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3·1운동"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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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가른 한 줄기 빛 뜨겁게 타오른 그날의 함성vol.201

윌리엄 스코필드 선교사의 보고서 중 순국선열 23인의 발굴 유해가 안장된 합동 묘로 오르는 길 순국선열을 기리는 조형물 ‘자유롭게 저 하늘을’ 3·1운동 순국기념탑 목숨 걸고 흔들었던 태극기, 그 고귀한 뜻 참혹한 학살 사건의 옛터에는 이제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이 자리한다. 죄 없는 주민이 스러져 간 이곳에는 그 희생을 기리는 기념탑과 기념비 등이 세워졌고, 순국선열이 ‘자유롭게 저 하늘을’ 날아다니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조형물이 그들을 추모한다. 23개의 크고 작은 돌기둥은 순국선열들의 혼을 담은 추모비이며, 높이 솟은 기둥은 무한한 자유를, 기둥의 원(○)은 시공간을 초월한 무한한 미래 세계를 상징한다. 뒤편 합동 묘로 올라가는 길에는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인다. 그날 하늘 위로 높이 들었던 선열들의 태극기가 여전히 휘날리는 듯하다. 기념관 내 전시관 복도에 놓인 빛의 통로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찬란한 빛 그날의 외침과 희생은 빼앗긴 들에 봄을 가져다주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길 위에서도 희망의 빛을 잃지 않았던 민족의 의지가 피워낸 봄이다. 그리고 봄처럼 밝은 빛이 지하의 기념관 내부를 밝힌다. 이 빛은 건축적 미학과 역사적 의미를 함께 담아낸다. 이곳은 일상을 즐길 수 있는 지상의 공원과 독립운동의 역사를 소개하는 지하의 기념관을 빛과 어둠이 대비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바로 위에는 평화로운 일상이 있음을, 그러나 결코 그 일상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되새기게 한다. 기사 공유하기 ... 조형물 ‘자유롭게 저 하늘을’ 3·1운동 순국기념탑 목숨 걸고 흔들었던 태극기, 그 고귀한 뜻 참혹한 학살 사건의 옛터에는 이제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이 자리한다. 죄 없는 주민이 스러져 간 이곳에는 그 희생을 기리는 기념탑과 기념비 등이 세워졌고, 순국선열이 ‘자유롭게 저 하늘을’ 날아다니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조형물이 그들을 추모한다. 23개의 크고 작은 돌기둥은 순국선열들의 혼을 담은 추모비이며, 높이 솟은 기둥은 무한한 자유를, 기둥의 원(○)은 시공간을 초월한 무한한 미래 세계를 상징한다. 뒤편 합동 묘로 올라가는 길에는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인다. 그날 하늘 위로 높이 들었던 선열들의 태극기가 여전히 휘날리는 듯하다. 기념관 내 전시관 복도에 놓인 빛의 통로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찬란한 빛 그날의 외침과 희생은 빼앗긴 들에 봄을 가져다주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길 위에서도 희망의 빛을 잃지 않았던 민족의 의지가 피워낸 봄이다. 그리고 봄처럼 밝은 빛이 지하의 기념관 내부를 밝힌다. 이 빛은 건축적 미학과 역사적 의미를 함께 담아낸다. 이곳은 일상을 즐길 수 있는 지상의 공원과 독립운동의 역사를 소개하는 지하의 기념관을 빛과 어둠이 대비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바로 위에는 평화로운 일상이 있음을, 그러나 결코 그 일상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되새기게 한다. 기사 공유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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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 집이 된 한국 그렇게 나의 인생사에 들어온 한국사 벨랴코프 일리야 교수vol.201

SNS에 태극기를 올리며 그 의미를 되새긴다. 그는 2024년 경기도에서 진행한 ‘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1919년 당시 경기도 양주군 가납리에서 일어난 ‘가래비 3·1운동’ 이야기를 다룬 영상 제작에도 참여했다. 메시지는 단 하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것. 그에게도 3·1운동은 먼 나라 얘기가 아니었다. “제가 자라온 블라디보스토크도 항일 투쟁이 펼쳐진 곳 중 하나였어요. 러시아에서 한국학을 배우며 우리 땅에서도 항일 투쟁이 있었다는 것을 인지했죠. 그때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헌납하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활동한 최재형 선생에게 관심을 가지며 3·1운동의 의미를 조금씩 알아가게 됐어요.” 현재 대학에서 러시아어권 학생들에게 ‘한국 역사’에 대해 강의할 정도로 지식이 깊은 그지만, 한때는 역사에 관심이 없는 학생이었다. 그러다 한국에서 살아가며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역사가 왜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고. “정치인, 정당이 어떤 행동이나 발언을 하면 그걸 이해하기 위해 과거를 되짚어 봐야 했어요. 맥락을 봐야 이해가 되더라고요. 역사도 이와 같아요. 우리가 누구인지,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상황이 어떻게, 왜 발생한 건지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공부해야 해요. 그리고 문제가 있을 때 극복하고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도 역사가 필요하죠. 