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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의 중심지였던 경기도vol.189

결과에 따르면, 전체 총 776건 중에서 경기도가 256건으로 전체의 33%를 차지하였다. 또한, 경기 지방의 항일운동은 한국독립운동 각 영역에 걸쳐 빠짐없이 전개되었다. 의병전쟁과 계몽운동을 거쳐 3·1운동 후에는 정치적으로 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사회경제적으로는 농민운동, 노동운동, 여성운동, 학생운동, 소년운동, 물산장려운동, 협동조합운동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수원·인천·개성을 중심으로 민립학교들의 민족교육을 비롯한 문화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곳이 경기도였다. 벽화로 남겨진 이정근 선생과 발안장 3·1운동 / 출처 : 화성시 발안 지역에서는 발안 장날인 1919년 3월 31일을 기해 1,000여 명이 모여 독립만세 시위를 했다. 이정근은 이날 시위에 참여한 남성들에게 흰 갓을 쓰거나 기존의 갓에 흰 천을 두르게 했다. 흰 갓, 백립은 3월 초 승하한 고종황제를 추모하는 의미였다. 1982년 제암리 발굴 현장 / 출처 : 경기도 가장 치열했던 경기남부의 독립운동 지금의 수원시, 오산시, 화성시 인근을 모두 포함하는 옛 수원군의 3·1운동은 전국에서 가장 치열하게 벌어졌다. <경기도 항일독립운동사>(1995)에서는 수원군의 3·1운동에 대해 ‘3·1 독립전쟁’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했다고 썼다. 실제 상해 ‘독립신문’은 수원의 3·1운동 시위대를 ‘독립군’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일제의 제암리 학살은 이 지역 운동의 치열함과 일제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사건인데, 이 사건의 단초가 된 것이 발안장 시위였다. 수원·화성 지역의 3·1독립만세운동은 송산·사강 지역, 우정·장안 지역, 발안 지역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발안 지역의 3·1독립만세운동을 이끈 인물이 이정근이다. 발안 지역에서는 발안 장날인 1919년 3월 31일을 기해 1,000여 명이 모여 독립만세 시위를 했다. 이정근은 이날 시위에 참여한 남성들에게 흰 갓을 쓰거나 기존의 갓에 흰 천을 두르게 했다. 흰 갓, 백립은 3월 초 승하한 고종황제를 추모하는 의미였다. 시위 군중들은 만세를 소리높여 부르며 행진하면서 길가의 일본인 가옥에 돌을 던졌다. 이정근은 시위대를 이끌며 맨 ... 독립운동 지금의 수원시, 오산시, 화성시 인근을 모두 포함하는 옛 수원군의 3·1운동은 전국에서 가장 치열하게 벌어졌다. <경기도 항일독립운동사>(1995)에서는 수원군의 3·1운동에 대해 ‘3·1 독립전쟁’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했다고 썼다. 실제 상해 ‘독립신문’은 수원의 3·1운동 시위대를 ‘독립군’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일제의 제암리 학살은 이 지역 운동의 치열함과 일제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사건인데, 이 사건의 단초가 된 것이 발안장 시위였다. 수원·화성 지역의 3·1독립만세운동은 송산·사강 지역, 우정·장안 지역, 발안 지역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발안 지역의 3·1독립만세운동을 이끈 인물이 이정근이다. 발안 지역에서는 발안 장날인 1919년 3월 31일을 기해 1,000여 명이 모여 독립만세 시위를 했다. 이정근은 이날 시위에 참여한 남성들에게 흰 갓을 쓰거나 기존의 갓에 흰 천을 두르게 했다. 흰 갓, 백립은 3월 초 승하한 고종황제를 추모하는 의미였다. 시위 군중들은 만세를 소리높여 부르며 행진하면서 길가의 일본인 가옥에 돌을 던졌다. 이정근은 시위대를 이끌며 맨 앞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수비대장 사이다(左板)가 칼을 들고 이정근의 복부를 내리치자, 이정근은 흘러내리는 피를 손으로 받아 수비대장의 얼굴에 뿌리면서도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결국 일본 수비대장의 칼에 이정근은 63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이후 정부는 이정근의 공적을 기려 1991년에 애국장을 수여했다. 발안장 시위에서 확산된 제암리 학살 사건 당시 수원군 중 현재 화성 지역은 일제강점기 다른 어느 지역보다 강렬한 독립 투쟁이 벌어진 곳이다. 지역 주민들은 일제의 통치기구인 면사무소와 헌병 주재소를 표적으로 삼았다. 발안장 시위에서 이정근을 비롯한 주민들이 일제의 칼에 목숨을 잃으면서 주민들의 분노는 더욱 거세졌다. 이때 육군 ‘보병 79연대’ 소속 중위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가 지휘하는 보병 11명이 발안에 왔다. 주모자들의 대대적인 검거로 만세 시위가 잦아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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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최북단 쇠락한 마을에서 경기 북부 명소로 거듭난 관인문화마을vol.186

경기 경기 마을 속으로 포천 최북단 쇠락한 마을에서 경기 북부 명소로 거듭난 관인문화마을2024. 12 철원과 이웃한 관인문화마을은 포천 최북단 마을로 한국전쟁 격전지였다. 폐허가 된 마을을 미군이 재건했고, 1980년대 이후 노후화로 쇠락의 길을 걷다가 마을재생사업으로 새 역사를 쓰고 있다. 글. 이정은 사진. 전재호 미 보병 제40사단이 1955년 4월 27일 건립할 당시의 관인중학교 모습 1964년 관인국민학교 낙성식 모습 “영웅아, 누나 왔다 간다!” 트로트 가수 임영웅의 벽화가 그려진 담벼락 앞에서 한 무리의 중년 여성이 웃음꽃을 피우며 사진 찍기에 열심이다. 임영웅의 족적을 따라가는 일명 ‘웅지순례지’ 중 한 곳인 관인문화마을이다. “임영웅 씨가 우리 마을에 와서 노래로 봉사 활동을 여러 번 했어요. 그래서 고마운 마음에 벽화를 그렸는데, 입소문이 나서 팬들이 많이 찾아오시네요. 덕분에 우리 동네도 덩달아 유명해졌어요.” 관인문화마을(이하 관인마을)의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조춘희 관인문화재생연구회 대표는 2017년부터 자발적으로 깨끗한 마을 만들기를 실천했는데, 그 작은 노력들이 모여 다양한 재생사업에 선정되었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며 마을을 소개했다. 