 가족을 사랑하고 나라를 위해 헌신한 아버지처럼, 저 역시 가정 안에서 행복을 찾고, ...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에도 다른 독립운동가 동료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 마음속 깊은 곳에 울림을 주었죠.” 아직도 기록되지 못해 잊힌 지역의
독립운동가
들은 많이 남아 있다. 이를 위해 경기도는 독립기념관 건립 준비와 관련해 경기도 지역의 독립운동사를 발굴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관련 사료를 수집하고 판결문, 수형인명부 등을 통해 독립운동가의 사료를 정리해 누락 인물이 있으면 국가보훈부에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할 예정이다. 또한, 독립유공자 2~3세대를 만나 정리하는 구술자료의 발간도 검토 중이다. 저는 경기도민으로서 경기도 정책 중에서 차상위계층 국가유공자를 위한 ‘생활보조 보훈수당’ 같은 부분에 관심이 많아요.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 사진 제공 : ㈜샘컴퍼니 아버지의 유산, 사랑과 나눔으로 나이가 들수록 홍지민 배우에게 아버지의 모습은 점점 선명해지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나눔을 실천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본받아 기부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21년 국제구호개발 NGO 희망친구 기아대책의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국내외 구호 캠페인과 미혼모 자립 지원 등 다양한 나눔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2023년에는 기아대책 고액후원자 모임인 필란트로피클럽 334호 회원으로 위촉되며, 1억 원 이상을 기부 또는 약정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올해에는 경남·경북 산불 피해 지역 이재민을 위해 1,000만 원의 성금을 기부하는 등 재난 구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저는 제 뿌리에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을 거예요. 아버지가 물려주신 재능이 꽃을 피워 뮤지컬 배우로 자리 잡을 수 있었고, 이제야 철이 들어서 아버지의 나눔 정신을 실천하고 있어요. 가족을 사랑하고 나라를 위해 헌신한 아버지처럼, 저 역시 가정 안에서 행복을 찾고, 무대에서 열정을 꽃 피우고, 이웃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거예요.” Tip. 독립운동가 홍창식(1926~1992) 1942년 1월 초순경 ... 위해 경기도는 독립기념관 건립 준비와 관련해 경기도 지역의 독립운동사를 발굴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관련 사료를 수집하고 판결문, 수형인명부 등을 통해
독립운동가
의 사료를 정리해 누락 인물이 있으면 국가보훈부에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할 예정이다. 또한, 독립유공자 2~3세대를 만나 정리하는 구술자료의 발간도 검토 중이다. 저는 경기도민으로서 경기도 정책 중에서 차상위계층 국가유공자를 위한 ‘생활보조 보훈수당’ 같은 부분에 관심이 많아요.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 사진 제공 : ㈜샘컴퍼니 아버지의 유산, 사랑과 나눔으로 나이가 들수록 홍지민 배우에게 아버지의 모습은 점점 선명해지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나눔을 실천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본받아 기부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21년 국제구호개발 NGO 희망친구 기아대책의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국내외 구호 캠페인과 미혼모 자립 지원 등 다양한 나눔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2023년에는 기아대책 고액후원자 모임인 필란트로피클럽 334호 회원으로 위촉되며, 1억 원 이상을 기부 또는 약정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올해에는 경남·경북 산불 피해 지역 이재민을 위해 1,000만 원의 성금을 기부하는 등 재난 구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저는 제 뿌리에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을 거예요. 아버지가 물려주신 재능이 꽃을 피워 뮤지컬 배우로 자리 잡을 수 있었고, 이제야 철이 들어서 아버지의 나눔 정신을 실천하고 있어요. 가족을 사랑하고 나라를 위해 헌신한 아버지처럼, 저 역시 가정 안에서 행복을 찾고, 무대에서 열정을 꽃 피우고, 이웃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거예요.” Tip. 독립운동가 홍창식(1926~1992) 1942년 1월 초순경 김세보로부터 영향을 받은 그는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고 비밀결사 백두산회에 가입하였다. 이후 양창순의 지도 하에 최학준·이승대·김동호·최이모 등 동회의 동지들과 함께 함북 성진 일대에서 항일투쟁을 폈다고 ... 나라를 위해 헌신한 아버지처럼, 저 역시 가정 안에서 행복을 찾고, 무대에서 열정을 꽃 피우고, 이웃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거예요.” Tip.
독립운동가
홍창식(1926~1992) 1942년 1월 초순경 김세보로부터 영향을 받은 그는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고 비밀결사 백두산회에 가입하였다. 이후 양창순의 지도 하에 최학준·이승대·김동호·최이모 등 동회의 동지들과 함께 함북 성진 일대에서 항일투쟁을 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43년 3월 그를 비롯한 김세보·양창순·박종대·심시준 등 9명의 동지들이 일경에 붙잡혔다. 1944년 5월 16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1년, 장기 3년형을 선고받고 김천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8·15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출처 : 공훈전자사료관 인터뷰 ...
광복 80주년,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한 경기도 사적지 탐방
vol.194
시위가 벌어진 고장이다. 당시 시위에 참가한 선열들은 1만 4천여 명으로 이 과정에서 부상자 120명, 체포자 200여 명이 발생했다. 김포시는 이러한
독립운동가
들의 숭고한 독립 정신을 지역의 정체성으로 계승·발전시키고 그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기 위해서 2013년 독립운동기념관을 개관했다. 김포시독립운동기념관이 조성된 이곳은 옛 양곡리의 오라니장터로 일제시대에 선조들이 만세운동을 벌였던 역사 깊은 장소이다. 기념관 내부는 독립운동을 재현한 영상과 독립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을 소개하는 전시관, 일제의 고문 실태, 만세운동 체험관 등이 들어서 있다. 김포시독립운동기념관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양곡2로30번길 46, 031-996-6270 지도 바로보기 농촌계몽운동으로 일생을 헌신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농촌계몽운동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고 교육 활동을 통해 애국심을 심어준 여성 독립운동가 최용신 선생을 기리고자 2007년 11월에 건립한 공립박물관이다. 최용신 선생이 샘골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세운 샘골 강습소가 있던 곳에 건립되었으며 지층에는 최용신의 삶과 정신을 영원히 기억하는 주제의 전시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기념관이 위치한 상록수공원 내에는 최용신 묘소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최용신의 삶과 정신은 심훈의 소설 <상록수 (1935)>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상록수정신은 최용신의 정신을 상징하였으며, 또한 일제강점기 농촌계몽운동을 하는 수많은 청년의 모범 사례가 되기도 했다. 1995년에는 최용신의 활동이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최용신기념관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샘골서길 64 상록수공원 내, 031-481-3040 지도 바로보기 안중근 의사, 다시 평화를 외치다 안중근 의사의 애국심과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안중근공원은 부천에 위치한 시립 근린공원이다. 원래 이름은 중동공원이었으나, 부천시가 자매도시인 중국 하얼빈으로부터 안중근 의사 동상을 기증받아 세우면서 안중근의 이름을 본떠 공원명을 변경했다. 안중근 의사가 순국 직전까지 직접 쓴 유묵작품을 새겨놓은 비석과 스토리가 있는 동상이 설치되어 그의 인생이야기를 엿볼 수 ... 전시관, 일제의 고문 실태, 만세운동 체험관 등이 들어서 있다. 김포시독립운동기념관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양곡2로30번길 46, 031-996-6270 지도 바로보기 농촌계몽운동으로 일생을 헌신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농촌계몽운동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고 교육 활동을 통해 애국심을 심어준 여성 독립운동가 최용신 선생을 기리고자 2007년 11월에 건립한 공립박물관이다. 최용신 선생이 샘골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세운 샘골 강습소가 있던 곳에 건립되었으며 지층에는 최용신의 삶과 정신을 영원히 기억하는 주제의 전시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기념관이 위치한 상록수공원 내에는 최용신 묘소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최용신의 삶과 정신은 심훈의 소설 <상록수 (1935)>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상록수정신은 최용신의 정신을 상징하였으며, 또한 일제강점기 농촌계몽운동을 하는 수많은 청년의 모범 사례가 되기도 했다. 1995년에는 최용신의 활동이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최용신기념관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샘골서길 64 상록수공원 내, 031-481-3040 지도 바로보기 안중근 의사, 다시 평화를 외치다 안중근 의사의 애국심과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안중근공원은 부천에 위치한 시립 근린공원이다. 원래 이름은 중동공원이었으나, 부천시가 자매도시인 중국 하얼빈으로부터 안중근 의사 동상을 기증받아 세우면서 안중근의 이름을 본떠 공원명을 변경했다. 안중근 의사가 순국 직전까지 직접 쓴 유묵작품을 새겨놓은 비석과 스토리가 있는 동상이 설치되어 그의 인생이야기를 엿볼 수 있으며,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거사기록을 새긴 석조물이 있다. 안중근 순국일(1910년 3월 26일)을 기념하여 안중근 추모행사와 의거기념 행사도 열린다. 평상시에는 시민들의 도심 속 휴식공간이자 근대사 학습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안중근공원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송내대로 236 지도 바로보기 ... 양촌읍 양곡2로30번길 46, 031-996-6270 지도 바로보기 농촌계몽운동으로 일생을 헌신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농촌계몽운동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고 교육 활동을 통해 애국심을 심어준 여성
독립운동가
최용신 선생을 기리고자 2007년 11월에 건립한 공립박물관이다. 최용신 선생이 샘골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세운 샘골 강습소가 있던 곳에 건립되었으며 지층에는 최용신의 삶과 정신을 영원히 기억하는 주제의 전시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기념관이 위치한 상록수공원 내에는 최용신 묘소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최용신의 삶과 정신은 심훈의 소설 <상록수 (1935)>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상록수정신은 최용신의 정신을 상징하였으며, 또한 일제강점기 농촌계몽운동을 하는 수많은 청년의 모범 사례가 되기도 했다. 1995년에는 최용신의 활동이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최용신기념관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샘골서길 64 상록수공원 내, 031-481-3040 지도 바로보기 안중근 의사, 다시 평화를 외치다 안중근 의사의 애국심과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안중근공원은 부천에 위치한 시립 근린공원이다. 원래 이름은 중동공원이었으나, 부천시가 자매도시인 중국 하얼빈으로부터 안중근 의사 동상을 기증받아 세우면서 안중근의 이름을 본떠 공원명을 변경했다. 안중근 의사가 순국 직전까지 직접 쓴 유묵작품을 새겨놓은 비석과 스토리가 있는 동상이 설치되어 그의 인생이야기를 엿볼 수 있으며,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거사기록을 새긴 석조물이 있다. 안중근 순국일(1910년 3월 26일)을 기념하여 안중근 추모행사와 의거기념 행사도 열린다. 평상시에는 시민들의 도심 속 휴식공간이자 근대사 학습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안중근공원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송내대로 236 지도 바로보기 ...