역사 속에 답이 있어요. 이미 우리가 겪어온 일이거든요.” 한국어를 배우며 더 활발해진 소통 그는 여러 방송에서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 이주민 정책이나 한·러 관계, 한국사 해석 등 어려운 주제를 풀어낸다. 오랫동안 공부하고, 또 고민해 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SNS에서도 일상이나 정치 이슈부터 학술 논쟁까지 한국어로 실시간 토론을 즐기는 그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의 삶이 한국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었던 건 이처럼 뛰어난 언어 구사력 덕분이었다. 물론 ... 양주군 가납리에서 일어난 ‘가래비 3·1운동’ 이야기를 다룬 영상 제작에도 참여했다. 메시지는 단 하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것. 그에게도 3·1운동은 먼 나라 얘기가 아니었다. “제가 자라온 블라디보스토크도 항일 투쟁이 펼쳐진 곳 중 하나였어요. 러시아에서 한국학을 배우며 우리 땅에서도 항일 투쟁이 있었다는 것을 인지했죠. 그때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헌납하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활동한 최재형 선생에게 관심을 가지며 3·1운동의 의미를 조금씩 알아가게 됐어요.” 현재 대학에서 러시아어권 학생들에게 ‘한국 역사’에 대해 강의할 정도로 지식이 깊은 그지만, 한때는 역사에 관심이 없는 학생이었다. 그러다 한국에서 살아가며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역사가 왜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고. “정치인, 정당이 어떤 행동이나 발언을 하면 그걸 이해하기 위해 과거를 되짚어 봐야 했어요. 맥락을 봐야 이해가 되더라고요. 역사도 이와 같아요. 우리가 누구인지,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상황이 어떻게, 왜 발생한 건지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공부해야 해요. 그리고 문제가 있을 때 극복하고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도 역사가 필요하죠. 역사 속에 답이 있어요. 이미 우리가 겪어온 일이거든요.” 한국어를 배우며 더 활발해진 소통 그는 여러 방송에서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 이주민 정책이나 한·러 관계, 한국사 해석 등 어려운 주제를 풀어낸다. 오랫동안 공부하고, 또 고민해 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SNS에서도 일상이나 정치 이슈부터 학술 논쟁까지 한국어로 실시간 토론을 즐기는 그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의 삶이 한국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었던 건 이처럼 뛰어난 언어 구사력 덕분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유창했던 건 아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공부할 때는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한계가 ... 한국학을 배우며 우리 땅에서도 항일 투쟁이 있었다는 것을 인지했죠. 그때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헌납하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활동한 최재형 선생에게 관심을 가지며 3·1운동의 의미를 조금씩 알아가게 됐어요.” 현재 대학에서 러시아어권 학생들에게 ‘한국 역사’에 대해 강의할 정도로 지식이 깊은 그지만, 한때는 역사에 관심이 없는 학생이었다. 그러다 한국에서 살아가며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역사가 왜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고. “정치인, 정당이 어떤 행동이나 발언을 하면 그걸 이해하기 위해 과거를 되짚어 봐야 했어요. 맥락을 봐야 이해가 되더라고요. 역사도 이와 같아요. 우리가 누구인지,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상황이 어떻게, 왜 발생한 건지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공부해야 해요. 그리고 문제가 있을 때 극복하고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도 역사가 필요하죠. 역사 속에 답이 있어요. 이미 우리가 겪어온 일이거든요.” 한국어를 배우며 더 활발해진 소통 그는 여러 방송에서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 이주민 정책이나 한·러 관계, 한국사 해석 등 어려운 주제를 풀어낸다. 오랫동안 공부하고, 또 고민해 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SNS에서도 일상이나 정치 이슈부터 학술 논쟁까지 한국어로 실시간 토론을 즐기는 그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의 삶이 한국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었던 건 이처럼 뛰어난 언어 구사력 덕분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유창했던 건 아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공부할 때는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한계가 드러났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언어의 벽’을 느꼈다고. “학교에서 수업을 듣거나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언어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실제 업무에서는 한계가 느껴지더라고요.” 이후 조금씩 성장해 현재에 이른 그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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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만세’ 외친 경기도의 최연소 독립운동가 소은숙·소은명 자매vol.196

