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매운탕 노포 파주 원조어부집

민물 매운탕의 깊은 국물 맛이 그립다면
파주시 율곡습지공원 근처에 있는 특별한 매운탕집을 추천한다.

글. 박찬일 사진. 전재호






친한 후배가 몇 년 전부터 파주에 좋은 민물고기 요릿집이 있으니 가보자고 재촉했다. 어지간해서 호들갑을 떨지 않는 친구라 가보자고 굳게 약속하고는 잊어버리곤 했다. 인연이란 알 수 없어서 <나의 경기도>에서 취재를 하게 될 줄이야, 덕분에 후배와 약속은 못 지켰지만 파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지도를 보면 북에서 DMZ 군사분계선을 따라 임진강이 굽이굽이 흘러 내려온다. 그 강 끝에서는 서해로 흘러가는데, 파주 파평면의 물결 굽이치는 강가에 가게가 있다. ‘원조어부집’이다. 가게 옆은 율곡리 경로당이다. 가게는 새로 지어서 반듯하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어부집’이라고 나온다. 근처에 다른 가게가 하나둘 생기면서 ‘원조’라는 단어를 붙였다.
“오래된 가게라 새로 손봤어요. 탁자도 입식으로 바꾸고요.”
입구에 깨끗한 수족관까지 있다. 너무 맑아서 그냥 마셔도 될 것 같은 물속에 참게와 빠가사리(‘동자개’의 방언)가 가득하다. 홀에 앉으면 주방이 그대로 들여다보인다. 자신감이 엿보인다. 보통 나는 주방이 보이면 불판 주위와 연기, 냄새를 빨아들이는 금속 덕트를 유심히 본다. 보통 관리를 소홀히 해 기름때가 많이 낀다. 놀랍게도 덕트가 반들반들, 멀리서도 광채가 난다. 그런데도 “멀리서 취재 오셨는데 막 장사가 끝나서 지저분해 미안 합니다”라고 한다. 놀라워서 웃었다.

Since 1981 음식 맛이 궁금하다. 더러는 너무 깔끔해도 맛이 덜하다고 하지 않는가. 탁자에 찬이 먼저 깔리는데, 그릇이 제대로다. 휙휙 던져도 깨지지 않는 품위 없는 멜라민수지나 플라스틱 그릇이 아니다. 스테인리스 그릇이 몇 개 있는데, 가게 열었을 때부터 있던 것들이라 버리지 않고 쓴다. 사실 오래된 스테인리스 그릇은 요새 골동품 대우를 받는다. 그래서, 음식 맛은 어땠는데?
백김치를 입에 넣었다. 딱 맞는 산도, 청량감이 터진다. 이런 김치는 요즘 만나기 정말 어렵다. 두부전이 나왔길래 무심히 씹었다가 또 놀랐다. 좋은 두부를 적당히 구운 후 양념을 칼칼하게 해서 다시 지졌다. 번거로운 조리법인데 이걸 지키다니.
사실 여러 차례 섭외 전화를 했는데, 젊은 여자 분이 받았다. 직원 같지 않아 물으니 따님이란다. 맏딸이다. 더 놀라운 건 딸 셋이 가게에 나와 일한다 .