미 보병 제40사단의 재건으로 전쟁의 아픔 치유 작은 개울을 사이에 두고 철원과 이웃하고 있는 관인마을은 포천시 최북단 마을이다. 위치로 보면 삼엄한 군사 지역일 것 같지만 철원평야의 한 자락을 차지할 정도로 드넓은 농토를 자랑하는 평온한 농촌이다. 후삼국시대, 궁예의 학정을 못 이긴 어진 관리들이 관직을 버리고 모여 살던 동네라 ‘관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45년 광복 이후 북한 땅이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이 수복했고, 김일성이 원통해 보름을 통곡했다는 얘기가 전해질 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어른들 말씀에 의하면 한국전쟁 통에는 불바다가 따로 없었답니다. 피란 ... 만들기를 실천했는데, 그 작은 노력들이 모여 다양한 재생사업에 선정되었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며 마을을 소개했다. 미 보병 제40사단의 재건으로 전쟁의 아픔 치유 작은 개울을 사이에 두고 철원과 이웃하고 있는 관인마을은 포천시 최북단 마을이다. 위치로 보면 삼엄한 군사 지역일 것 같지만 철원평야의 한 자락을 차지할 정도로 드넓은 농토를 자랑하는 평온한 농촌이다. 후삼국시대, 궁예의 학정을 못 이긴 어진 관리들이 관직을 버리고 모여 살던 동네라 ‘관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45년 광복 이후 북한 땅이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이 수복했고, 김일성이 원통해 보름을 통곡했다는 얘기가 전해질 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어른들 말씀에 의하면 한국전쟁 통에는 불바다가 따로 없었답니다. 피란 갔다 와 보니 마을 전체가 폐허가 되었다고 해요. 그걸 미 보병 제40사단이 재건해 주었지요. 관인면사무소 중앙 로터리를 중심으로 방사형 길이 뻗어나가고, 사이사이에 골목이 모세혈관처럼 연결되도록 조성했는데, 40사단 엠블럼인 구름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게 비치는 모양(sunburst)이었습니다.” 미 보병 제40사단의 지원으로 면사무소, 초등학교, 중학교, 체육관, 우체국 등 주요 공공시설이 세워지면서 새롭게 탄생한 관인마을은 전후 대한민국의 아픔을 치유하고 북한과 남한 사이에서 새롭게 계획된 도시로 마을의 역사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후 1970년대까지 관인마을은 번성을 누렸다. 소읍인데도 인구가 1만 명이 넘었고 우시장,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당시 소문난 옷 가게였던 한일상회 이병항 씨는 거의 매일 자전거를 타고 동대문까지 가서 옷을 떼다 팔았다고 한다. 그 거리가 무려 136km였는데, 돈 버는 재미에 힘든 줄 몰랐다고. 문화 재생으로 살아 있는 박물관이 되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주변 신도시로 주거지와 상권이 대거 이동하면서 ... 후삼국시대, 궁예의 학정을 못 이긴 어진 관리들이 관직을 버리고 모여 살던 동네라 ‘관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45년 광복 이후 북한 땅이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이 수복했고, 김일성이 원통해 보름을 통곡했다는 얘기가 전해질 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어른들 말씀에 의하면 한국전쟁 통에는 불바다가 따로 없었답니다. 피란 갔다 와 보니 마을 전체가 폐허가 되었다고 해요. 그걸 미 보병 제40사단이 재건해 주었지요. 관인면사무소 중앙 로터리를 중심으로 방사형 길이 뻗어나가고, 사이사이에 골목이 모세혈관처럼 연결되도록 조성했는데, 40사단 엠블럼인 구름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게 비치는 모양(sunburst)이었습니다.” 미 보병 제40사단의 지원으로 면사무소, 초등학교, 중학교, 체육관, 우체국 등 주요 공공시설이 세워지면서 새롭게 탄생한 관인마을은 전후 대한민국의 아픔을 치유하고 북한과 남한 사이에서 새롭게 계획된 도시로 마을의 역사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후 1970년대까지 관인마을은 번성을 누렸다. 소읍인데도 인구가 1만 명이 넘었고 우시장,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당시 소문난 옷 가게였던 한일상회 이병항 씨는 거의 매일 자전거를 타고 동대문까지 가서 옷을 떼다 팔았다고 한다. 그 거리가 무려 136km였는데, 돈 버는 재미에 힘든 줄 몰랐다고. 문화 재생으로 살아 있는 박물관이 되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주변 신도시로 주거지와 상권이 대거 이동하면서 반백년 동안 물리적 성장은 멈추고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닫힌 가게와 빈 건물이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본 조춘희 대표는 주민 몇몇과 함께 뜻을 모아 마을 청소부터 시작했다. 쓰레기를 치우고 꽃밭을 만들고 거리를 정돈하자 한결 정감어린 단정한 마을이 됐다. 때마침 마을재생사업 붐이 일면서 문화체육관광부와 경기도의 문화마을재생사업에 선정되어 벽화, 이야기를 담은 아트 ... 땅이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이 수복했고, 김일성이 원통해 보름을 통곡했다는 얘기가 전해질 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어른들 말씀에 의하면 한국전쟁 통에는 불바다가 따로 없었답니다. 피란 갔다 와 보니 마을 전체가 폐허가 되었다고 해요. 그걸 미 보병 제40사단이 재건해 주었지요. 관인면사무소 중앙 로터리를 중심으로 방사형 길이 뻗어나가고, 사이사이에 골목이 모세혈관처럼 연결되도록 조성했는데, 40사단 엠블럼인 구름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게 비치는 모양(sunburst)이었습니다.” 미 보병 제40사단의 지원으로 면사무소, 초등학교, 중학교, 체육관, 우체국 등 주요 공공시설이 세워지면서 새롭게 탄생한 관인마을은 전후 대한민국의 아픔을 치유하고 북한과 남한 사이에서 새롭게 계획된 도시로 마을의 역사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후 1970년대까지 관인마을은 번성을 누렸다. 소읍인데도 인구가 1만 명이 넘었고 우시장,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당시 소문난 옷 가게였던 한일상회 이병항 씨는 거의 매일 자전거를 타고 동대문까지 가서 옷을 떼다 팔았다고 한다. 