광복 80주년, 역사를 바로 세우다 경기도가 선정한 올해의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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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 경기 경기, 광복 80주년 광복 80주년, 역사를 바로 세우다 경기도가 선정한 올해의
독립운동가
80인2025. 08 경기도는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광복회 경기도지부와 함께 ‘올해의 독립운동가 80인’ 선정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광복회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를 통해 도내 독립유공자 1,500여 명 중 경기도를 대표할 인물을 선정했으며, 이들의 삶과 업적을 알리기 위해 웹툰과 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광복절을 맞이하는 8월,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기리기 위해 선정된 ‘올해의 독립운동가 80인’을 소개한다. 정리. 편집실 자료. 광복회 경기도지부, 공훈전자사료관 조국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보다 먼저 응징한 안양의 원태우 선생(1882~1951)은 다소 생소할 것이다. 1905년 을사조약의 강제 체결에 격분한 그는 이토히로부미를 응징해 한국인의 항일의지를 만천하에 알릴 것을 계획하였다. 그리하여 기회를 기다리던 중 1905년 11월 22일 이토히로부미가 수원에서 수렵을 한 뒤 열차에 승차하여 안양역을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돌을 던져 이토 히로부미의 왼쪽 눈과 안면에 부상을 입혔다. 또한, 수원의 기생조합 출신인 김향화 선생(1897~?)은 1919년 3월 29일 병원으로 가던 중 동료들과 함께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귀가할 때 역시 경찰서 앞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여 기상을 높였다. 이런가 하면 어린 나이에 독립운동을 펼친 자매도 있다. 바로 연천의 소은숙(1903~?)·소은명(1905~1986) 자매다. 자매는 배화여학교 재학 중 3·1운동 1주년을 기념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여 1920년 3월 1일 학교 교정과 기숙사 뒤편 언덕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일로 일제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을 당시 소은명 선생의 나이는 만 14세로, 지금까지 최연소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날 순국한 안타까운 사연도 ... 경기 경기, 광복 80주년 광복 80주년, 역사를 바로 세우다 경기도가 선정한 올해의 독립운동가 80인2025. 08 경기도는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광복회 경기도지부와 함께 ‘올해의
독립운동가
80인’ 선정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광복회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를 통해 도내 독립유공자 1,500여 명 중 경기도를 대표할 인물을 선정했으며, 이들의 삶과 업적을 알리기 위해 웹툰과 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광복절을 맞이하는 8월,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기리기 위해 선정된 ‘올해의 독립운동가 80인’을 소개한다. 정리. 편집실 자료. 광복회 경기도지부, 공훈전자사료관 조국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보다 먼저 응징한 안양의 원태우 선생(1882~1951)은 다소 생소할 것이다. 1905년 을사조약의 강제 체결에 격분한 그는 이토히로부미를 응징해 한국인의 항일의지를 만천하에 알릴 것을 계획하였다. 그리하여 기회를 기다리던 중 1905년 11월 22일 이토히로부미가 수원에서 수렵을 한 뒤 열차에 승차하여 안양역을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돌을 던져 이토 히로부미의 왼쪽 눈과 안면에 부상을 입혔다. 또한, 수원의 기생조합 출신인 김향화 선생(1897~?)은 1919년 3월 29일 병원으로 가던 중 동료들과 함께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귀가할 때 역시 경찰서 앞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여 기상을 높였다. 이런가 하면 어린 나이에 독립운동을 펼친 자매도 있다. 바로 연천의 소은숙(1903~?)·소은명(1905~1986) 자매다. 자매는 배화여학교 재학 중 3·1운동 1주년을 기념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여 1920년 3월 1일 학교 교정과 기숙사 뒤편 언덕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일로 일제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을 당시 소은명 선생의 나이는 만 14세로, 지금까지 최연소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날 순국한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바로 광주의 구연영(1864~1907)·구정서(1882~1907) 부자의 이야기이다.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에 격분하여 ... 1,500여 명 중 경기도를 대표할 인물을 선정했으며, 이들의 삶과 업적을 알리기 위해 웹툰과 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광복절을 맞이하는 8월,
독립운동가
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기리기 위해 선정된 ‘올해의 독립운동가 80인’을 소개한다. 정리. 편집실 자료. 광복회 경기도지부, 공훈전자사료관 조국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보다 먼저 응징한 안양의 원태우 선생(1882~1951)은 다소 생소할 것이다. 1905년 을사조약의 강제 체결에 격분한 그는 이토히로부미를 응징해 한국인의 항일의지를 만천하에 알릴 것을 계획하였다. 그리하여 기회를 기다리던 중 1905년 11월 22일 이토히로부미가 수원에서 수렵을 한 뒤 열차에 승차하여 안양역을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돌을 던져 이토 히로부미의 왼쪽 눈과 안면에 부상을 입혔다. 또한, 수원의 기생조합 출신인 김향화 선생(1897~?)은 1919년 3월 29일 병원으로 가던 중 동료들과 함께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귀가할 때 역시 경찰서 앞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여 기상을 높였다. 이런가 하면 어린 나이에 독립운동을 펼친 자매도 있다. 바로 연천의 소은숙(1903~?)·소은명(1905~1986) 자매다. 자매는 배화여학교 재학 중 3·1운동 1주년을 기념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여 1920년 3월 1일 학교 교정과 기숙사 뒤편 언덕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일로 일제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을 당시 소은명 선생의 나이는 만 14세로, 지금까지 최연소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날 순국한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바로 광주의 구연영(1864~1907)·구정서(1882~1907) 부자의 이야기이다.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에 격분하여 일제를 몰아내기 위해 군사를 모집하고 일본군과 다수의 전투를 벌이기도 했던 구연영 선생은 이후 1907년 정미의병이 일어나자, 구국계몽활동을 펼치고 이천·여주·광주 일대를 순회하며 상인들의 철시투쟁을 유도하는 등의 활동을 계속하였다. 아들인 구정서 선생은 1905년 을사조약이 ... 삶과 업적을 알리기 위해 웹툰과 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광복절을 맞이하는 8월,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기리기 위해 선정된 ‘올해의
독립운동가
80인’을 소개한다. 정리. 편집실 자료. 광복회 경기도지부, 공훈전자사료관 조국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보다 먼저 응징한 안양의 원태우 선생(1882~1951)은 다소 생소할 것이다. 1905년 을사조약의 강제 체결에 격분한 그는 이토히로부미를 응징해 한국인의 항일의지를 만천하에 알릴 것을 계획하였다. 그리하여 기회를 기다리던 중 1905년 11월 22일 이토히로부미가 수원에서 수렵을 한 뒤 열차에 승차하여 안양역을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돌을 던져 이토 히로부미의 왼쪽 눈과 안면에 부상을 입혔다. 또한, 수원의 기생조합 출신인 김향화 선생(1897~?)은 1919년 3월 29일 병원으로 가던 중 동료들과 함께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귀가할 때 역시 경찰서 앞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여 기상을 높였다. 이런가 하면 어린 나이에 독립운동을 펼친 자매도 있다. 바로 연천의 소은숙(1903~?)·소은명(1905~1986) 자매다. 자매는 배화여학교 재학 중 3·1운동 1주년을 기념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여 1920년 3월 1일 학교 교정과 기숙사 뒤편 언덕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일로 일제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을 당시 소은명 선생의 나이는 만 14세로, 지금까지 최연소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날 순국한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바로 광주의 구연영(1864~1907)·구정서(1882~1907) 부자의 이야기이다.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에 격분하여 일제를 몰아내기 위해 군사를 모집하고 일본군과 다수의 전투를 벌이기도 했던 구연영 선생은 이후 1907년 정미의병이 일어나자, 구국계몽활동을 펼치고 이천·여주·광주 일대를 순회하며 상인들의 철시투쟁을 유도하는 등의 활동을 계속하였다. 아들인 구정서 선생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3일간 철시를 단행케 하였고, 여주와 원주에서 ... 맞이하는 8월,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기리기 위해 선정된 ‘올해의 독립운동가 80인’을 소개한다. 정리. 편집실 자료. 광복회 경기도지부, 공훈전자사료관 조국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헌신한
독립운동가