“어머니 혼자 힘들게 일하셔서 돕자고 시작했는데, 대를 잇게 되었어요. 딸 셋이 홀, 주방 등을 맡아서 같이 일해요. 재미있어요.”
맏딸 허은하 씨의 말이다. 이 가게는 1981년도에 열었다. 낚시를 즐기던 파주 사람인 아버지 허훈희 씨(작고)와 어머니 최순자 씨의 합 작이다.
“전 비린 걸 못 다뤘어요. 가평에서 여기로 시집와서 사는데, 남편이 민물고기를 가져다줬어요. 못 한다고 했더니 아주 깨끗하게 손질해서 주는 거예요. 시어머니 따라 요리를 해봤죠. 맛있다고들 합디다.”
최순자 씨 말에 맏딸이 “아버지가 아주 완벽하게 생선을 손질해 주셨다”고 거든다. 주방에 있는 생선을 보니 붕어며 빠가사리, 메기, 모래무지 같은 잡어와 매운탕거리가 완벽하게 손질되어 상자에 담겨 있다. 마치 손 하얀 기술자가 있는 고급 초밥집의 고명거리 상자 같다. 날것을 다루는 가게에서나 볼 법한.
“어머니가 결벽증에 가깝게 위생을 따지세요. 저희도 그리 따라 하고요.”
임진강에서 어로는 허가제다. 군사 지역이라 어로하는 시간대가 엄격하고 출입증도 있어야 한다. 아무나 못 한다. 생전에 허훈희씨는 임진강 고랑포에서 작업했다. 지금은 낚시해서 고기를 대는 아저씨가 있다. 허훈희 씨가 작고한 뒤 이 일을 맡은 사람이다. 장어며 황복, 웅어, 쏘가리에 참게까지 온갖 귀한 것이 나온다. 아무래도 완전히 자연산으로만 구색을 갖추기 어려워 메기는 양식한 것을 쓴다.
“5월에 황복이 나와요. 내가 손질하지요. 그때 오세요. 장어는 정말 굵은 걸 사서 구워 팔았는데, 이제는 그런 게 잘 안 보여요.”
황복은 다룰 줄 모르고 먹는 사람도 없어서 예전에는 잡혀도 버렸단다. 지금은 한강 하구, 임진강의 최고 귀족 어종이 황복인데 말이다. 조선 시대 사옹원은 임금이 먹는 음식을 대는 관청이다. 그곳 관리가 봄이 되면 임진강 하구로 와서 분원을 차렸다. 웅어며 장어 같은 민물고기를 받아서 궁에 올리는 게 일이었다. 그 정도로 알아주던 고기들이다.

깊은 맛의 비결, 된장과 국산 재료의 조화 어머니 최순자 씨는 수십 해 동안 불을 피워 기름이 뚝뚝 흐르는 장어를 구웠다. 요즘은 나이도 들고 해서 계속 구워 팔기 어렵다. 겨울엔 제철이 아니라 굽지 않는다. 참게를 넣은 잡어 매운탕이 나왔다. 둘이 먹는 작은 냄비가 4만~5만 원 한다. 속으로 ‘아무리 손질을 잘한다고 해도 민물고기 특유의 비린내가 나겠지’ 싶었다. 웬걸, 이렇게 구수하고 깔끔한 맛이라니 놀라웠다. 수제비가 듬성듬성 들어 있는데, 국물이 일품이다. 조미료 맛이 나지 않아 개운하고 깊은 맛이 난다.
참게 게딱지를 열었더니 노란 장이 가득하다. 꽃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녹진한 맛이다. 수제비는 오래 끓이면 국물을 흡수해 그 맛 있는 국물이 사라져버리니, 미리 건져두거나 먹는 게 요령이다. 매운탕이 맛있다고 소문나서 근처 공무원, 군부대 간부가 많이 찾았다. 민간인으로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전 일산 사람들이 단골이었다. 그 손님들도 노포와 함께 나이 들어 노인이 되어 지금도 가게에 온다.
딸 셋이 가게에 합류한 게 2017년도다. 최순자 씨가 힘에 부쳐 가게를 접으려던 시기다. 딸들이 힘을 모으자 어머니도 기운이 났다. 중소기업벤처부에서 지정하는 ‘백년가게’ 인증도 받았다. 장사가 더 번창했고, 그게 대를 잇는 원동력이 됐다.
이 집 매운탕 맛의 비결은 맛있는 된장과 고급국산 재료를 써서 맛이 자극적이지 않다는 거다. 어찌 보면 특별할 게 없는데, 실제 식당을 운영하다 보면 지키기가 쉽지 않다. 타고난 고집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 집에서 그걸 본다. 더구나 딸 셋이 힘을 합쳐 가게를 살리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다. 50~60년을 달려갈 가게를 내다본다. 그건 그렇고, 매운탕 맛이 정말 좋다! 그 말을 독자들에 게, 경기도민에게 남겨둔다.





박찬일
누군가는 ‘글 쓰는 셰프’라고 하지만 본인은 ‘주방장’이라는 말을 가장 아낀다.
오래된 식당을 찾아다니며 주인장들의 생생한 증언과 장사 철학을 글로 쓰며 사회·문화적으로 노포의 가치를 알리는 데 일조했다. 저서로는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이 있고 <수요 미식회> 등 주요 방송에 출연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