그 거리가 무려 136km였는데, 돈 버는 재미에 힘든 줄 몰랐다고. 문화 재생으로 살아 있는 박물관이 되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주변 신도시로 주거지와 상권이 대거 이동하면서 반백년 동안 물리적 성장은 멈추고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닫힌 가게와 빈 건물이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본 조춘희 대표는 주민 몇몇과 함께 뜻을 모아 마을 청소부터 시작했다. 쓰레기를 치우고 꽃밭을 만들고 거리를 정돈하자 한결 정감어린 단정한 마을이 됐다. 때마침 마을재생사업 붐이 일면서 문화체육관광부와 경기도의 문화마을재생사업에 선정되어 벽화, 이야기를 담은 아트 간판 등이 설치되고 구술생애사 기록, 기억밥상 등 문화와 역사를 기록하는 활동이 이어졌다. 마을의 문화 재생 방향을 설정하고 그 변화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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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속도로 누비는 자전거를 탄 가을 풍경vol.184

수 있는 길이다. 경원선 철도 중단점을 알리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 표지가 있는 신탄리역과 옥녀봉에 우뚝 서서 북한을 향해 인사하는 ‘그리팅맨’에서는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 평화누리 자전거길 제7코스(군남홍수조절지~역고드름) 주행거리 32km 주변 명소 군남홍수조절지, 임진강평화습지원, ‘그리팅맨’, 신탄리역, 고대산, 역고드름 서해와 한강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뱃길 따라 고고~ 서해와 한강을 연결하는 경인아라뱃길을 따라 조성된 명품 자전거길, 잘 닦은 자전거도로가 일직선으로 이어져 초보자도 편하게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 또 인공 폭포, 전망대,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달리는 내내 지루하지 않으며, 곳곳에 야간 스폿도 있어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아라자전거길(아라서해갑문~아라한강갑문) 주행거리 21km 주변 명소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아라마리나, 수향루, 아라폭포, 아라마루, 아라서해갑문 강물 따라 추억도 함께 달린다 남양주 팔당에서 양평까지 이어지는 27km의 중앙선 폐철도 구간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전거길로 꼽힌다. 녹슨 기찻길을 사이에 두고 말끔하게 포장된 자전거길을 따라 터널과 강변을 달려 지금은 쉼터 역할을 하는 추억의 간이역인 능내역도 만난다. 남한강 자전거길(팔당대교~양평) 주행거리 27km 주변 명소 능내역, 팔당댐, 두물머리, 북한강철교, 세미원 자유를 열망하고 평화를 노래하다 파주 반구정부터 임진강을 따라 장남교까지 이어지는 자전거길. 황희와 이이가 관직에서 물러난 후 여생을 보냈다는 반구정과 화석정, DMZ의 랜드마크인 임진각평화누리를 만날 수 있다.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을 따라 달리다 보면 남북으로 분단된 현실에 콧바람보다는 숙연한 마음이 든다. 평화누리 자전거길 제5코스(반구정~장남교) 주행거리 29km 주변 명소 반구정, 임진각 평화누리, 화석정, 율곡수목원 세종대왕과 함께하는 남한강 100리길 남한강 변을 따라 쭉 이어지는 강변길이 매력적인 코스. 모습이 제각각인 이포보, 여주보, 강천보를 비롯해 당남리섬 테마공원, 세종대왕 영릉, 신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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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문인과 함흥차사가 걷던 경흥길 영평팔경길vol.183

있다. 조선 시대 포천 지역에 거주했던 안동 김씨의 종택이 있던 곳으로 원래 종택을 언제 지었는지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건물은 한국전쟁 때 모두 소실됐으며, 전쟁이 끝난 후 후손들이 터를 정리하고 주변에 경작지를 조성했다. 금수정을 벗어나면 포천의 논밭을 배경으로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다소 지루한 구간이지만, 길 옆으로 핀 들꽃이 눈을 즐겁게 한다. 운산리자연생태공원에 들어서자 상쾌한 숲 향기가 온몸을 적신다. 단풍나무, 소나무, 잣나무 군락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공원을 수놓은 억새 물결이 가을맞이를 준비 중이다. 운산리자연생태공원을 지나면 구라이골이 나온다. 구라이골은 ‘굴’과 ‘바위’의 합성어로 ‘굴바위’라고도 불리는데, 수풀이 우거지는 여름에는 협곡이 굴처럼 생겼다 해 붙은 이름이다. 50만 년 전 북쪽의 강원도 평강군에서 흘러내린 용암이 만들어낸 국내 유일의 현무암 협곡으로, 성벽처럼 생긴 주상절리가 장관을 이룬다.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하늘다리에서 잠시 멈춰 이 멋진 풍경을 감상하길 추천한다. 전망대에 오르면 50만 년 전 북쪽의 강원도 평강군에서 흘러내린 용암이 만들어낸 국내 유일의 현무암 협곡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하늘다리를 지나면 포천의 한탄강 주상절리길과 이어진다. 초입에 함흥차사가 지나던 길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함흥차사는 심부름을 간 사람이 소식이 없거나 화답이 좀처럼 오지 않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조선 초 태조 이성계를 모시러 함흥에 갔다 돌아오지 않은 사신을 이르는 말이었다. 이성계가 왕위를 정종에게 물려주고 함흥으로 떠나자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한 태종 이방원이 아버지를 도성으로 모셔오려고 함흥으로 여러 번 사신을 보냈다. 하지만 이성계는 이방원을 괘씸하게 여겨 한양으로 가지 않겠다는 뜻으로 사신들을 죽이거나 가두어 돌려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포천시 경흥로는 바로 함흥차사가 지나던 길이라는 데서 그 이름이 시작됐다. ... 