올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뒤이어 운동장으로 내려와 다시 한번 만세운동을 펼쳤다. 배화여학교 고등과 제12회 졸업생들과 교직원들 ⓒ 독립운동인명사전 경성지방법원의 판결문 ⓒ 국가보훈부 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르다 3·1운동 1주년을 맞이하여 당시 서울 시내는 물론 각급 학교를 예의주시하던 일제는 만세운동이 벌어지자마자 즉시 이들을 붙잡았다. 이때 동생 소은명을 비롯한 23명의 학생이 서대문감옥에 미결로 수감되어 옥고를 겪었다. 한 달여 후인 1920년 4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서는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실제로 1개월 5일간 옥고를 치렀다. 배화여학교 만세재현운동에 대한 경성지방법원의 1920년 4월 5일 판결문을 보면 ‘손병희 등이 조선독립의 선언(1919년 3월 1일)을 하여 다중이 취합한 곳에서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한 바 있으며 마침 1920년 3월 1일은 이 선언의 기념일에 해당하여 피고(소은명 지사를 포함한 6명의 여학생) 등은 서로 공모하여 조선독립 만세를 고창함으로써 치안을 방해한 자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당시 소은명 지사의 나이는 고작 만 14세로 함께 독립운동하던 배화여학교 학생 중에서 가장 어렸다. 마침내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은 두 자매 소은숙·소은명 지사와 학생들의 만세운동은 점점 잊혀가는 듯 했다. 그러다 2018년 8월 15일, 그들은 98년 만에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았다. 국가보훈부가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으로 배화여학교 학생 6명의 독립운동을 인정한 것이다. 독립유공자 중 여성 비율이 2%에 불과한 것을 감안할 때 이들의 만세운동은 더욱 높이 평가된다. 이어 같은 해 8월, 소은숙·소은명 지사 후손에게 대통령 표창을 수여했다. 이로써 두 사람은 공식적인 항일 여성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후손이 나타나지 않아 정부는 2개월이 넘게 서훈(대통령 표창)을 전달하지 못했다. (위) 소은숙 지사의 일제 주요 감시대상 인물카드 ⓒ 국가보훈부 (아래) 소은명 지사의 일제 주요 감시대상 인물카드 ⓒ 국가보훈부 그러다 소은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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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역사를 바로 세우다 경기도가 선정한 올해의 독립운동가 80인vol.194

앞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여 기상을 높였다. 이런가 하면 어린 나이에 독립운동을 펼친 자매도 있다. 바로 연천의 소은숙(1903~?)·소은명(1905~1986) 자매다. 자매는 배화여학교 재학 중 3·1운동 1주년을 기념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여 1920년 3월 1일 학교 교정과 기숙사 뒤편 언덕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일로 일제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을 당시 소은명 선생의 나이는 만 14세로, 지금까지 최연소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날 순국한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바로 광주의 구연영(1864~1907)·구정서(1882~1907) 부자의 이야기이다.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에 격분하여 일제를 몰아내기 위해 군사를 모집하고 일본군과 다수의 전투를 벌이기도 했던 구연영 선생은 이후 1907년 정미의병이 일어나자, 구국계몽활동을 펼치고 이천·여주·광주 일대를 순회하며 상인들의 철시투쟁을 유도하는 등의 활동을 계속하였다. 아들인 구정서 선생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3일간 철시를 단행케 하였고, 여주와 원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접전하였다. 1907년 일진회원의 밀고로 부자가 함께 체포되어 적에게 혹독한 고문을 받았으나, 조금도 뜻을 굽히지 않아 부친과 함께 총살당하여 순국하였다. 이렇듯 출신, 성별, 환경 등 그 배경은 다르지만, 독립이라는 하나의 간절한 목표를 향해 인생을 기꺼이 내던진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With. 경기 공개된 올해의 독립운동가 80인에 관한 정보는 광복회 경기도지부와 경기뉴스광장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경기뉴스광장 광복회 경기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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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기자단이 본 별별 경기vol.192