들의 이야기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보다 먼저 응징한 안양의 원태우 선생(1882~1951)은 다소 생소할 것이다. 1905년 을사조약의 강제 체결에 격분한 그는 이토히로부미를 응징해 한국인의 항일의지를 만천하에 알릴 것을 계획하였다. 그리하여 기회를 기다리던 중 1905년 11월 22일 이토히로부미가 수원에서 수렵을 한 뒤 열차에 승차하여 안양역을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돌을 던져 이토 히로부미의 왼쪽 눈과 안면에 부상을 입혔다. 또한, 수원의 기생조합 출신인 김향화 선생(1897~?)은 1919년 3월 29일 병원으로 가던 중 동료들과 함께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귀가할 때 역시 경찰서 앞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여 기상을 높였다. 이런가 하면 어린 나이에 독립운동을 펼친 자매도 있다. 바로 연천의 소은숙(1903~?)·소은명(1905~1986) 자매다. 자매는 배화여학교 재학 중 3·1운동 1주년을 기념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여 1920년 3월 1일 학교 교정과 기숙사 뒤편 언덕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일로 일제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을 당시 소은명 선생의 나이는 만 14세로, 지금까지 최연소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날 순국한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바로 광주의 구연영(1864~1907)·구정서(1882~1907) 부자의 이야기이다.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에 격분하여 일제를 몰아내기 위해 군사를 모집하고 일본군과 다수의 전투를 벌이기도 했던 구연영 선생은 이후 1907년 정미의병이 일어나자, 구국계몽활동을 펼치고 이천·여주·광주 일대를 순회하며 상인들의 철시투쟁을 유도하는 등의 활동을 계속하였다. 아들인 구정서 선생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3일간 철시를 단행케 하였고, 여주와 원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접전하였다. 1907년 일진회원의 밀고로 부자가 함께 체포되어 적에게 ... 교정과 기숙사 뒤편 언덕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일로 일제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을 당시 소은명 선생의 나이는 만 14세로, 지금까지 최연소
독립운동가
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날 순국한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바로 광주의 구연영(1864~1907)·구정서(1882~1907) 부자의 이야기이다.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에 격분하여 일제를 몰아내기 위해 군사를 모집하고 일본군과 다수의 전투를 벌이기도 했던 구연영 선생은 이후 1907년 정미의병이 일어나자, 구국계몽활동을 펼치고 이천·여주·광주 일대를 순회하며 상인들의 철시투쟁을 유도하는 등의 활동을 계속하였다. 아들인 구정서 선생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3일간 철시를 단행케 하였고, 여주와 원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접전하였다. 1907년 일진회원의 밀고로 부자가 함께 체포되어 적에게 혹독한 고문을 받았으나, 조금도 뜻을 굽히지 않아 부친과 함께 총살당하여 순국하였다. 이렇듯 출신, 성별, 환경 등 그 배경은 다르지만, 독립이라는 하나의 간절한 목표를 향해 인생을 기꺼이 내던진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With. 경기 공개된 올해의 독립운동가 80인에 관한 정보는 광복회 경기도지부와 경기뉴스광장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경기뉴스광장 광복회 경기도지 ... 않아 부친과 함께 총살당하여 순국하였다. 이렇듯 출신, 성별, 환경 등 그 배경은 다르지만, 독립이라는 하나의 간절한 목표를 향해 인생을 기꺼이 내던진
독립운동가
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With. 경기 공개된 올해의 독립운동가 80인에 관한 정보는 광복회 경기도지부와 경기뉴스광장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경기뉴스광장 광복회 경기도지 ... 그 배경은 다르지만, 독립이라는 하나의 간절한 목표를 향해 인생을 기꺼이 내던진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With. 경기 공개된 올해의
독립운동가
80인에 관한 정보는 광복회 경기도지부와 경기뉴스광장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경기뉴스광장 광복회 경기도지 ...
기회기자단이 본 별별 경기
vol.194
독서포인트 누리집(ggpoint.kdot.cloud/bookpoint)에 접속하면 된다. 책도 읽고, 리뷰 인증도 해서 읽고 싶은 책을 지역화폐로 사보는 독서 다짐! 지금 바로 시작해 보자. 임태은 기자(청소년기자단) #03
독립운동가
청사 조성환 선생을 만나다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경기도는 도내 독립운동가 80인을 순차적으로 선정·발표 한다. 청사 조성환 선생도 그중 한 인물이다. 여주박물관과 조성환 선생의 생가인 ‘여주 보통리고택’에서 조성환 선생의 기록을 볼 수 있었다. 선생은 1907년 안창호 선생과 함께 신민회에서의 활동을 시작으로 독립운동을 본격화하였다. 1919년 3월에는 신채호, 조소앙 선생과 함께 독립선언에 일조하였고 만주와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독립군의 무장 투쟁을 뒷받침했다.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취재하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감수했는지 알게 됐다. 태극기가 휘날리는 그날의 함성을 잊지 않겠다. 성시우 기자(꿈나무기자단) #04 전통체험부터 역사까지, 여름 무더위 날려주는 ‘처인성역사교육관’ 교육관은 2022년 처인성 전투의 의미를 되새기고 이를 교육하고자 건립되었다. 총 2층으로 되어 있으며 1층에는 체험실과 문화교실, 전시실 등이 있고 2층에는 다목적실이 있다. 1층 체험실에서는 블록 쌓기, 스케치팝 체험을 할 수 있고 문화교실에서는 전통놀이를 할 수 있다. 전시실은 글과 영상을 통해 처인성 전투 이야기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2층의 다목적실에서는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체험교육 프로 그램이 진행된다. 올여름, 처인성역사교육관을 방문해 편안한 쉼과 지식까지 챙겨보면 어떨까? 서승연 기자(꿈나무기자단) #05 평생 함께할 새로운 가족, 펫숍 말고 ‘반려마루’에서 입양하세요! 유기견이 보호받고, 반려동물 보호자도 교육을 들을 수 있는 곳! 바로 경기도 여주에 있는 ‘반려마루’다. 기회기자단은 ‘반려마루’에서 반려동물에 관한 직업 체험을 하고 그 직업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웠다. 먼저 반려동물과 관련된 직업에는 수의사, 훈련사, 반려동물 미용사, 펫시터, 장례지도사 등 많은 직업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 싶은 책을 지역화폐로 사보는 독서 다짐! 지금 바로 시작해 보자. 임태은 기자(청소년기자단) #03 독립운동가 청사 조성환 선생을 만나다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경기도는 도내
독립운동가
80인을 순차적으로 선정·발표 한다. 청사 조성환 선생도 그중 한 인물이다. 여주박물관과 조성환 선생의 생가인 ‘여주 보통리고택’에서 조성환 선생의 기록을 볼 수 있었다. 선생은 1907년 안창호 선생과 함께 신민회에서의 활동을 시작으로 독립운동을 본격화하였다. 1919년 3월에는 신채호, 조소앙 선생과 함께 독립선언에 일조하였고 만주와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독립군의 무장 투쟁을 뒷받침했다.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취재하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감수했는지 알게 됐다. 태극기가 휘날리는 그날의 함성을 잊지 않겠다. 성시우 기자(꿈나무기자단) #04 전통체험부터 역사까지, 여름 무더위 날려주는 ‘처인성역사교육관’ 교육관은 2022년 처인성 전투의 의미를 되새기고 이를 교육하고자 건립되었다. 총 2층으로 되어 있으며 1층에는 체험실과 문화교실, 전시실 등이 있고 2층에는 다목적실이 있다. 1층 체험실에서는 블록 쌓기, 스케치팝 체험을 할 수 있고 문화교실에서는 전통놀이를 할 수 있다. 전시실은 글과 영상을 통해 처인성 전투 이야기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2층의 다목적실에서는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체험교육 프로 그램이 진행된다. 올여름, 처인성역사교육관을 방문해 편안한 쉼과 지식까지 챙겨보면 어떨까? 서승연 기자(꿈나무기자단) #05 평생 함께할 새로운 가족, 펫숍 말고 ‘반려마루’에서 입양하세요! 유기견이 보호받고, 반려동물 보호자도 교육을 들을 수 있는 곳! 바로 경기도 여주에 있는 ‘반려마루’다. 기회기자단은 ‘반려마루’에서 반려동물에 관한 직업 체험을 하고 그 직업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웠다. 먼저 반려동물과 관련된 직업에는 수의사, 훈련사, 반려동물 미용사, 펫시터, 장례지도사 등 많은 직업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중에서 기자단은 훈련사, 미용사, 수의사라는 직업을 직접 체험해 보며 생명의 ...
1945년 7월 24일 부민관 폭파 의거를 주도한 조문기 지사
vol.193
기회 경기 경기, 광복 80주년 1945년 7월 24일 부민관 폭파 의거를 주도한 조문기 지사2025. 07 “나의 독립운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독립운동사는
독립운동가
만의 역사가 아니다. 미래를, 후손을 위한 운동이다. 과거사 청산은 친일파 청산부터 첫발을 내디뎌야 하고, 친일파 청산이 안 된 지금의 한국사회는 여전히 독립운동을 벌이는 중이다.”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쳤던 조문기(1927. 5. 19.~2008. 2. 5.) 지사의 말이다. 부민관 폭파 의거를 주도해 일제에 대한 저항 의지를 보여준 그는 죽는 날까지 조국에 헌신했다. 정리. 편집실 참고·사진 공훈전자사료관, 디지털화성시문화대전 일제에 대항한 파업 1927년 5월 19일 경기도 수원군 매송면(현 화성시 매송면) 야목리에서 조병길과 연안 이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유년시절 매송면 원평리에 위치한 매송보통학교를 다녔으나, 학비를 내기 어려워 용인군 양지면에 있는 외가에서 살며 양지공립보통학교 3학년으로 전학하여 그곳에서 졸업하였다. 1942년 10월 일본으로 건너가 가나가와현(神奈川縣) 가와자키시(川崎市)에 있는 일본강관주식 회사에 훈련공으로 강제수용된 조문기 지사는 이곳에서 경기도 안성군 출신인 유만수를 만나 동지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인 노무자에 대한 멸시와 탄압이 극심한 상황을 겪으며, 유만수와 파업을 계획 하였다. 1943년 5월 민족 차별에 반대하는 한국인 노무자 1,000여 명이 3일 동안 시위를 일으키자, 동참한 후 이를 주도하였다. 이때 요코하마(橫濱) 헌병대·가와자키시 경찰 80여 명에 포위된 채 투쟁하다가 유만수와 함께 지명수배를 피해 귀국하였다. 부민관 폭파의거 삼의사. 강윤국(왼쪽), 조문기(가운데), 유만수(오른쪽) 일제하 마지막 의거의 주역 1945년 5월, 조문기 지사는 서울 관수동 유만수의 집에서 유만수· 강윤국·권준·우동학 등과 비밀결사 대한애국청년당을 결성하고, 대일투쟁을 결의하였다. 이때 친일 민족 반역자인 박춘금이 친일 단체인 대의당(大義黨)을 조직하고, ‘일제에 충성을 맹세하고 태평양 전쟁에서 아시아민족의 전쟁 수행을 위한 대동단결을 강조하기 위하여’ 7월 24일 서울 부민관(府民館)에서 아세아민족분격대회를 개최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 폭파 의거를 주도해 일제에 대한 저항 의지를 보여준 조문기 지사는 죽는 날까지 조국에 헌신했다. With. 경기 광복 80년을 맞아, 경기도와 광복회 경기도지부가 <올해의 경기도
독립운동가
> 80인의 이야기를 담은 웹툰 80편을 순차적으로 공개 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광복회 경기도지부 인스타그램과 경기뉴스광장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경기뉴스광장 광복회 경기도지부 인스타그램 ...