지역에 거주했던 안동 김씨의 종택이 있던 곳으로 원래 종택을 언제 지었는지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건물은 한국전쟁 때 모두 소실됐으며, 전쟁이 끝난 후 후손들이 터를 정리하고 주변에 경작지를 조성했다. 금수정을 벗어나면 포천의 논밭을 배경으로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다소 지루한 구간이지만, 길 옆으로 핀 들꽃이 눈을 즐겁게 한다. 운산리자연생태공원에 들어서자 상쾌한 숲 향기가 온몸을 적신다. 단풍나무, 소나무, 잣나무 군락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공원을 수놓은 억새 물결이 가을맞이를 준비 중이다. 운산리자연생태공원을 지나면 구라이골이 나온다. 구라이골은 ‘굴’과 ‘바위’의 합성어로 ‘굴바위’라고도 불리는데, 수풀이 우거지는 여름에는 협곡이 굴처럼 생겼다 해 붙은 이름이다. 50만 년 전 북쪽의 강원도 평강군에서 흘러내린 용암이 만들어낸 국내 유일의 현무암 협곡으로, 성벽처럼 생긴 주상절리가 장관을 이룬다.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하늘다리에서 잠시 멈춰 이 멋진 풍경을 감상하길 추천한다. 전망대에 오르면 50만 년 전 북쪽의 강원도 평강군에서 흘러내린 용암이 만들어낸 국내 유일의 현무암 협곡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하늘다리를 지나면 포천의 한탄강 주상절리길과 이어진다. 초입에 함흥차사가 지나던 길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함흥차사는 심부름을 간 사람이 소식이 없거나 화답이 좀처럼 오지 않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조선 초 태조 이성계를 모시러 함흥에 갔다 돌아오지 않은 사신을 이르는 말이었다. 이성계가 왕위를 정종에게 물려주고 함흥으로 떠나자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한 태종 이방원이 아버지를 도성으로 모셔오려고 함흥으로 여러 번 사신을 보냈다. 하지만 이성계는 이방원을 괘씸하게 여겨 한양으로 가지 않겠다는 뜻으로 사신들을 죽이거나 가두어 돌려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포천시 경흥로는 바로 함흥차사가 지나던 길이라는 데서 그 이름이 시작됐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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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과 가나안농군학교 김용기 장로가 꿈꾼 이상촌 이야기 남양주 조안면vol.183

전개했다. 일제의 압제가 극에 달한 1940년대에는 몽양 여운형 선생을 비롯한 항일운동가와 애국지사, 학병 징집 거부자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되면서 봉안 이상촌 건설은 미완성으로 끝난다. 그 경험은 가나안농군학교의 초석이 되었다. 가나안농군학교는 1962년 김용기 장로가 농촌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현재 하남시 풍산동에 설립한 기독교 합숙 교육기관으로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모델이 된다. 가나안농군학교에서 매일 새벽 5시에 울리던 ‘개척종’이 ‘새벽종이 울렸네’라는 새마을운동 노래로 이어진 것이다. 생태와 인문이 어우러진 21세기 이상향 마을을 꿈꾸며 “이상향 마을까지는 아니더라도 환경을 지키면서 경제적으로 잘사는 마을로 만들고 싶어요. 그런데 각종 규제로 일자리 창출이 어렵다 보니 젊은 세대는 공동화되고, 노인 세대만 남게 되네요. 땅을 사거나 집을 짓기 어려워 유입되는 이주민도 적고요.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팔당마을위원회입니다.” 이양희 대표는 “젊은 세대를 유입시키고, 앞선 세대의 경험을 마을 발전에 담아내는 고민이 필요했다”며 “팔당마을위원회에서 주민 간 갈등 해소와 마을 단위 연대, 공동체 회복을 목표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2020년 경기도 마을 종합 지원사업을 3년간 진행한 팔당마을위원회는 이 과정에서 마을활동가 양성, 지역 문화 연구, 지역 학습 공동체 프로그램, 축제 등을 토대로 새롭게 ‘조안생태문화관광’으로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조안면은 각종 규제로 45년 동안 섬처럼 고립되었지만 그 덕분에 자연이 오염되거나 훼손되지 않았고, 전통적 공동체 문화도 비교적 해체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는, 수도권에서는 흔치 않은 마을이다. 기후 위기로 생태적 가치가 더욱 커지고 있는 현시대에 생태와 인문이 어우러진 조안면은 마을의 새로운 대안 혹은 21세기 이상형 마을이 되지 않을까? 정약용이 태어나고 생을 마친 ‘여유당’ 앞에 흐르는 한강은 예나 지금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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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희네 가족의 일곱 빛깔 행복 일기vol.182

가족입니다. 남자아이 둘에 여자아이가 넷, 배 속에 있는 오복이(태명)까지 태어나면 7남매가 되네요. 큰아들 승희가 중학생이고 밑으로 동생이 줄줄이 있으니 매일매일 전쟁이나 다름없지요. 그런데 각각 성향이 다른 아이들이 주는 사랑과 행복에 고단함도 금세 잊는답니다. 아이들 아빠는 평택여객에서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모범 운전사예요. 운전도 힘들 텐데, 퇴근하고 집에 오면 넷째부터 여섯째까지 잘 놀아주고, 씻겨주고, 집안일도 도와줍니다. 고마운 마음이 크죠. 이 자리를 빌려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는 회사에도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첫째 승희와 둘째 하나에게는 특히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한창 사춘기인데도 투정 한번 안 부리고 공부하랴, 동생 돌보랴, 심부름하랴 정말 대견하답니다. 늘 밝고 쾌활한 끼쟁이 두희, 똑 부러지는 수지, 애교쟁이 지아, 그리고 지율 공주님도 모두모두 고맙고 사랑해. 마지막으로 오복아, 건강하게 태어나주길 바란다. 송탄소방서 119구급차에서 태어난 지율이 언니처럼 갑자기 나오는 건 반칙이야. 나오기 전에 꼭 엄마에게 신호를 주렴.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모습도 성격도 제각각인 우리 7남매. 