임시정부 수립일을 맞아 21인의 독립운동가가 공개됐는데 그 중 눈에 띄는 두 사람이 있다. 바로 소은숙·소은명 자매다. 자매는 1920년 3월 1일에 3·1운동 1주년을 기념하는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는데, 3·1운동 이후 학생들을 주시하고 있던 일제 경찰들에게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다. 당시 소은명 지사의 나이는 고작 14세였다. 위험한 시기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평범하게 살 수 있었을 소녀들. 지금을 있게 해준 독립투사들에게 더욱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할 이유다. 최세연 기자(청소년기자단) #04 어린이의 특별한 친구 봉공이! 경기도의 캐릭터 ‘봉공이’와 특별하게 만날 수 있는 ‘봉공아 놀자!’ 팝업 스토어가4월 23일부터 5월 6일까지 스타필드 하남 1층 몰리스 아트리움에서 열렸다. 팝업 스토어 안에는 작은 봉공이의 집, 볼풀장, 귀여운 굿즈 등 즐길 거리가 가득했다. 특히 ‘봉공이 스티커 투어’에서는 매장 곳곳에 숨어있는 봉공이 스티커를 찾아 미션을 수행하면 봉공이가 그려진 컵받침을 받을 수 있었다. 굿즈의 모든 수익금은 취약계층 이웃의 자활을 위해 쓰인다고 해 ‘착한 소비’를 이유로 기분 좋게 구매했다. 기자단 발대식, 지구의날 행사,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취약계층도 함께할 줄 아는 나의 특별한 친구 봉공이, 꼭 다시 만나러 가고 싶다. 김채원 기자(꿈나무기자단) #05 가족과 함께 맨발 걷기로 에너지 충전하는 수리산황톳길 군포시 수리산 산림 욕장에는 맨발 걷기를 즐길 수 있는 ‘수리산 황톳길’이 있다. 약 430미터 정도 되는 이 길은 습식황토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맨발 걷기 후 발을 씻을 수 있는 세족장, 지압길 구역도 있어서 일석이조로 건강을 챙길 수 있다. 황톳길은 맨발로 걸으면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발바닥 근육도 튼튼해 지며 무릎과 허리 통증까지 완화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맨발 걷기가 어싱, 그라운딩이라고 불리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가족과 함께 맨발걷기를 ... 공개됐는데 그 중 눈에 띄는 두 사람이 있다. 바로 소은숙·소은명 자매다. 자매는 1920년 3월 1일에 3·1운동 1주년을 기념하는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는데, 3·1운동 이후 학생들을 주시하고 있던 일제 경찰들에게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다. 당시 소은명 지사의 나이는 고작 14세였다. 위험한 시기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평범하게 살 수 있었을 소녀들. 지금을 있게 해준 독립투사들에게 더욱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할 이유다. 최세연 기자(청소년기자단) #04 어린이의 특별한 친구 봉공이! 경기도의 캐릭터 ‘봉공이’와 특별하게 만날 수 있는 ‘봉공아 놀자!’ 팝업 스토어가4월 23일부터 5월 6일까지 스타필드 하남 1층 몰리스 아트리움에서 열렸다. 팝업 스토어 안에는 작은 봉공이의 집, 볼풀장, 귀여운 굿즈 등 즐길 거리가 가득했다. 특히 ‘봉공이 스티커 투어’에서는 매장 곳곳에 숨어있는 봉공이 스티커를 찾아 미션을 수행하면 봉공이가 그려진 컵받침을 받을 수 있었다. 굿즈의 모든 수익금은 취약계층 이웃의 자활을 위해 쓰인다고 해 ‘착한 소비’를 이유로 기분 좋게 구매했다. 기자단 발대식, 지구의날 행사,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취약계층도 함께할 줄 아는 나의 특별한 친구 봉공이, 꼭 다시 만나러 가고 싶다. 김채원 기자(꿈나무기자단) #05 가족과 함께 맨발 걷기로 에너지 충전하는 수리산황톳길 군포시 수리산 산림 욕장에는 맨발 걷기를 즐길 수 있는 ‘수리산 황톳길’이 있다. 약 430미터 정도 되는 이 길은 습식황토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맨발 걷기 후 발을 씻을 수 있는 세족장, 지압길 구역도 있어서 일석이조로 건강을 챙길 수 있다. 황톳길은 맨발로 걸으면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발바닥 근육도 튼튼해 지며 무릎과 허리 통증까지 완화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맨발 걷기가 어싱, 그라운딩이라고 불리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가족과 함께 맨발걷기를 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에너지도 충전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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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의 중심지였던 경기도vol.189

기회 경기 경기, 광복 80주년 3·1운동의 중심지였던 경기도2025. 03 일제는 1910년 조선을 병합하면서 우리 민족 말살을 위한 강압적인 무단통치와 토지조사사업 등을 통해 전 민족의 생존을 위협하였다. 이에 일제에 대한 분노와 저항은 전민족적인 항일운동으로 이어졌다.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시작된 3·1운동은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3월 상순에 이르러 13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중 경기도 지역은 전국에서 가장 치열하게 만세시위를 벌인 지역이었다. 정리. 편집실 참고. 일제의 식민지정책과 경기도((사)기전역사문화서포터즈, 2020) 1919년 3월부터 3개월간의 운동의 추이를 살펴보면 경기도와 경성부의 합계 횟수가 415회이다. 경성부의 31회를 제외하면 경기도는 384회로, 이는 경기 지방에서 가장 열심히 운동이 전개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특히 고양군, 개성군, 양주군, 장단군, 강화군, 시흥군, 수원군이 격렬했다. 처벌자의 숫자가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전국의 지역별 탄압 수치에 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총 776건 중에서 경기도가 256건으로 전체의 33%를 차지하였다. 