독립운동의 일선에서 활약한 조계림 애국지사
vol.192
기회 경기 경기, 광복 80주년 독립운동의 일선에서 활약한 조계림 애국지사2025. 06
독립운동가
이자 정치사상가이며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골자로 한 삼균주의를 제창하여 임시정부 정강정책의 바탕으로 삼은 인물 조소앙 선생. 선생의 집안은 11명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명문이다. 이 중 한 사람인 조계림 애국지사는 조소앙 선생의 딸로서 부친의 활동을 보좌하는 동시에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정리. 편집실 참고·사진 공훈전자사료관, 우리문화신문 임시정부의 외무부 직원으로서 일하다 광복을 1년 앞둔 1944년 7월 5일, 중국 중경(重慶)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부장 조소앙) 앞으로 중경주재(重慶駐在) 체코슬로바키아 대사가 다음과 같은 한 통의 편지를 보내온다. “부장 각하! 저는 1944년 6월 26일 자의 각하의 서한을 감사히 받았음을 알려드리는 영광을 먼저 전합니다. 동시에 각하의 요구를 받아들여 각하가 보내온 성명서와 각서 모두를 외무부를 통하여 저희 정부에 전달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 기회에 체코슬로 바키아 정부는 체코슬로바키아 국민과 더불어 가장 성실한 동정을, 한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보내는 것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우리들의 적을 격멸할 날이 가까워져 오는 것은, 동시에 고귀한 국민의 해방을 가져오는 것임을 의심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날이 곧 오기를 저는 빕니다. 부디 부장 각하께서는 저의 최상의 존경의 표시를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 일화만 보더라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걸어온 길이 얼마나 큰 수난의 가시밭길이었는지 푸른 눈의 체코슬로바키아 대사의 편지에서도 절절히 느껴진다.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임시정부의 외무부 직원으로 대내외 일을 맡아서 헌신한 여성이 있다. 바로 조계림 애국지사이다. 조계림 애국지사 어려운 시기에 임시정부의 외무부 직원으로 대내외 일을 맡아서 헌신한 여성이 있다. 바로 조계림 애국지사이다. 독립의 운동의 일선에서 활약하다 조계림 애국지사는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났다. 부친의 독립운동을 보좌하며 1939년 창설된 한국광복진선 청년공작대에서 통신· ... 외무부 과원 선임에 관한 공보 기록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보 제80호』 1944. 4. 15.) With. 경기 광복 80년을 맞아, 경기도와 광복회 경기도지부가 <올해의 경기도
독립운동가
> 80인의 이야기를 담은 웹툰 80편을 순차적으로 공개 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광복회 경기도지부 인스타그램과 경기뉴스광장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경기뉴스광장 광복회 경기도지부 인스타그램 ...
기회기자단이 본 별별 경기
vol.192
바란다. 박도현 기자(대학생기자단) #03 ‘대한 독립 만세’ 외친 연천의 소녀들, 소은숙·소은명 자매 경기도는 ‘올해의 독립 운동가 80인’을 순차 적으로 공개하며 그동안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운동가
80명을 재조명하고 있다. 지난 4월 11일에는 임시정부 수립일을 맞아 21인의 독립운동가가 공개됐는데 그 중 눈에 띄는 두 사람이 있다. 바로 소은숙·소은명 자매다. 자매는 1920년 3월 1일에 3·1운동 1주년을 기념하는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는데, 3·1운동 이후 학생들을 주시하고 있던 일제 경찰들에게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다. 당시 소은명 지사의 나이는 고작 14세였다. 위험한 시기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평범하게 살 수 있었을 소녀들. 지금을 있게 해준 독립투사들에게 더욱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할 이유다. 최세연 기자(청소년기자단) #04 어린이의 특별한 친구 봉공이! 경기도의 캐릭터 ‘봉공이’와 특별하게 만날 수 있는 ‘봉공아 놀자!’ 팝업 스토어가4월 23일부터 5월 6일까지 스타필드 하남 1층 몰리스 아트리움에서 열렸다. 팝업 스토어 안에는 작은 봉공이의 집, 볼풀장, 귀여운 굿즈 등 즐길 거리가 가득했다. 특히 ‘봉공이 스티커 투어’에서는 매장 곳곳에 숨어있는 봉공이 스티커를 찾아 미션을 수행하면 봉공이가 그려진 컵받침을 받을 수 있었다. 굿즈의 모든 수익금은 취약계층 이웃의 자활을 위해 쓰인다고 해 ‘착한 소비’를 이유로 기분 좋게 구매했다. 기자단 발대식, 지구의날 행사,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취약계층도 함께할 줄 아는 나의 특별한 친구 봉공이, 꼭 다시 만나러 가고 싶다. 김채원 기자(꿈나무기자단) #05 가족과 함께 맨발 걷기로 에너지 충전하는 수리산황톳길 군포시 수리산 산림 욕장에는 맨발 걷기를 즐길 수 있는 ‘수리산 황톳길’이 있다. 약 430미터 정도 되는 이 길은 습식황토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맨발 걷기 후 발을 씻을 수 있는 세족장, 지압길 구역도 있어서 일석이조로 건강을 챙길 수 있다. 황톳길은 맨발로 ... 운동가 80인’을 순차 적으로 공개하며 그동안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운동가 80명을 재조명하고 있다. 지난 4월 11일에는 임시정부 수립일을 맞아 21인의
독립운동가
가 공개됐는데 그 중 눈에 띄는 두 사람이 있다. 바로 소은숙·소은명 자매다. 자매는 1920년 3월 1일에 3·1운동 1주년을 기념하는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는데, 3·1운동 이후 학생들을 주시하고 있던 일제 경찰들에게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다. 당시 소은명 지사의 나이는 고작 14세였다. 위험한 시기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평범하게 살 수 있었을 소녀들. 지금을 있게 해준 독립투사들에게 더욱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할 이유다. 최세연 기자(청소년기자단) #04 어린이의 특별한 친구 봉공이! 경기도의 캐릭터 ‘봉공이’와 특별하게 만날 수 있는 ‘봉공아 놀자!’ 팝업 스토어가4월 23일부터 5월 6일까지 스타필드 하남 1층 몰리스 아트리움에서 열렸다. 팝업 스토어 안에는 작은 봉공이의 집, 볼풀장, 귀여운 굿즈 등 즐길 거리가 가득했다. 특히 ‘봉공이 스티커 투어’에서는 매장 곳곳에 숨어있는 봉공이 스티커를 찾아 미션을 수행하면 봉공이가 그려진 컵받침을 받을 수 있었다. 굿즈의 모든 수익금은 취약계층 이웃의 자활을 위해 쓰인다고 해 ‘착한 소비’를 이유로 기분 좋게 구매했다. 기자단 발대식, 지구의날 행사,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취약계층도 함께할 줄 아는 나의 특별한 친구 봉공이, 꼭 다시 만나러 가고 싶다. 김채원 기자(꿈나무기자단) #05 가족과 함께 맨발 걷기로 에너지 충전하는 수리산황톳길 군포시 수리산 산림 욕장에는 맨발 걷기를 즐길 수 있는 ‘수리산 황톳길’이 있다. 약 430미터 정도 되는 이 길은 습식황토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맨발 걷기 후 발을 씻을 수 있는 세족장, 지압길 구역도 있어서 일석이조로 건강을 챙길 수 있다. 황톳길은 맨발로 걸으면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발바닥 근육도 튼튼해 지며 무릎과 허리 통증까지 완화되는 ...