지금처럼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자꾸나. -사랑하는 엄마가 ps. 지율이의 출산을 도와주신 송탄소방서 구급대원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네모렌탈스튜디오 돌은 물론 가족, 친구 등 다양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과 파티 룸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유튜브 촬영으로도 인기가 높습니다. 아기자기한 소품이 많은 데다 리모컨으로 셀프 촬영을 할 수 있는 장비도 구비해놓았습니다. 주소 경기도 평택시 조개터로 40 문의 010-4921-6425 무료로 기념사진을 찍어드립니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 모임 혹은 또 하나의 가족인 강아지·고양이 등 반려동물과 함께한 소중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보세요. <나의 경기도> 이메일로 이름, 연락처, 인원수, 신청 사연을 적어 보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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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시흥시의 성장과 번영을 함께한 원도심의 새로운 100년 이야기 소래산 첫마을vol.182

공장들이 들어와 점점 도시로 변했어요”라며 “여공과 사귀어보려고 때 빼고 광내고 시내를 누비는 총각이 많았는데, 나도 그렇게 아내를 만났습니다”라고 회상했다. 한국전쟁 후 폭격으로 무너진 학교 건물을 대신해 움막을 지어 수업하는 소래초등학교 뱀내장은 북쪽의 부천 상권과 연계해 시흥 상업 활동의 거점이 되었다. 소래초등학교 운동장 한쪽에 들어선 시흥시 학교 복합 시설 소래너나들이. 지역 커뮤니티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마을의 랜드마크다. 실향민과 철거민의 아픔을 보듬은 마을 시흥의 행정·경제 중심지였던 신천동과 대야동은 삶의 터전을 잃고 오갈 곳 없는 사람들을 끌어안은 동네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후 정부의 이주 정책에 따라 황해도 연백군과 옹진군에서 온 피란민들이 소래산 자락 허허벌판에 대거 정착한 것이다. 늘 집을 짓고 있는 현장이라 해서 현장마을이라 불렀고, 나중에 온 피란민은 중간마을과 계란마을에 정착했다. 1977년에는 서울시 도시 개발에서 밀려난 양평동 주민 170세대가 이곳으로 이주해 복음자리마을을 만들었다. 빈민 운동가였던 제정구 국회의원과 예수회 소속 정일우 신부는 강제 철거가 시작되자 독일 미제레오르 선교회에서 보내온 10만 달러로 신천리에 있던 복숭아와 포도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빈민 공동체인 복음자리마을을 건설했다. 비록 9평, 12평, 15평의 작은 공간이지만 집 없는 설움에서 벗어난 주민들은 공동체의 자립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사회복지법인 복음자리를 결성하고 지역의 특산물인 딸기, 복숭아, 포도로 잼을 만들어 팔았다. 과일 잼으로 유명한 ‘복음자리’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은 휴먼시아아파트가 들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복음자리마을은 강제 철거되거나 철거가 예정된 마을 주민에게는 희망의 본보기가 되었고, 시흥시는 한국 사회운동에서 중요한 지역으로 떠올랐다. 시민운동, 민중운동, 지역 풀뿌리 운동으로 다양하게 변화된 한국 사회운동의 역사를 간직한 사회복지법인 복음자리는 여전히 시흥 지역공동체의 ... 실향민과 철거민의 아픔을 보듬은 마을 시흥의 행정·경제 중심지였던 신천동과 대야동은 삶의 터전을 잃고 오갈 곳 없는 사람들을 끌어안은 동네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후 정부의 이주 정책에 따라 황해도 연백군과 옹진군에서 온 피란민들이 소래산 자락 허허벌판에 대거 정착한 것이다. 늘 집을 짓고 있는 현장이라 해서 현장마을이라 불렀고, 나중에 온 피란민은 중간마을과 계란마을에 정착했다. 1977년에는 서울시 도시 개발에서 밀려난 양평동 주민 170세대가 이곳으로 이주해 복음자리마을을 만들었다. 빈민 운동가였던 제정구 국회의원과 예수회 소속 정일우 신부는 강제 철거가 시작되자 독일 미제레오르 선교회에서 보내온 10만 달러로 신천리에 있던 복숭아와 포도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빈민 공동체인 복음자리마을을 건설했다. 비록 9평, 12평, 15평의 작은 공간이지만 집 없는 설움에서 벗어난 주민들은 공동체의 자립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사회복지법인 복음자리를 결성하고 지역의 특산물인 딸기, 복숭아, 포도로 잼을 만들어 팔았다. 과일 잼으로 유명한 ‘복음자리’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은 휴먼시아아파트가 들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복음자리마을은 강제 철거되거나 철거가 예정된 마을 주민에게는 희망의 본보기가 되었고, 시흥시는 한국 사회운동에서 중요한 지역으로 떠올랐다. 시민운동, 민중운동, 지역 풀뿌리 운동으로 다양하게 변화된 한국 사회운동의 역사를 간직한 사회복지법인 복음자리는 여전히 시흥 지역공동체의 나눔 문화, 경제 활성화와 연대를 위해 다양한 사업과 활동을 펼치고 있다. 새로운 100년을 꿈꾸는 소래산 첫마을 시흥의 번영·성장과 함께했지만 1997년 시흥시청이 장현동으로 이주한 뒤 우시장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공장들이 사라지면서 상권이 침체되기 시작한 신천동과 대야동은 주택마저 노후화가 가속되면서 쇠락한 원도심이 되었다. 이에 주민들은 더 나은 마을, 더 살기 좋은 마을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주민협의회와 도시재생지원센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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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의 유래를 찾는 길 봉화길 남천주길vol.181