또한, 경기 지방의 항일운동은 한국독립운동 각 영역에 걸쳐 빠짐없이 전개되었다. 의병전쟁과 계몽운동을 거쳐 3·1운동 후에는 정치적으로 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사회경제적으로는 농민운동, 노동운동, 여성운동, 학생운동, 소년운동, 물산장려운동, 협동조합운동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수원·인천·개성을 중심으로 민립학교들의 민족교육을 비롯한 문화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곳이 경기도였다. 벽화로 남겨진 이정근 선생과 발안장 3·1운동 / 출처 : 화성시 발안 지역에서는 발안 장날인 1919년 3월 31일을 기해 1,000여 명이 모여 독립만세 시위를 했다. 이정근은 이날 시위에 참여한 남성들에게 흰 갓을 쓰거나 기존의 갓에 흰 천을 두르게 했다. 흰 갓, 백립은 3월 초 승하한 고종황제를 추모하는 의미였다. 1982년 제암리 발굴 현장 ... 무단통치와 토지조사사업 등을 통해 전 민족의 생존을 위협하였다. 이에 일제에 대한 분노와 저항은 전민족적인 항일운동으로 이어졌다.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시작된 3·1운동은 순식간에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3월 상순에 이르러 13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중 경기도 지역은 전국에서 가장 치열하게 만세시위를 벌인 지역이었다. 정리. 편집실 참고. 일제의 식민지정책과 경기도((사)기전역사문화서포터즈, 2020) 1919년 3월부터 3개월간의 운동의 추이를 살펴보면 경기도와 경성부의 합계 횟수가 415회이다. 경성부의 31회를 제외하면 경기도는 384회로, 이는 경기 지방에서 가장 열심히 운동이 전개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특히 고양군, 개성군, 양주군, 장단군, 강화군, 시흥군, 수원군이 격렬했다. 처벌자의 숫자가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전국의 지역별 탄압 수치에 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총 776건 중에서 경기도가 256건으로 전체의 33%를 차지하였다. 또한, 경기 지방의 항일운동은 한국독립운동 각 영역에 걸쳐 빠짐없이 전개되었다. 의병전쟁과 계몽운동을 거쳐 3·1운동 후에는 정치적으로 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사회경제적으로는 농민운동, 노동운동, 여성운동, 학생운동, 소년운동, 물산장려운동, 협동조합운동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수원·인천·개성을 중심으로 민립학교들의 민족교육을 비롯한 문화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곳이 경기도였다. 벽화로 남겨진 이정근 선생과 발안장 3·1운동 / 출처 : 화성시 발안 지역에서는 발안 장날인 1919년 3월 31일을 기해 1,000여 명이 모여 독립만세 시위를 했다. 이정근은 이날 시위에 참여한 남성들에게 흰 갓을 쓰거나 기존의 갓에 흰 천을 두르게 했다. 흰 갓, 백립은 3월 초 승하한 고종황제를 추모하는 의미였다. 1982년 제암리 발굴 현장 / 출처 : 경기도 가장 치열했던 경기남부의 독립운동 지금의 수원시, 오산시, 화성시 인근을 모두 포함하는 옛 수원군의 3·1운동은 전국에서 가장 치열하게 벌어졌다. <경기도 항일독립운동사>(1995)에서는 수원군의 3·1운동에 대해 ‘3·1 독립전쟁’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했다고 썼다. ... 총 776건 중에서 경기도가 256건으로 전체의 33%를 차지하였다. 또한, 경기 지방의 항일운동은 한국독립운동 각 영역에 걸쳐 빠짐없이 전개되었다. 의병전쟁과 계몽운동을 거쳐 3·1운동 후에는 정치적으로 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사회경제적으로는 농민운동, 노동운동, 여성운동, 학생운동, 소년운동, 물산장려운동, 협동조합운동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수원·인천·개성을 중심으로 민립학교들의 민족교육을 비롯한 문화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곳이 경기도였다. 벽화로 남겨진 이정근 선생과 발안장 3·1운동 / 출처 : 화성시 발안 지역에서는 발안 장날인 1919년 3월 31일을 기해 1,000여 명이 모여 독립만세 시위를 했다. 이정근은 이날 시위에 참여한 남성들에게 흰 갓을 쓰거나 기존의 갓에 흰 천을 두르게 했다. 흰 갓, 백립은 3월 초 승하한 고종황제를 추모하는 의미였다. 1982년 제암리 발굴 현장 / 출처 : 경기도 가장 치열했던 경기남부의 독립운동 지금의 수원시, 오산시, 화성시 인근을 모두 포함하는 옛 수원군의 3·1운동은 전국에서 가장 치열하게 벌어졌다. <경기도 항일독립운동사>(1995)에서는 수원군의 3·1운동에 대해 ‘3·1 독립전쟁’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했다고 썼다. 실제 상해 ‘독립신문’은 수원의 3·1운동 시위대를 ‘독립군’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일제의 제암리 학살은 이 지역 운동의 치열함과 일제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사건인데, 이 사건의 단초가 된 것이 발안장 시위였다. 수원·화성 지역의 3·1독립만세운동은 송산·사강 지역, 우정·장안 지역, 발안 지역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발안 지역의 3·1독립만세운동을 이끈 인물이 이정근이다. 발안 지역에서는 발안 장날인 1919년 3월 31일을 기해 1,000여 명이 모여 독립만세 시위를 했다. 이정근은 이날 시위에 참여한 남성들에게 흰 갓을 쓰거나 기존의 갓에 흰 천을 두르게 했다. 흰 갓, 백립은 3월 초 승하한 고종황제를 추모하는 의미였다. 시위 군중들은 만세를 소리높여 부르며 행진하면서 길가의 일본인 가옥에 돌을 던졌다. 