독립운동가
의 버팀목, 그들을 지탱한 가족들의 이야기
vol.191
기회 경기 경기, 광복 80주년
독립운동가
의 버팀목, 그들을 지탱한 가족들의 이야기2025. 05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영웅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하지만 이들의 위대한 업적에 가려진 또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는 그리 크게 조명받지 못했었다. 독립운동가의 아내 혹은 남편, 형제 그리고 어머니⋯ . 독립운동가보다 어쩌면 더 큰 헌신으로 이들의 삶을 지지했던 가족들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정리. 편집실 참고·사진 공훈전자사료관, 독립기념관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인 위대한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刑)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올바른 일을 하다 맞이하는 죽음에 당당하고 떳떳하게 맞서라고. 그리고 그것이 효도라고.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저격한 도마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 어머니와 주고받은 편지의 내용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을 각오한 아들의 다짐을 끝까지 지켜준 어머니는 바로 조마리아 여사다. 안중근 의사의 죽음 후, 여사는 안중근 의사의 장녀이자 자신의 손녀딸 안현생을 명동성당 수녀원의 프랑스인 수녀에게 맡긴 후 연해주로 망명하였다. 망명 이후 조마리아 여사는 주변으로부터 ‘안중근의 모친’이라는 점에서 끊임없이 찬양과 주목을 받았으며, 동시에 위대한 독립운동가인 아들의 유지를 제대로 선양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여사는 안중근, 안성녀, 안정근, 안공근 등 3남 1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이들은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차남 안정근은 북만주에 난립한 독립군단을 통합시켜 청산리전투의 기반을 확립하였고, 삼남 안공근은 백범 김구의 한인애국단을 실질적으로 운영할 뿐만 아니라 윤봉길과 이봉창의 항일의거를 성사시켰으며, 딸 안성녀는 안중근 의거 이후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으로 망명하여 손수 독립군의 군복을 만들었다. 실로 ... 버팀목, 그들을 지탱한 가족들의 이야기2025. 05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영웅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하지만 이들의 위대한 업적에 가려진 또 다른
독립운동가
들의 이야기는 그리 크게 조명받지 못했었다. 독립운동가의 아내 혹은 남편, 형제 그리고 어머니⋯ . 독립운동가보다 어쩌면 더 큰 헌신으로 이들의 삶을 지지했던 가족들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정리. 편집실 참고·사진 공훈전자사료관, 독립기념관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인 위대한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刑)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올바른 일을 하다 맞이하는 죽음에 당당하고 떳떳하게 맞서라고. 그리고 그것이 효도라고.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저격한 도마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 어머니와 주고받은 편지의 내용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을 각오한 아들의 다짐을 끝까지 지켜준 어머니는 바로 조마리아 여사다. 안중근 의사의 죽음 후, 여사는 안중근 의사의 장녀이자 자신의 손녀딸 안현생을 명동성당 수녀원의 프랑스인 수녀에게 맡긴 후 연해주로 망명하였다. 망명 이후 조마리아 여사는 주변으로부터 ‘안중근의 모친’이라는 점에서 끊임없이 찬양과 주목을 받았으며, 동시에 위대한 독립운동가인 아들의 유지를 제대로 선양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여사는 안중근, 안성녀, 안정근, 안공근 등 3남 1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이들은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차남 안정근은 북만주에 난립한 독립군단을 통합시켜 청산리전투의 기반을 확립하였고, 삼남 안공근은 백범 김구의 한인애국단을 실질적으로 운영할 뿐만 아니라 윤봉길과 이봉창의 항일의거를 성사시켰으며, 딸 안성녀는 안중근 의거 이후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으로 망명하여 손수 독립군의 군복을 만들었다. 실로 조마리아는 자식들을 모두 독립운동의 제단에 바친 장한 어머니였다. 조마리아 여사 조마리아 여사 회갑 기념사진 온 가족이 함께한 독립운동, 신건식·오건해 부부 신건식·오건해 부부는 그들 자신이 독립운동가였을 ... 독립을 위해 헌신한 영웅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하지만 이들의 위대한 업적에 가려진 또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는 그리 크게 조명받지 못했었다.
독립운동가
의 아내 혹은 남편, 형제 그리고 어머니⋯ . 독립운동가보다 어쩌면 더 큰 헌신으로 이들의 삶을 지지했던 가족들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정리. 편집실 참고·사진 공훈전자사료관, 독립기념관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인 위대한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刑)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올바른 일을 하다 맞이하는 죽음에 당당하고 떳떳하게 맞서라고. 그리고 그것이 효도라고.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저격한 도마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 어머니와 주고받은 편지의 내용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을 각오한 아들의 다짐을 끝까지 지켜준 어머니는 바로 조마리아 여사다. 안중근 의사의 죽음 후, 여사는 안중근 의사의 장녀이자 자신의 손녀딸 안현생을 명동성당 수녀원의 프랑스인 수녀에게 맡긴 후 연해주로 망명하였다. 망명 이후 조마리아 여사는 주변으로부터 ‘안중근의 모친’이라는 점에서 끊임없이 찬양과 주목을 받았으며, 동시에 위대한 독립운동가인 아들의 유지를 제대로 선양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여사는 안중근, 안성녀, 안정근, 안공근 등 3남 1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이들은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차남 안정근은 북만주에 난립한 독립군단을 통합시켜 청산리전투의 기반을 확립하였고, 삼남 안공근은 백범 김구의 한인애국단을 실질적으로 운영할 뿐만 아니라 윤봉길과 이봉창의 항일의거를 성사시켰으며, 딸 안성녀는 안중근 의거 이후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으로 망명하여 손수 독립군의 군복을 만들었다. 실로 조마리아는 자식들을 모두 독립운동의 제단에 바친 장한 어머니였다. 조마리아 여사 조마리아 여사 회갑 기념사진 온 가족이 함께한 독립운동, 신건식·오건해 부부 신건식·오건해 부부는 그들 자신이 독립운동가였을 뿐만 아니라, 딸 신순호와 사위 ... 뜨겁게 만든다. 하지만 이들의 위대한 업적에 가려진 또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는 그리 크게 조명받지 못했었다. 독립운동가의 아내 혹은 남편, 형제 그리고 어머니⋯ .
독립운동가
보다 어쩌면 더 큰 헌신으로 이들의 삶을 지지했던 가족들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정리. 편집실 참고·사진 공훈전자사료관, 독립기념관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인 위대한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刑)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올바른 일을 하다 맞이하는 죽음에 당당하고 떳떳하게 맞서라고. 그리고 그것이 효도라고.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저격한 도마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 어머니와 주고받은 편지의 내용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을 각오한 아들의 다짐을 끝까지 지켜준 어머니는 바로 조마리아 여사다. 안중근 의사의 죽음 후, 여사는 안중근 의사의 장녀이자 자신의 손녀딸 안현생을 명동성당 수녀원의 프랑스인 수녀에게 맡긴 후 연해주로 망명하였다. 망명 이후 조마리아 여사는 주변으로부터 ‘안중근의 모친’이라는 점에서 끊임없이 찬양과 주목을 받았으며, 동시에 위대한 독립운동가인 아들의 유지를 제대로 선양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여사는 안중근, 안성녀, 안정근, 안공근 등 3남 1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이들은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차남 안정근은 북만주에 난립한 독립군단을 통합시켜 청산리전투의 기반을 확립하였고, 삼남 안공근은 백범 김구의 한인애국단을 실질적으로 운영할 뿐만 아니라 윤봉길과 이봉창의 항일의거를 성사시켰으며, 딸 안성녀는 안중근 의거 이후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으로 망명하여 손수 독립군의 군복을 만들었다. 실로 조마리아는 자식들을 모두 독립운동의 제단에 바친 장한 어머니였다. 조마리아 여사 조마리아 여사 회갑 기념사진 온 가족이 함께한 독립운동, 신건식·오건해 부부 신건식·오건해 부부는 그들 자신이 독립운동가였을 뿐만 아니라, 딸 신순호와 사위 박영준, 형 신규식과 조카 신형호(큰형 정식의 아들), ... 프랑스인 수녀에게 맡긴 후 연해주로 망명하였다. 망명 이후 조마리아 여사는 주변으로부터 ‘안중근의 모친’이라는 점에서 끊임없이 찬양과 주목을 받았으며, 동시에 위대한
독립운동가