이후 고려 태조 왕건은 후백제와 일전을 벌이기 위해 지금의 복하천(福河川)에 이르렀을 때 서목(徐穆)이라는 사람의 도움으로 강을 건널 수 있었다. 후백제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왕건은 ‘이섭대천’이라는 글귀를 내렸고, 이 글귀에서 ‘이천’이라는 지명이 탄생했다고 전해진다. 봉화길 경기도는 하남, 광주, 여주, 이천, (재)경기문화재단과 함께 한양에서 경북 봉화를 잇는 봉화로의 옛 노선을 연구 고증한 뒤 그 원형을 바탕으로 봉화길을 조성했습니다. Info 코스 정보 신둔도예촌역 → →사기막골도예촌 →설봉산성 →애련정 →부발역 소요 시간 5시간 10분 거리 16km 난이도 중 설봉호수는 이천 시민의 쉼터로, 넓은 호수를 따라 걷기 좋은 둘레길이 펼쳐진다. 도자기 마을에서 예술혼을, 설봉산에서 멋진 풍광을 담다 신둔도예촌역에서 부발역 방향으로 시내 길과 농로를 따라 40여 분 걸으면 사기막골도예촌이 나온다. 사기막골은 사기+ 막+골의 합성어다. 사기(砂器)에서 사(砂) 자는 모래 ‘사’인데 사토는 사기그릇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성분이고, 막은 움막, 숯막처럼 임시 거처를 의미하며, 골은 골짜기를 뜻한다. 즉 사기막골은 우리나라에서 나는 흙으로 사기그릇을 만드는 골짜기라는 의미다. 지명의 유래처럼 이곳은 다양한 도자기 공방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카페와 식당도 있어 잠시 휴식을 취하며 공방 앞에 진열된 개성 넘치는 도자기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기막골도예촌을 지나면 설봉산을 오른다. 설봉산은 높이 약 394m로, 이천을 수호하는 진산이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1.4km로 길지 않지만, 남천주길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다. 급경사진 오르막으로 이 지역 사람들은 이 구간을 숨이 깔딱거릴 정도로 힘들다고 해서 ‘깔딱고개’라 부른다. 보폭을 줄이고 싱그러운 여름이 선물하는 상쾌한 숲 향기를 들이마시며 쉬엄쉬엄 걸을 것을 추천한다. 설봉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이천 시내의 풍광은 힘들게 오른 노력에 대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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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의 이야기꽃이 핀 의주길 임진나루길vol.180

세계 일주도 준비 중이다. Tip 사진 촬영 명소 화석정 율곡의 5대 조부인 이명신이 조선 세종 때 지은 정자.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졌지만, 1966년 파주의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다시 지었다. 굽이치며 흐르는 임진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기 좋은 쉼터다. 임진강 독개다리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파괴된 교각을 활용해 길이 105m, 폭 5m로 전쟁 전 철교 형태를 재현해 지었다. 과거·현재·미래 구간으로 구성된 다리를 걸으며 전쟁의 상흔과 평화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 관광형 인도교다. ... 불타 없어졌지만, 1966년 파주의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다시 지었다. 굽이치며 흐르는 임진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기 좋은 쉼터다. 임진강 독개다리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파괴된 교각을 활용해 길이 105m, 폭 5m로 전쟁 전 철교 형태를 재현해 지었다. 과거·현재·미래 구간으로 구성된 다리를 걸으며 전쟁의 상흔과 평화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 관광형 인도교다. ... 흐르는 임진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기 좋은 쉼터다. 임진강 독개다리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파괴된 교각을 활용해 길이 105m, 폭 5m로 전쟁 전 철교 형태를 재현해 지었다. 과거·현재·미래 구간으로 구성된 다리를 걸으며 전쟁의 상흔과 평화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 관광형 인도교다. ... 당시 폭격으로 파괴된 교각을 활용해 길이 105m, 폭 5m로 전쟁 전 철교 형태를 재현해 지었다. 과거·현재·미래 구간으로 구성된 다리를 걸으며 전쟁의 상흔과 평화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 관광형 인도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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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숨은 영웅, 레클리스와 지게부대 이야기 연천 백학마을vol.180

변화 경기 경기 마을 속으로 한국전쟁의 숨은 영웅, 레클리스와 지게부대 이야기 연천 백학마을2024. 06 연천군 백학면은 국가보훈처에서 지정한 ‘호국영웅정신계승마을 제1호’ 마을이다.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고 호국에 앞장섰던 백학마을의 숭고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글. 이정은 사진. 전재호 지게를 지고 전쟁터에서 활약한 지게부대와 병사 10명의 몫을 해낸 군마 레클리스 1953년 3월, 연천군 백학면 매현리에서 치러진 ‘네바다 전초전’은 미국 해병 1사단 5연대가 중공군 120사단을 막아낸 치열한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며 승리로 이끈 병사가 있었으니, 군마(軍馬) 레클리스다. 본래 이름은 ‘아침해’였는데, 얼마나 용맹했는지 미군들은 ‘무모하다’는 뜻의 ‘레클리스’라는 이름으로 불렀다고. 아침해가 미군에 입대한 사연은 이렇다. 전장이 대부분 험준한 산악 지대라 식량과 포탄 운송에 어려움을 겪던 미군은 말을 이용하기로 결정하고, 때마침 피란길에 다리를 다친 여동생의 의족을 사기 위해 말을 팔려던 김혁문을 만나 레클리스를 산다. 제주에서 태어나 경주마로 활약하던 레클리스는 신장 142cm, 체중 410kg의 작은 암말이었지만 일반 병사 10여 명의 몫을 해낼 정도로 전투력이 뛰어났다. 게다가 머리도 영리해 사람이 두어 번 동행해주면 그 뒤에는 혼자 보내도 알아서 길을 찾아가고, 사격이 시작되면 엎드릴 줄도 알았다. 병사들이 자신의 방탄복을 벗어 보호할 정도로 레클리스는 소중한 전우였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의 요청으로 샌프란시스코로 간 레클리스는 상병에서 병장으로 진급했고, 1959년에는 하사로 임관했으며, 스무 살까지 살다 1968년에 눈을 감았다. 