이정근은 시위대를 이끌며 맨 앞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 협동조합운동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수원·인천·개성을 중심으로 민립학교들의 민족교육을 비롯한 문화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곳이 경기도였다. 벽화로 남겨진 이정근 선생과 발안장 3·1운동 / 출처 : 화성시 발안 지역에서는 발안 장날인 1919년 3월 31일을 기해 1,000여 명이 모여 독립만세 시위를 했다. 이정근은 이날 시위에 참여한 남성들에게 흰 갓을 쓰거나 기존의 갓에 흰 천을 두르게 했다. 흰 갓, 백립은 3월 초 승하한 고종황제를 추모하는 의미였다. 1982년 제암리 발굴 현장 / 출처 : 경기도 가장 치열했던 경기남부의 독립운동 지금의 수원시, 오산시, 화성시 인근을 모두 포함하는 옛 수원군의 3·1운동은 전국에서 가장 치열하게 벌어졌다. <경기도 항일독립운동사>(1995)에서는 수원군의 3·1운동에 대해 ‘3·1 독립전쟁’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했다고 썼다. 실제 상해 ‘독립신문’은 수원의 3·1운동 시위대를 ‘독립군’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일제의 제암리 학살은 이 지역 운동의 치열함과 일제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사건인데, 이 사건의 단초가 된 것이 발안장 시위였다. 수원·화성 지역의 3·1독립만세운동은 송산·사강 지역, 우정·장안 지역, 발안 지역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발안 지역의 3·1독립만세운동을 이끈 인물이 이정근이다. 발안 지역에서는 발안 장날인 1919년 3월 31일을 기해 1,000여 명이 모여 독립만세 시위를 했다. 이정근은 이날 시위에 참여한 남성들에게 흰 갓을 쓰거나 기존의 갓에 흰 천을 두르게 했다. 흰 갓, 백립은 3월 초 승하한 고종황제를 추모하는 의미였다. 시위 군중들은 만세를 소리높여 부르며 행진하면서 길가의 일본인 가옥에 돌을 던졌다. 이정근은 시위대를 이끌며 맨 앞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수비대장 사이다(左板)가 칼을 들고 이정근의 복부를 내리치자, 이정근은 흘러내리는 피를 손으로 받아 수비대장의 얼굴에 뿌리면서도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결국 일본 수비대장의 칼에 이정근은 63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이후 정부는 이정근의 공적을 기려 ... 추모하는 의미였다. 1982년 제암리 발굴 현장 / 출처 : 경기도 가장 치열했던 경기남부의 독립운동 지금의 수원시, 오산시, 화성시 인근을 모두 포함하는 옛 수원군의 3·1운동은 전국에서 가장 치열하게 벌어졌다. <경기도 항일독립운동사>(1995)에서는 수원군의 3·1운동에 대해 ‘3·1 독립전쟁’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했다고 썼다. 실제 상해 ‘독립신문’은 수원의 3·1운동 시위대를 ‘독립군’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일제의 제암리 학살은 이 지역 운동의 치열함과 일제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사건인데, 이 사건의 단초가 된 것이 발안장 시위였다. 수원·화성 지역의 3·1독립만세운동은 송산·사강 지역, 우정·장안 지역, 발안 지역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발안 지역의 3·1독립만세운동을 이끈 인물이 이정근이다. 발안 지역에서는 발안 장날인 1919년 3월 31일을 기해 1,000여 명이 모여 독립만세 시위를 했다. 이정근은 이날 시위에 참여한 남성들에게 흰 갓을 쓰거나 기존의 갓에 흰 천을 두르게 했다. 흰 갓, 백립은 3월 초 승하한 고종황제를 추모하는 의미였다. 시위 군중들은 만세를 소리높여 부르며 행진하면서 길가의 일본인 가옥에 돌을 던졌다. 이정근은 시위대를 이끌며 맨 앞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수비대장 사이다(左板)가 칼을 들고 이정근의 복부를 내리치자, 이정근은 흘러내리는 피를 손으로 받아 수비대장의 얼굴에 뿌리면서도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결국 일본 수비대장의 칼에 이정근은 63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이후 정부는 이정근의 공적을 기려 1991년에 애국장을 수여했다. 발안장 시위에서 확산된 제암리 학살 사건 당시 수원군 중 현재 화성 지역은 일제강점기 다른 어느 지역보다 강렬한 독립 투쟁이 벌어진 곳이다. 지역 주민들은 일제의 통치기구인 면사무소와 헌병 주재소를 표적으로 삼았다. 발안장 시위에서 이정근을 비롯한 주민들이 일제의 칼에 목숨을 잃으면서 주민들의 분노는 더욱 거세졌다. 이때 육군 ‘보병 79연대’ 소속 중위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가 ... 경기도 가장 치열했던 경기남부의 독립운동 지금의 수원시, 오산시, 화성시 인근을 모두 포함하는 옛 수원군의 3·1운동은 전국에서 가장 치열하게 벌어졌다. <경기도 항일독립운동사>(1995)에서는 수원군의 3·1운동에 대해 ‘3·1 독립전쟁’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했다고 썼다. 실제 상해 ‘독립신문’은 수원의 3·1운동 시위대를 ‘독립군’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일제의 제암리 학살은 이 지역 운동의 치열함과 일제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사건인데, 이 사건의 단초가 된 것이 발안장 시위였다. 수원·화성 지역의 3·1독립만세운동은 송산·사강 지역, 우정·장안 지역, 발안 지역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발안 지역의 3·1독립만세운동을 이끈 인물이 이정근이다. 발안 지역에서는 발안 장날인 1919년 3월 31일을 기해 1,000여 명이 모여 독립만세 시위를 했다. 이정근은 이날 시위에 참여한 남성들에게 흰 갓을 쓰거나 기존의 갓에 흰 천을 두르게 했다. 흰 갓, 백립은 3월 초 승하한 고종황제를 추모하는 의미였다. 시위 군중들은 만세를 소리높여 부르며 행진하면서 길가의 일본인 가옥에 돌을 던졌다. 