인 아들의 유지를 제대로 선양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여사는 안중근, 안성녀, 안정근, 안공근 등 3남 1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이들은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차남 안정근은 북만주에 난립한 독립군단을 통합시켜 청산리전투의 기반을 확립하였고, 삼남 안공근은 백범 김구의 한인애국단을 실질적으로 운영할 뿐만 아니라 윤봉길과 이봉창의 항일의거를 성사시켰으며, 딸 안성녀는 안중근 의거 이후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으로 망명하여 손수 독립군의 군복을 만들었다. 실로 조마리아는 자식들을 모두 독립운동의 제단에 바친 장한 어머니였다. 조마리아 여사 조마리아 여사 회갑 기념사진 온 가족이 함께한 독립운동, 신건식·오건해 부부 신건식·오건해 부부는 그들 자신이 독립운동가였을 뿐만 아니라, 딸 신순호와 사위 박영준, 형 신규식과 조카 신형호(큰형 정식의 아들), 사돈 박찬익이 모두 독립운동가이다. 신규식의 사위는 민필호이고, 민필호의 사위는 김준엽으로 옹서(翁壻, 장인과 사위)가 독립운동가로 연계되는 대표적 사례이다. 그야말로 독립운동 명문가인 셈이다. 독립운동을 후원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한 신건식 선생은 형 신규식을 따라 상하이로 망명했으며, 고향에서 딸을 키우던 오건해 선생 역시 이후 남편을 따라 상하이로 망명했다. 오건해 선생은 임시정부의 안살림과 독립운동가들의 수발을 드는 데 정성을 다했다. 사위 박영준은 장모를 “독립운동가치고 오건해 여사의 음식을 먹어 보지 못한 사람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식 솜씨가 좋은 오건해 여사는 독립운동가의 뒷바라지에 평생을 보낸 분”으로 회고하였다. 또한, 오건해 선생은 만주에 가족을 두고 홀로 충칭으로 와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던 박찬익의 뒷바라지에도 힘썼다. 그녀의 활동은 독립운동가의 뒷바라지에만 그치지 않았다. 1940년 6월 17일, 충칭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이 창립되자 ... 조마리아는 자식들을 모두 독립운동의 제단에 바친 장한 어머니였다. 조마리아 여사 조마리아 여사 회갑 기념사진 온 가족이 함께한 독립운동, 신건식·오건해 부부 신건식·오건해 부부는 그들 자신이
독립운동가
였을 뿐만 아니라, 딸 신순호와 사위 박영준, 형 신규식과 조카 신형호(큰형 정식의 아들), 사돈 박찬익이 모두 독립운동가이다. 신규식의 사위는 민필호이고, 민필호의 사위는 김준엽으로 옹서(翁壻, 장인과 사위)가 독립운동가로 연계되는 대표적 사례이다. 그야말로 독립운동 명문가인 셈이다. 독립운동을 후원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한 신건식 선생은 형 신규식을 따라 상하이로 망명했으며, 고향에서 딸을 키우던 오건해 선생 역시 이후 남편을 따라 상하이로 망명했다. 오건해 선생은 임시정부의 안살림과 독립운동가들의 수발을 드는 데 정성을 다했다. 사위 박영준은 장모를 “독립운동가치고 오건해 여사의 음식을 먹어 보지 못한 사람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식 솜씨가 좋은 오건해 여사는 독립운동가의 뒷바라지에 평생을 보낸 분”으로 회고하였다. 또한, 오건해 선생은 만주에 가족을 두고 홀로 충칭으로 와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던 박찬익의 뒷바라지에도 힘썼다. 그녀의 활동은 독립운동가의 뒷바라지에만 그치지 않았다. 1940년 6월 17일, 충칭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이 창립되자 이에 참가하였고, 1942년부터 한국독립당원으로 참가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신건식·오건해 부부와 딸 신순호 이은숙 선생 이회영 일가 독립운동의 버팀목이었던 이은숙 선생 가족 중 한 사람만 독립운동을 해도 온 집안이 풍비박산났던 시절, 이회영 선생의 가족은 6형제에 이어 자녀들까지 2대에 걸쳐 독립운동을 했던 엄청난 가족이다. 선생의 집안은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이항복이 10대조 선조이며 여섯 명의 정승을 배출한 명문가이자, 명동 땅의 3분의 1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자산가였으나, 전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운용했다. 그리고 이 중심에 이회영 선생의 아내였던 이은숙 선생이 있었다. 20세에 이회영 선생과 혼인한 이은숙 선생은 일가족과 함께 만주 ... 부부 신건식·오건해 부부는 그들 자신이 독립운동가였을 뿐만 아니라, 딸 신순호와 사위 박영준, 형 신규식과 조카 신형호(큰형 정식의 아들), 사돈 박찬익이 모두
독립운동가
이다. 신규식의 사위는 민필호이고, 민필호의 사위는 김준엽으로 옹서(翁壻, 장인과 사위)가 독립운동가로 연계되는 대표적 사례이다. 그야말로 독립운동 명문가인 셈이다. 독립운동을 후원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한 신건식 선생은 형 신규식을 따라 상하이로 망명했으며, 고향에서 딸을 키우던 오건해 선생 역시 이후 남편을 따라 상하이로 망명했다. 오건해 선생은 임시정부의 안살림과 독립운동가들의 수발을 드는 데 정성을 다했다. 사위 박영준은 장모를 “독립운동가치고 오건해 여사의 음식을 먹어 보지 못한 사람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식 솜씨가 좋은 오건해 여사는 독립운동가의 뒷바라지에 평생을 보낸 분”으로 회고하였다. 또한, 오건해 선생은 만주에 가족을 두고 홀로 충칭으로 와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던 박찬익의 뒷바라지에도 힘썼다. 그녀의 활동은 독립운동가의 뒷바라지에만 그치지 않았다. 1940년 6월 17일, 충칭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이 창립되자 이에 참가하였고, 1942년부터 한국독립당원으로 참가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신건식·오건해 부부와 딸 신순호 이은숙 선생 이회영 일가 독립운동의 버팀목이었던 이은숙 선생 가족 중 한 사람만 독립운동을 해도 온 집안이 풍비박산났던 시절, 이회영 선생의 가족은 6형제에 이어 자녀들까지 2대에 걸쳐 독립운동을 했던 엄청난 가족이다. 선생의 집안은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이항복이 10대조 선조이며 여섯 명의 정승을 배출한 명문가이자, 명동 땅의 3분의 1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자산가였으나, 전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운용했다. 그리고 이 중심에 이회영 선생의 아내였던 이은숙 선생이 있었다. 20세에 이회영 선생과 혼인한 이은숙 선생은 일가족과 함께 만주 류허헌(柳河縣) 싼위안푸(三源堡)로 이주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설립 등 독립운동기지 개척에 일조하였다. 이후 이회영 선생을 따라 베이징으로 이동하여 임신한 ... 박영준, 형 신규식과 조카 신형호(큰형 정식의 아들), 사돈 박찬익이 모두 독립운동가이다. 신규식의 사위는 민필호이고, 민필호의 사위는 김준엽으로 옹서(翁壻, 장인과 사위)가
독립운동가
로 연계되는 대표적 사례이다. 그야말로 독립운동 명문가인 셈이다. 독립운동을 후원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한 신건식 선생은 형 신규식을 따라 상하이로 망명했으며, 고향에서 딸을 키우던 오건해 선생 역시 이후 남편을 따라 상하이로 망명했다. 오건해 선생은 임시정부의 안살림과 독립운동가들의 수발을 드는 데 정성을 다했다. 사위 박영준은 장모를 “독립운동가치고 오건해 여사의 음식을 먹어 보지 못한 사람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식 솜씨가 좋은 오건해 여사는 독립운동가의 뒷바라지에 평생을 보낸 분”으로 회고하였다. 또한, 오건해 선생은 만주에 가족을 두고 홀로 충칭으로 와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던 박찬익의 뒷바라지에도 힘썼다. 그녀의 활동은 독립운동가의 뒷바라지에만 그치지 않았다. 1940년 6월 17일, 충칭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이 창립되자 이에 참가하였고, 1942년부터 한국독립당원으로 참가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신건식·오건해 부부와 딸 신순호 이은숙 선생 이회영 일가 독립운동의 버팀목이었던 이은숙 선생 가족 중 한 사람만 독립운동을 해도 온 집안이 풍비박산났던 시절, 이회영 선생의 가족은 6형제에 이어 자녀들까지 2대에 걸쳐 독립운동을 했던 엄청난 가족이다. 선생의 집안은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이항복이 10대조 선조이며 여섯 명의 정승을 배출한 명문가이자, 명동 땅의 3분의 1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자산가였으나, 전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운용했다. 그리고 이 중심에 이회영 선생의 아내였던 이은숙 선생이 있었다. 20세에 이회영 선생과 혼인한 이은숙 선생은 일가족과 함께 만주 류허헌(柳河縣) 싼위안푸(三源堡)로 이주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설립 등 독립운동기지 개척에 일조하였다. 이후 이회영 선생을 따라 베이징으로 이동하여 임신한 몸으로 남매를 돌보며, 독립운동가를 보필하는 삶이 계속되었다. 국내에 귀국해서도 그의 ... 형 신규식을 따라 상하이로 망명했으며, 고향에서 딸을 키우던 오건해 선생 역시 이후 남편을 따라 상하이로 망명했다. 오건해 선생은 임시정부의 안살림과
독립운동가
들의 수발을 드는 데 정성을 다했다. 사위 박영준은 장모를 “독립운동가치고 오건해 여사의 음식을 먹어 보지 못한 사람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식 솜씨가 좋은 오건해 여사는 독립운동가의 뒷바라지에 평생을 보낸 분”으로 회고하였다. 또한, 오건해 선생은 만주에 가족을 두고 홀로 충칭으로 와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던 박찬익의 뒷바라지에도 힘썼다. 그녀의 활동은 독립운동가의 뒷바라지에만 그치지 않았다. 1940년 6월 17일, 충칭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이 창립되자 이에 참가하였고, 1942년부터 한국독립당원으로 참가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신건식·오건해 부부와 딸 신순호 이은숙 선생 이회영 일가 독립운동의 버팀목이었던 이은숙 선생 가족 중 한 사람만 독립운동을 해도 온 집안이 풍비박산났던 시절, 이회영 선생의 가족은 6형제에 이어 자녀들까지 2대에 걸쳐 독립운동을 했던 엄청난 가족이다. 선생의 집안은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이항복이 10대조 선조이며 여섯 명의 정승을 배출한 명문가이자, 명동 땅의 3분의 1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자산가였으나, 전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운용했다. 그리고 이 중심에 이회영 선생의 아내였던 이은숙 선생이 있었다. 20세에 이회영 선생과 혼인한 이은숙 선생은 일가족과 함께 만주 류허헌(柳河縣) 싼위안푸(三源堡)로 이주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설립 등 독립운동기지 개척에 일조하였다. 이후 이회영 선생을 따라 베이징으로 이동하여 임신한 몸으로 남매를 돌보며, 독립운동가를 보필하는 삶이 계속되었다. 국내에 귀국해서도 그의 독립운동 자금 지원은 계속되었다. 동지들의 도움을 받아 마련한 자금을 이회영 선생에게 보내기도 했는데, 1926년에는 자금 마련 일이 경찰에 탐지되어 조사를 받기도 했다. 1928년부터는 경성부 병목정에 있는 고무공장(경성직뉴공장)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바느질로 장충동 일대 기생의 ... 선생 역시 이후 남편을 따라 상하이로 망명했다. 오건해 선생은 임시정부의 안살림과 독립운동가들의 수발을 드는 데 정성을 다했다. 사위 박영준은 장모를 “