한국과 미국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미 ‘퍼플 하트’ 훈장 2개, 미 해군 사령관 표창 2개, 한국전쟁 참전 유엔 훈장 등 ... ‘호국영웅정신계승마을 제1호’ 마을이다.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고 호국에 앞장섰던 백학마을의 숭고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글. 이정은 사진. 전재호 지게를 지고 전쟁터에서 활약한 지게부대와 병사 10명의 몫을 해낸 군마 레클리스 1953년 3월, 연천군 백학면 매현리에서 치러진 ‘네바다 전초전’은 미국 해병 1사단 5연대가 중공군 120사단을 막아낸 치열한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며 승리로 이끈 병사가 있었으니, 군마(軍馬) 레클리스다. 본래 이름은 ‘아침해’였는데, 얼마나 용맹했는지 미군들은 ‘무모하다’는 뜻의 ‘레클리스’라는 이름으로 불렀다고. 아침해가 미군에 입대한 사연은 이렇다. 전장이 대부분 험준한 산악 지대라 식량과 포탄 운송에 어려움을 겪던 미군은 말을 이용하기로 결정하고, 때마침 피란길에 다리를 다친 여동생의 의족을 사기 위해 말을 팔려던 김혁문을 만나 레클리스를 산다. 제주에서 태어나 경주마로 활약하던 레클리스는 신장 142cm, 체중 410kg의 작은 암말이었지만 일반 병사 10여 명의 몫을 해낼 정도로 전투력이 뛰어났다. 게다가 머리도 영리해 사람이 두어 번 동행해주면 그 뒤에는 혼자 보내도 알아서 길을 찾아가고, 사격이 시작되면 엎드릴 줄도 알았다. 병사들이 자신의 방탄복을 벗어 보호할 정도로 레클리스는 소중한 전우였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의 요청으로 샌프란시스코로 간 레클리스는 상병에서 병장으로 진급했고, 1959년에는 하사로 임관했으며, 스무 살까지 살다 1968년에 눈을 감았다. 한국과 미국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미 ‘퍼플 하트’ 훈장 2개, 미 해군 사령관 표창 2개, 한국전쟁 참전 유엔 훈장 등 수많은 훈장을 수훈하고 표창을 받았을 뿐 아니라 미국 잡지 <라이프>에서 선정한 ‘미국의 100대 영웅’에 이름을 올렸다. 워싱턴, 링컨, 테레사 수녀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네바다 전초전투 현장이었던 백학마을과 여생을 보낸 미국에서는 ... 뒤에는 혼자 보내도 알아서 길을 찾아가고, 사격이 시작되면 엎드릴 줄도 알았다. 병사들이 자신의 방탄복을 벗어 보호할 정도로 레클리스는 소중한 전우였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의 요청으로 샌프란시스코로 간 레클리스는 상병에서 병장으로 진급했고, 1959년에는 하사로 임관했으며, 스무 살까지 살다 1968년에 눈을 감았다. 한국과 미국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미 ‘퍼플 하트’ 훈장 2개, 미 해군 사령관 표창 2개, 한국전쟁 참전 유엔 훈장 등 수많은 훈장을 수훈하고 표창을 받았을 뿐 아니라 미국 잡지 <라이프>에서 선정한 ‘미국의 100대 영웅’에 이름을 올렸다. 워싱턴, 링컨, 테레사 수녀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네바다 전초전투 현장이었던 백학마을과 여생을 보낸 미국에서는 레클리스를 기리는 행사를 열고 있다. 군번도 계급장도 없는 숨은 영웅들 한국전쟁에는 레클리스처럼 숨은 영웅이 많다. 지게에 탄약과 식량을 지고 최전방까지 나른 KSC(Korea Service Corps) 노무자 부대, 일명 지게부대원이 그들이다. 약 30만 명에 달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난리통에 입증할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참전자 또는 전사자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백학면 출신 금동훈 씨도 그중 한 명이다. “아버님이 17세에 노무자 부대 하사관으로 참전하셔서 대덕산 전투, 연천 백학·장남, 파주 일원 임진강 지역에서 군수품 운반과 부상병, 전사자 후송 업무를 맡으셨대요. 45kg 정도의 포탄을 지게에 지고 하루 5시간씩 전장을 오르내리셨답니다.” 아들인 백학역사박물관 금가현 관장은 “정부에서 참전 사실을 몰라 20세가 되던 해에 또다시 입영 영장이 나왔다”며 “논산훈련소에 면담을 통해 한국전쟁 참전 사실이 확인돼 전역하셨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2023년 경기도 관광테마골목사업으로 조성한 레클리스 거리에는 지게부대, 레클리스, 백학면 세시풍속 등을 벽화로 그렸다. 연천 최초 3·1만세운동 발상지 백학면에 ... 살까지 살다 1968년에 눈을 감았다. 한국과 미국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미 ‘퍼플 하트’ 훈장 2개, 미 해군 사령관 표창 2개, 한국전쟁 참전 유엔 훈장 등 수많은 훈장을 수훈하고 표창을 받았을 뿐 아니라 미국 잡지 <라이프>에서 선정한 ‘미국의 100대 영웅’에 이름을 올렸다. 워싱턴, 링컨, 테레사 수녀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네바다 전초전투 현장이었던 백학마을과 여생을 보낸 미국에서는 레클리스를 기리는 행사를 열고 있다. 군번도 계급장도 없는 숨은 영웅들 한국전쟁에는 레클리스처럼 숨은 영웅이 많다. 지게에 탄약과 식량을 지고 최전방까지 나른 KSC(Korea Service Corps) 노무자 부대, 일명 지게부대원이 그들이다. 약 30만 명에 달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난리통에 입증할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참전자 또는 전사자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백학면 출신 금동훈 씨도 그중 한 명이다. “아버님이 17세에 노무자 부대 하사관으로 참전하셔서 대덕산 전투, 연천 백학·장남, 파주 일원 임진강 지역에서 군수품 운반과 부상병, 전사자 후송 업무를 맡으셨대요. 45kg 정도의 포탄을 지게에 지고 하루 5시간씩 전장을 오르내리셨답니다.” 아들인 백학역사박물관 금가현 관장은 “정부에서 참전 사실을 몰라 20세가 되던 해에 또다시 입영 영장이 나왔다”며 “논산훈련소에 면담을 통해 한국전쟁 참전 사실이 확인돼 전역하셨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2023년 경기도 관광테마골목사업으로 조성한 레클리스 거리에는 지게부대, 레클리스, 백학면 세시풍속 등을 벽화로 그렸다. 