이정근은 시위대를 이끌며 맨 앞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수비대장 사이다(左板)가 칼을 들고 이정근의 복부를 내리치자, 이정근은 흘러내리는 피를 손으로 받아 수비대장의 얼굴에 뿌리면서도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결국 일본 수비대장의 칼에 이정근은 63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이후 정부는 이정근의 공적을 기려 1991년에 애국장을 수여했다. 발안장 시위에서 확산된 제암리 학살 사건 당시 수원군 중 현재 화성 지역은 일제강점기 다른 어느 지역보다 강렬한 독립 투쟁이 벌어진 곳이다. 지역 주민들은 일제의 통치기구인 면사무소와 헌병 주재소를 표적으로 삼았다. 발안장 시위에서 이정근을 비롯한 주민들이 일제의 칼에 목숨을 잃으면서 주민들의 분노는 더욱 거세졌다. 이때 육군 ‘보병 79연대’ 소속 중위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가 지휘하는 보병 11명이 발안에 왔다. 주모자들의 대대적인 검거로 ... 3·1운동은 전국에서 가장 치열하게 벌어졌다. <경기도 항일독립운동사>(1995)에서는 수원군의 3·1운동에 대해 ‘3·1 독립전쟁’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했다고 썼다. 실제 상해 ‘독립신문’은 수원의 3·1운동 시위대를 ‘독립군’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일제의 제암리 학살은 이 지역 운동의 치열함과 일제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사건인데, 이 사건의 단초가 된 것이 발안장 시위였다. 수원·화성 지역의 3·1독립만세운동은 송산·사강 지역, 우정·장안 지역, 발안 지역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발안 지역의 3·1독립만세운동을 이끈 인물이 이정근이다. 발안 지역에서는 발안 장날인 1919년 3월 31일을 기해 1,000여 명이 모여 독립만세 시위를 했다. 이정근은 이날 시위에 참여한 남성들에게 흰 갓을 쓰거나 기존의 갓에 흰 천을 두르게 했다. 흰 갓, 백립은 3월 초 승하한 고종황제를 추모하는 의미였다. 시위 군중들은 만세를 소리높여 부르며 행진하면서 길가의 일본인 가옥에 돌을 던졌다. 이정근은 시위대를 이끌며 맨 앞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수비대장 사이다(左板)가 칼을 들고 이정근의 복부를 내리치자, 이정근은 흘러내리는 피를 손으로 받아 수비대장의 얼굴에 뿌리면서도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결국 일본 수비대장의 칼에 이정근은 63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이후 정부는 이정근의 공적을 기려 1991년에 애국장을 수여했다. 발안장 시위에서 확산된 제암리 학살 사건 당시 수원군 중 현재 화성 지역은 일제강점기 다른 어느 지역보다 강렬한 독립 투쟁이 벌어진 곳이다. 지역 주민들은 일제의 통치기구인 면사무소와 헌병 주재소를 표적으로 삼았다. 발안장 시위에서 이정근을 비롯한 주민들이 일제의 칼에 목숨을 잃으면서 주민들의 분노는 더욱 거세졌다. 이때 육군 ‘보병 79연대’ 소속 중위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가 지휘하는 보병 11명이 발안에 왔다. 주모자들의 대대적인 검거로 만세 시위가 잦아드는 듯했지만, 시위는 계속되고 있었다. 아리타 중위는 발안장에 또다시 모인 ... 일제 잔재 청산 및 복원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제암교회도 재복원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1997년에 문화재관리국 주도로 제암교회 복원 및 새로운 3·1운동 순국유적기념관 건축 사업이 추진되었고 1만7천여㎡의 제암리 성역단지 내에 1,300여㎡ 규모의 새로운 순국기념관, 23인 순교묘지, 상징조형물 등이 조성되어 2001년 3월 1일에 완공되었다. 현재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제암교회에서는 영상물과 교육자료 등을 통해 제암리 학살 사건 당시의 내용을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제암리 학살과 방화 현장 / 출처 : 화성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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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과 가나안농군학교 김용기 장로가 꿈꾼 이상촌 이야기 남양주 조안면vol.183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북한강로 434 문의 031-577-8040 용진교회와 애국선열 추념탑 1907년에 설립된 용진교회는 남양주 3·1만세운동 중심지이기도 하다. 1919년 3·1운동 당시 용진교회 신도들은 남양주 와부 지역을 중심으로 집회에 참가했다. ‘배나무 용진 의거 사건’으로 불리는 용진교회의 3·1운동은 남양주 지역의 독립운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교회 뒤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한 애국선열 추념탑이 세워져 있다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북한강로521번길 12 문의 031-576-1958 다산 정약용 유적지 정약용 선생 묘소, 생가인 여유당, 사당 문도사, 기념관, 문화관, 문화의 거리, 실학박물관 등이 있다. 기념관에는 정약용의 대표적 저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사본이 전시되어 있으며, 수원화성의 건축 현장을 재현한 디오라마를 볼 수 있다.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747번길 11 문의 031-590-4242 ... 