독립운동가
치고 오건해 여사의 음식을 먹어 보지 못한 사람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식 솜씨가 좋은 오건해 여사는 독립운동가의 뒷바라지에 평생을 보낸 분”으로 회고하였다. 또한, 오건해 선생은 만주에 가족을 두고 홀로 충칭으로 와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던 박찬익의 뒷바라지에도 힘썼다. 그녀의 활동은 독립운동가의 뒷바라지에만 그치지 않았다. 1940년 6월 17일, 충칭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이 창립되자 이에 참가하였고, 1942년부터 한국독립당원으로 참가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신건식·오건해 부부와 딸 신순호 이은숙 선생 이회영 일가 독립운동의 버팀목이었던 이은숙 선생 가족 중 한 사람만 독립운동을 해도 온 집안이 풍비박산났던 시절, 이회영 선생의 가족은 6형제에 이어 자녀들까지 2대에 걸쳐 독립운동을 했던 엄청난 가족이다. 선생의 집안은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이항복이 10대조 선조이며 여섯 명의 정승을 배출한 명문가이자, 명동 땅의 3분의 1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자산가였으나, 전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운용했다. 그리고 이 중심에 이회영 선생의 아내였던 이은숙 선생이 있었다. 20세에 이회영 선생과 혼인한 이은숙 선생은 일가족과 함께 만주 류허헌(柳河縣) 싼위안푸(三源堡)로 이주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설립 등 독립운동기지 개척에 일조하였다. 이후 이회영 선생을 따라 베이징으로 이동하여 임신한 몸으로 남매를 돌보며, 독립운동가를 보필하는 삶이 계속되었다. 국내에 귀국해서도 그의 독립운동 자금 지원은 계속되었다. 동지들의 도움을 받아 마련한 자금을 이회영 선생에게 보내기도 했는데, 1926년에는 자금 마련 일이 경찰에 탐지되어 조사를 받기도 했다. 1928년부터는 경성부 병목정에 있는 고무공장(경성직뉴공장)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바느질로 장충동 일대 기생의 옷을 만들었으며, 그렇게 모은 돈을 아껴 베이징으로 보냈다. 1930년 ... 선생은 임시정부의 안살림과 독립운동가들의 수발을 드는 데 정성을 다했다. 사위 박영준은 장모를 “독립운동가치고 오건해 여사의 음식을 먹어 보지 못한 사람은
독립운동가
가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식 솜씨가 좋은 오건해 여사는 독립운동가의 뒷바라지에 평생을 보낸 분”으로 회고하였다. 또한, 오건해 선생은 만주에 가족을 두고 홀로 충칭으로 와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던 박찬익의 뒷바라지에도 힘썼다. 그녀의 활동은 독립운동가의 뒷바라지에만 그치지 않았다. 1940년 6월 17일, 충칭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이 창립되자 이에 참가하였고, 1942년부터 한국독립당원으로 참가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신건식·오건해 부부와 딸 신순호 이은숙 선생 이회영 일가 독립운동의 버팀목이었던 이은숙 선생 가족 중 한 사람만 독립운동을 해도 온 집안이 풍비박산났던 시절, 이회영 선생의 가족은 6형제에 이어 자녀들까지 2대에 걸쳐 독립운동을 했던 엄청난 가족이다. 선생의 집안은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이항복이 10대조 선조이며 여섯 명의 정승을 배출한 명문가이자, 명동 땅의 3분의 1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자산가였으나, 전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운용했다. 그리고 이 중심에 이회영 선생의 아내였던 이은숙 선생이 있었다. 20세에 이회영 선생과 혼인한 이은숙 선생은 일가족과 함께 만주 류허헌(柳河縣) 싼위안푸(三源堡)로 이주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설립 등 독립운동기지 개척에 일조하였다. 이후 이회영 선생을 따라 베이징으로 이동하여 임신한 몸으로 남매를 돌보며, 독립운동가를 보필하는 삶이 계속되었다. 국내에 귀국해서도 그의 독립운동 자금 지원은 계속되었다. 동지들의 도움을 받아 마련한 자금을 이회영 선생에게 보내기도 했는데, 1926년에는 자금 마련 일이 경찰에 탐지되어 조사를 받기도 했다. 1928년부터는 경성부 병목정에 있는 고무공장(경성직뉴공장)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바느질로 장충동 일대 기생의 옷을 만들었으며, 그렇게 모은 돈을 아껴 베이징으로 보냈다. 1930년 들어 경찰의 단속으로 바느질 마저 여의치 않자, 남의 ... 박영준은 장모를 “독립운동가치고 오건해 여사의 음식을 먹어 보지 못한 사람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식 솜씨가 좋은 오건해 여사는
독립운동가
의 뒷바라지에 평생을 보낸 분”으로 회고하였다. 또한, 오건해 선생은 만주에 가족을 두고 홀로 충칭으로 와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던 박찬익의 뒷바라지에도 힘썼다. 그녀의 활동은 독립운동가의 뒷바라지에만 그치지 않았다. 1940년 6월 17일, 충칭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이 창립되자 이에 참가하였고, 1942년부터 한국독립당원으로 참가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신건식·오건해 부부와 딸 신순호 이은숙 선생 이회영 일가 독립운동의 버팀목이었던 이은숙 선생 가족 중 한 사람만 독립운동을 해도 온 집안이 풍비박산났던 시절, 이회영 선생의 가족은 6형제에 이어 자녀들까지 2대에 걸쳐 독립운동을 했던 엄청난 가족이다. 선생의 집안은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이항복이 10대조 선조이며 여섯 명의 정승을 배출한 명문가이자, 명동 땅의 3분의 1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자산가였으나, 전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운용했다. 그리고 이 중심에 이회영 선생의 아내였던 이은숙 선생이 있었다. 20세에 이회영 선생과 혼인한 이은숙 선생은 일가족과 함께 만주 류허헌(柳河縣) 싼위안푸(三源堡)로 이주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설립 등 독립운동기지 개척에 일조하였다. 이후 이회영 선생을 따라 베이징으로 이동하여 임신한 몸으로 남매를 돌보며, 독립운동가를 보필하는 삶이 계속되었다. 국내에 귀국해서도 그의 독립운동 자금 지원은 계속되었다. 동지들의 도움을 받아 마련한 자금을 이회영 선생에게 보내기도 했는데, 1926년에는 자금 마련 일이 경찰에 탐지되어 조사를 받기도 했다. 1928년부터는 경성부 병목정에 있는 고무공장(경성직뉴공장)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바느질로 장충동 일대 기생의 옷을 만들었으며, 그렇게 모은 돈을 아껴 베이징으로 보냈다. 1930년 들어 경찰의 단속으로 바느질 마저 여의치 않자, 남의 집의 가사를 돕는 일을 하기도 했다. 평생을 남편과 독립운동에 헌신한 ... 보낸 분”으로 회고하였다. 또한, 오건해 선생은 만주에 가족을 두고 홀로 충칭으로 와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던 박찬익의 뒷바라지에도 힘썼다. 그녀의 활동은
독립운동가
의 뒷바라지에만 그치지 않았다. 1940년 6월 17일, 충칭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이 창립되자 이에 참가하였고, 1942년부터 한국독립당원으로 참가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신건식·오건해 부부와 딸 신순호 이은숙 선생 이회영 일가 독립운동의 버팀목이었던 이은숙 선생 가족 중 한 사람만 독립운동을 해도 온 집안이 풍비박산났던 시절, 이회영 선생의 가족은 6형제에 이어 자녀들까지 2대에 걸쳐 독립운동을 했던 엄청난 가족이다. 선생의 집안은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이항복이 10대조 선조이며 여섯 명의 정승을 배출한 명문가이자, 명동 땅의 3분의 1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자산가였으나, 전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운용했다. 그리고 이 중심에 이회영 선생의 아내였던 이은숙 선생이 있었다. 20세에 이회영 선생과 혼인한 이은숙 선생은 일가족과 함께 만주 류허헌(柳河縣) 싼위안푸(三源堡)로 이주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설립 등 독립운동기지 개척에 일조하였다. 이후 이회영 선생을 따라 베이징으로 이동하여 임신한 몸으로 남매를 돌보며, 독립운동가를 보필하는 삶이 계속되었다. 국내에 귀국해서도 그의 독립운동 자금 지원은 계속되었다. 동지들의 도움을 받아 마련한 자금을 이회영 선생에게 보내기도 했는데, 1926년에는 자금 마련 일이 경찰에 탐지되어 조사를 받기도 했다. 1928년부터는 경성부 병목정에 있는 고무공장(경성직뉴공장)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바느질로 장충동 일대 기생의 옷을 만들었으며, 그렇게 모은 돈을 아껴 베이징으로 보냈다. 1930년 들어 경찰의 단속으로 바느질 마저 여의치 않자, 남의 집의 가사를 돕는 일을 하기도 했다. 평생을 남편과 독립운동에 헌신한 그녀의 삶은 끝까지 고달팠지만, 그녀의 헌신이 있었기에 이회영 가의 독립운동은 계속될 수 있었다. ... 만주 류허헌(柳河縣) 싼위안푸(三源堡)로 이주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설립 등 독립운동기지 개척에 일조하였다. 이후 이회영 선생을 따라 베이징으로 이동하여 임신한 몸으로 남매를 돌보며,
독립운동가
를 보필하는 삶이 계속되었다. 국내에 귀국해서도 그의 독립운동 자금 지원은 계속되었다. 동지들의 도움을 받아 마련한 자금을 이회영 선생에게 보내기도 했는데, 1926년에는 자금 마련 일이 경찰에 탐지되어 조사를 받기도 했다. 1928년부터는 경성부 병목정에 있는 고무공장(경성직뉴공장)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바느질로 장충동 일대 기생의 옷을 만들었으며, 그렇게 모은 돈을 아껴 베이징으로 보냈다. 1930년 들어 경찰의 단속으로 바느질 마저 여의치 않자, 남의 집의 가사를 돕는 일을 하기도 했다. 평생을 남편과 독립운동에 헌신한 그녀의 삶은 끝까지 고달팠지만, 그녀의 헌신이 있었기에 이회영 가의 독립운동은 계속될 수 있었다. ...
삼균주의(三均主義)를 통해 독립운동을 펼쳐나간 조소앙 선생
vol.190
기회 경기 경기, 광복 80주년 삼균주의(三均主義)를 통해 독립운동을 펼쳐나간 조소앙 선생2025. 04 일제강점기 대한독립의군부 부주석, 임시정부 국무위원, 한국독립당 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자 정치사상가이며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골자로 한 삼균주의를 제창하여 임시정부 정강정책의 바탕으로 삼은 인물, 바로 조소앙(趙素昻, 1887. 4. 10.~1958. 9. 10.) 선생이다. 그는 임시정부의 외교부장으로 한국이 카이로선언과 포츠담선언을 통해 독립을 보장받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정리. 편집실 참고. 공훈전자사료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적극적인 항일운동과 대동단결선언 일찍 개화파가 된 맏형 조용하의 영향으로 개화와 서양 지식에 일찍 눈을 뜬 조소앙 선생은 1902년 성균관에 최연소자로 입학할 만큼 수학능력이 뛰어났다. 성균관 수료 후 황실유학생에 선발되어 도일 도쿄부립제일중학교(東京府立第一中學校)에 입학한 선생은 학생 때부터 일제의 만행을 비판하고 행동하는 데 두려움이 없었다. 1910년 한국이 일제에 강제 합병되자 ‘한일합방성토문’ 등을 작성하여 비상대회의 비밀 소집을 도모하다 왜경에 발각되어 구금당하기도 했고, 1912년에는 항일운동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중국으로 망명하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체포되기도 했다. 이후 북경을 거쳐 상해로 망명한 선생은 박달학원(博達學院)이라는 교육기관을 개편·창설하여 청년 혁명가들을 육성하고 종교를 통해 국내외 동포를 하나로 결집하기 위해 ‘육성교(六聖敎)’1 라는 구국종교를 만들기에 이른다. 이 같은 사상을 바탕으로 선생은 1917년 7월에 상해에서 ‘대동단결선언(大同團結宣言)’을 신규식·박은식·신채호 등 14명의 명의로 발표하고 각계 인사에게 발송했다. 이 선언문은 주권재민2 과 대동사상에 기초한 선구적인 독립선언이었다. 조소앙 선생 / 출처 : 보훈후 공훈록 1단군의 독립사상, 석가의 자비제중(慈悲濟衆), 공자의 충서일관(忠恕一貫), 소크라테스의 지덕합치(知德合致), 예수 그리스도의 애인여기(愛人如己), 마호메트의 신행필용(信行必勇)을 연결하여 육성일체화(六聖一體化) 시키고자 한 것 2나라의 권력이 국민에게 있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근간이 된 삼균주의 선생의 일생에 있어 ‘삼균주의’를 빼놓을 수 없다. 삼균이란 개인 간·민족 간·국가 간 균등을 말하고, 정치적 균등·경제적 균등·교육적 균등을 의미한다. ...
기회기자단이 본 별별 경기
vol.190
카자흐스탄, 호주, 미국 등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영상메시지가 소개되었고, 상해에 거주하는 후손들과의 영상통화도 진행됐다. 또한, 2세대부터 5세대에 이르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참석해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특별한 자리도 마련되었다. 경기도는 이 자리에서 광복 80주년을 맞아 경기도 독립운동가 80인을 선정하여 3·1절을 시작으로 오는 8월 15일까지 순차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히며, 첫 독립운동가로 ‘조소앙 선생’을 선정·발표했다. 이번 기념식은 미래 세대에도 독립정신의 의미를 전하는 뜻깊은 기회가 되었다. 임가을 기자(꿈나무기자단) #04 어린이들에게도 안성맞춤, ‘2025 경기국제보트쇼’ 2025년 경기국제보트쇼가 2월 28일부터 3월 2일까지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1전시장에서 열렸다. 18년째 운영되고 있는 경기국제보트쇼는 요트 및 보트 등 해양관광과 관련된 다채로운 제품과 체험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보다 2배 증가한 17개의 체험부스가 운영되어 보다 풍성한 콘텐츠가 가득했다. 경기해양안전체험관의 대형 풀장에서는 구명뗏목 체험을, 트레일러 체험관에서는 후면에 트레일러를 달고 있는 차량을 직접 운전해 볼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카약·미니 호버보트 제작, 심폐소생술, 서핑 중심잡기 등 다채로운 체험이 마련됐다. 경기국제보트쇼는 매년 새로운 체험과 전시로 찾아온다고 하니,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 공레오 기자(꿈나무기자단) #05 2025 경기도 기회기자단, 새로운 시작을 알리다 지난 2월 28일, 경기도청 다산홀이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352명의 경기도민으로 구성된 ‘2025 경기도 기회기자단’이 위촉장을 받고, 기자증을 목에 걸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 올해 기회기자단은 꿈나무기자단, 청소년기자단, 대학생기자단, 일반기자단으로 구성돼 도정 소식과 지역 현안을 도민의 시선에서 취재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발대식을 마친 기자단은 연말까지 ‘기회수도 경기도’의 다양한 기회를 발굴하고, 이를 도민들에게 알리는 소통 메신저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들이 취재한 소식은 경기도 공식 블로그, 경기도뉴스포털, SNS 등을 통해 도민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윤지원 ... 진행됐다. 또한, 2세대부터 5세대에 이르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참석해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특별한 자리도 마련되었다. 경기도는 이 자리에서 광복 80주년을 맞아 경기도
독립운동가
80인을 선정하여 3·1절을 시작으로 오는 8월 15일까지 순차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히며, 첫 독립운동가로 ‘조소앙 선생’을 선정·발표했다. 이번 기념식은 미래 세대에도 독립정신의 의미를 전하는 뜻깊은 기회가 되었다. 임가을 기자(꿈나무기자단) #04 어린이들에게도 안성맞춤, ‘2025 경기국제보트쇼’ 2025년 경기국제보트쇼가 2월 28일부터 3월 2일까지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1전시장에서 열렸다. 18년째 운영되고 있는 경기국제보트쇼는 요트 및 보트 등 해양관광과 관련된 다채로운 제품과 체험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보다 2배 증가한 17개의 체험부스가 운영되어 보다 풍성한 콘텐츠가 가득했다. 경기해양안전체험관의 대형 풀장에서는 구명뗏목 체험을, 트레일러 체험관에서는 후면에 트레일러를 달고 있는 차량을 직접 운전해 볼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카약·미니 호버보트 제작, 심폐소생술, 서핑 중심잡기 등 다채로운 체험이 마련됐다. 경기국제보트쇼는 매년 새로운 체험과 전시로 찾아온다고 하니,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 공레오 기자(꿈나무기자단) #05 2025 경기도 기회기자단, 새로운 시작을 알리다 지난 2월 28일, 경기도청 다산홀이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352명의 경기도민으로 구성된 ‘2025 경기도 기회기자단’이 위촉장을 받고, 기자증을 목에 걸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 올해 기회기자단은 꿈나무기자단, 청소년기자단, 대학생기자단, 일반기자단으로 구성돼 도정 소식과 지역 현안을 도민의 시선에서 취재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발대식을 마친 기자단은 연말까지 ‘기회수도 경기도’의 다양한 기회를 발굴하고, 이를 도민들에게 알리는 소통 메신저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들이 취재한 소식은 경기도 공식 블로그, 경기도뉴스포털, SNS 등을 통해 도민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윤지원 기자(꿈나무기자단) #06 11~18세 경기도 여성청소년 혜택 챙겨가세요! 2025년 경기도 여성청소년 생리용품 보편지원 사업이 3월 4일부터 1차 온라인 접수를 ... 경기도는 이 자리에서 광복 80주년을 맞아 경기도 독립운동가 80인을 선정하여 3·1절을 시작으로 오는 8월 15일까지 순차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히며, 첫
독립운동가
로 ‘조소앙 선생’을 선정·발표했다. 이번 기념식은 미래 세대에도 독립정신의 의미를 전하는 뜻깊은 기회가 되었다. 임가을 기자(꿈나무기자단) #04 어린이들에게도 안성맞춤, ‘2025 경기국제보트쇼’ 2025년 경기국제보트쇼가 2월 28일부터 3월 2일까지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1전시장에서 열렸다. 18년째 운영되고 있는 경기국제보트쇼는 요트 및 보트 등 해양관광과 관련된 다채로운 제품과 체험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보다 2배 증가한 17개의 체험부스가 운영되어 보다 풍성한 콘텐츠가 가득했다. 경기해양안전체험관의 대형 풀장에서는 구명뗏목 체험을, 트레일러 체험관에서는 후면에 트레일러를 달고 있는 차량을 직접 운전해 볼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카약·미니 호버보트 제작, 심폐소생술, 서핑 중심잡기 등 다채로운 체험이 마련됐다. 경기국제보트쇼는 매년 새로운 체험과 전시로 찾아온다고 하니,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 공레오 기자(꿈나무기자단) #05 2025 경기도 기회기자단, 새로운 시작을 알리다 지난 2월 28일, 경기도청 다산홀이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352명의 경기도민으로 구성된 ‘2025 경기도 기회기자단’이 위촉장을 받고, 기자증을 목에 걸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 올해 기회기자단은 꿈나무기자단, 청소년기자단, 대학생기자단, 일반기자단으로 구성돼 도정 소식과 지역 현안을 도민의 시선에서 취재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발대식을 마친 기자단은 연말까지 ‘기회수도 경기도’의 다양한 기회를 발굴하고, 이를 도민들에게 알리는 소통 메신저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들이 취재한 소식은 경기도 공식 블로그, 경기도뉴스포털, SNS 등을 통해 도민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윤지원 기자(꿈나무기자단) #06 11~18세 경기도 여성청소년 혜택 챙겨가세요! 2025년 경기도 여성청소년 생리용품 보편지원 사업이 3월 4일부터 1차 온라인 접수를 시작했다. 작년에는 월 13,000원의 생리용품 구입비를 지원했다면, 올해는 월 14,000원으로 작년 대비 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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