3·1만세운동 중심지이기도 하다. 1919년 3·1운동 당시 용진교회 신도들은 남양주 와부 지역을 중심으로 집회에 참가했다. ‘배나무 용진 의거 사건’으로 불리는 용진교회의 3·1운동은 남양주 지역의 독립운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교회 뒤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한 애국선열 추념탑이 세워져 있다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북한강로521번길 12 문의 031-576-1958 다산 정약용 유적지 정약용 선생 묘소, 생가인 여유당, 사당 문도사, 기념관, 문화관, 문화의 거리, 실학박물관 등이 있다. 기념관에는 정약용의 대표적 저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사본이 전시되어 있으며, 수원화성의 건축 현장을 재현한 디오라마를 볼 수 있다.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747번길 11 문의 031-590-42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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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하고 아릿한 근대를 산책하다vol.177

있다. 천주교 수원성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42, 031-246-8844 자주독립을 위한 그날의 함성 1919년 3·1운동 당시 제암리 일대는 사람과 가옥, 가축, 의류, 곡식 등이 타는 냄새와 연기가 약 10km 밖까지 퍼져나갔다고 전한다. 4월 5일에 일어난 만세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했던 제암리교회에 대한 일제의 극악한 보복 때문이었다. 교회에 불을 지르고 무차별 총격을 가해 스물세 명이 목숨을 잃었고 가옥 30여 채가 불탔다. 제암리 3·1운동 순국유적지에는 순국기념탑, 순국기념관, 3·1정신교육관, 23인의 순국묘지 등이 있으며, 경기지역 최대규모 독립운동기념관·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제암리 3·1운동 순국유적지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길 50, 031-366-1663 기차 대신 자전거 타고 달리는 철교 1939년에 개통한 경춘선에 놓인 철교로, 원래 이름은 양수철교다. 난간부를 철제로 마감한, 당시로는 획기적 디자인이었다. 이후 2008년 운길산역과 양수역을 잇는 새로운 철교가 놓이면서 양수철교라는 이름을 내주고 북한강철교라 불리고 있다. 지금은 녹슨 레일을 걷어내고 나무판을 깔아 열차 대신 사람과 자전거가 지나다닌다. 북한강철교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북한강로 366-20 장작불로 도자의 혼을 담다 도자는 경기도 장인 정신의 상징이다. 경기도 곳곳에는 지금도 전통 가마가 타오르며 도예가의 가슴을 달구고 있다. 등록문화재 제657호로 지정된 이천 수광리 오름가마는 1949년에 일본 아리타·미노 지역의 가마 양식을 도입해 만든 근대식 전통 가마로, 12칸의 가마가 언덕을 따라 오르는 모양새라 얼핏 토성 같기도 하다. 이천 수광리 오름가마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경충대로 3234, 031-632-4864 ... 대한 일제의 극악한 보복 때문이었다. 교회에 불을 지르고 무차별 총격을 가해 스물세 명이 목숨을 잃었고 가옥 30여 채가 불탔다. 제암리 3·1운동 순국유적지에는 순국기념탑, 순국기념관, 3·1정신교육관, 23인의 순국묘지 등이 있으며, 경기지역 최대규모 독립운동기념관·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제암리 3·1운동 순국유적지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길 50, 031-366-1663 기차 대신 자전거 타고 달리는 철교 1939년에 개통한 경춘선에 놓인 철교로, 원래 이름은 양수철교다. 난간부를 철제로 마감한, 당시로는 획기적 디자인이었다. 이후 2008년 운길산역과 양수역을 잇는 새로운 철교가 놓이면서 양수철교라는 이름을 내주고 북한강철교라 불리고 있다. 지금은 녹슨 레일을 걷어내고 나무판을 깔아 열차 대신 사람과 자전거가 지나다닌다. 북한강철교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북한강로 366-20 장작불로 도자의 혼을 담다 도자는 경기도 장인 정신의 상징이다. 경기도 곳곳에는 지금도 전통 가마가 타오르며 도예가의 가슴을 달구고 있다. 등록문화재 제657호로 지정된 이천 수광리 오름가마는 1949년에 일본 아리타·미노 지역의 가마 양식을 도입해 만든 근대식 전통 가마로, 12칸의 가마가 언덕을 따라 오르는 모양새라 얼핏 토성 같기도 하다. 이천 수광리 오름가마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경충대로 3234, 031-632-4864 ... 가옥 30여 채가 불탔다. 제암리 3·1운동 순국유적지에는 순국기념탑, 순국기념관, 3·1정신교육관, 23인의 순국묘지 등이 있으며, 경기지역 최대규모 독립운동기념관·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제암리 3·1운동 순국유적지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길 50, 031-366-1663 기차 대신 자전거 타고 달리는 철교 1939년에 개통한 경춘선에 놓인 철교로, 원래 이름은 양수철교다. 난간부를 철제로 마감한, 당시로는 획기적 디자인이었다. 이후 2008년 운길산역과 양수역을 잇는 새로운 철교가 놓이면서 양수철교라는 이름을 내주고 북한강철교라 불리고 있다. 지금은 녹슨 레일을 걷어내고 나무판을 깔아 열차 대신 사람과 자전거가 지나다닌다. 북한강철교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북한강로 366-20 장작불로 도자의 혼을 담다 도자는 경기도 장인 정신의 상징이다. 경기도 곳곳에는 지금도 전통 가마가 타오르며 도예가의 가슴을 달구고 있다. 등록문화재 제657호로 지정된 이천 수광리 오름가마는 1949년에 일본 아리타·미노 지역의 가마 양식을 도입해 만든 근대식 전통 가마로, 12칸의 가마가 언덕을 따라 오르는 모양새라 얼핏 토성 같기도 하다. 이천 수광리 오름가마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경충대로 3234, 031-632-48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