연천 최초 3·1만세운동 발상지 백학면에 한국전쟁 영웅이 많은 이유는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백학면은 군사분계선을 끼고 남과 북으로 갈린 마을이다. 21개 마을로 이루어졌으나 13개 마을을 제외한 나머지는 미수복 지역으로 남아 있다. 마을 지도를 보면 누워 있는 한반도 모양새다. 게다가 백학면행정복지센터가 ... 한 것이다. 네바다 전초전투 현장이었던 백학마을과 여생을 보낸 미국에서는 레클리스를 기리는 행사를 열고 있다. 군번도 계급장도 없는 숨은 영웅들 한국전쟁에는 레클리스처럼 숨은 영웅이 많다. 지게에 탄약과 식량을 지고 최전방까지 나른 KSC(Korea Service Corps) 노무자 부대, 일명 지게부대원이 그들이다. 약 30만 명에 달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난리통에 입증할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참전자 또는 전사자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백학면 출신 금동훈 씨도 그중 한 명이다. “아버님이 17세에 노무자 부대 하사관으로 참전하셔서 대덕산 전투, 연천 백학·장남, 파주 일원 임진강 지역에서 군수품 운반과 부상병, 전사자 후송 업무를 맡으셨대요. 45kg 정도의 포탄을 지게에 지고 하루 5시간씩 전장을 오르내리셨답니다.” 아들인 백학역사박물관 금가현 관장은 “정부에서 참전 사실을 몰라 20세가 되던 해에 또다시 입영 영장이 나왔다”며 “논산훈련소에 면담을 통해 한국전쟁 참전 사실이 확인돼 전역하셨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2023년 경기도 관광테마골목사업으로 조성한 레클리스 거리에는 지게부대, 레클리스, 백학면 세시풍속 등을 벽화로 그렸다. 연천 최초 3·1만세운동 발상지 백학면에 한국전쟁 영웅이 많은 이유는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백학면은 군사분계선을 끼고 남과 북으로 갈린 마을이다. 21개 마을로 이루어졌으나 13개 마을을 제외한 나머지는 미수복 지역으로 남아 있다. 마을 지도를 보면 누워 있는 한반도 모양새다. 게다가 백학면행정복지센터가 있는 두일리는 연천에서 최초로 3·1만세 운동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3·1만세운동부터 지게부대, 한국전쟁 참전 유공자, 레클리스까지 그 어느 마을보다 나라의 안위를 염려하고 호국에 앞장섰던 백학마을은 호국 정신을 인정받아 지난 2015년 국가보훈처가 ‘호국영웅정신계승마을 제1호’로 지정했다. “미국에는 레클리스 기념관이 있고 여기저기 동상도 많은데, 정작 우리 마을에서는 잘 모르고 있었어요. 뒤늦게 ‘용맹한 ... 전장을 오르내리셨답니다.” 아들인 백학역사박물관 금가현 관장은 “정부에서 참전 사실을 몰라 20세가 되던 해에 또다시 입영 영장이 나왔다”며 “논산훈련소에 면담을 통해 한국전쟁 참전 사실이 확인돼 전역하셨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2023년 경기도 관광테마골목사업으로 조성한 레클리스 거리에는 지게부대, 레클리스, 백학면 세시풍속 등을 벽화로 그렸다. 연천 최초 3·1만세운동 발상지 백학면에 한국전쟁 영웅이 많은 이유는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백학면은 군사분계선을 끼고 남과 북으로 갈린 마을이다. 21개 마을로 이루어졌으나 13개 마을을 제외한 나머지는 미수복 지역으로 남아 있다. 마을 지도를 보면 누워 있는 한반도 모양새다. 게다가 백학면행정복지센터가 있는 두일리는 연천에서 최초로 3·1만세 운동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3·1만세운동부터 지게부대, 한국전쟁 참전 유공자, 레클리스까지 그 어느 마을보다 나라의 안위를 염려하고 호국에 앞장섰던 백학마을은 호국 정신을 인정받아 지난 2015년 국가보훈처가 ‘호국영웅정신계승마을 제1호’로 지정했다. “미국에는 레클리스 기념관이 있고 여기저기 동상도 많은데, 정작 우리 마을에서는 잘 모르고 있었어요. 뒤늦게 ‘용맹한 사람들의 후예’라는 단체를 주축으로 ‘아침해 기념사업회’를 결성해 다양한 홍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16일에 진행된 레클리스 추모 56주기 기념식에서 만난 이상경 아침해협동조합 이사는 “주민들이 직접 백학역사박물관을 짓고, 마을해설사를 양성해 마을 투어도 진행하는 등 마을의 역사와 정신을 잇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호국과 평화의 맥을 잇는 사람들 백학역사박물관에는 백학면 100년의 역사가 벽화로 그려져 있고, 참전 용사 사진과 유품, 철모, 총기류, 탄알, 포탄류, 제1땅굴, 오토마타(기계장치를 통해 움직이는 인형이나 조형물)로 재현한 지게부대원과 레클리스 등이 작지만 알차게 전시되어 있다. 마을박물관 건립을 추진한 금가현 관장은 “지금은 신기하고 생소한 것이 됐지만 한때는 생계용으로, 혹은 놀잇감으로 사용되던 전쟁 ... 전했다. 2023년 경기도 관광테마골목사업으로 조성한 레클리스 거리에는 지게부대, 레클리스, 백학면 세시풍속 등을 벽화로 그렸다. 연천 최초 3·1만세운동 발상지 백학면에 한국전쟁 영웅이 많은 이유는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백학면은 군사분계선을 끼고 남과 북으로 갈린 마을이다. 21개 마을로 이루어졌으나 13개 마을을 제외한 나머지는 미수복 지역으로 남아 있다. 마을 지도를 보면 누워 있는 한반도 모양새다. 게다가 백학면행정복지센터가 있는 두일리는 연천에서 최초로 3·1만세 운동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3·1만세운동부터 지게부대, 한국전쟁 참전 유공자, 레클리스까지 그 어느 마을보다 나라의 안위를 염려하고 호국에 앞장섰던 백학마을은 호국 정신을 인정받아 지난 2015년 국가보훈처가 ‘호국영웅정신계승마을 제1호’로 지정했다. “미국에는 레클리스 기념관이 있고 여기저기 동상도 많은데, 정작 우리 마을에서는 잘 모르고 있었어요. 뒤늦게 ‘용맹한 사람들의 후예’라는 단체를 주축으로 ‘아침해 기념사업회’를 결성해 다양한 홍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16일에 진행된 레클리스 추모 56주기 기념식에서 만난 이상경 아침해협동조합 이사는 “주민들이 직접 백학역사박물관을 짓고, 마을해설사를 양성해 마을 투어도 진행하는 등 마을의 역사와 정신을 잇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호국과 평화의 맥을 잇는 사람들 백학역사박물관에는 백학면 100년의 역사가 벽화로 그려져 있고, 참전 용사 사진과 유품, 철모, 총기류, 탄알, 포탄류, 제1땅굴, 오토마타(기계장치를 통해 움직이는 인형이나 조형물)로 재현한 지게부대원과 레클리스 등이 작지만 알차게 전시되어 있다. 마을박물관 건립을 추진한 금가현 관장은 “지금은 신기하고 생소한 것이 됐지만 한때는 생계용으로, 혹은 놀잇감으로 사용되던 전쟁 유물”이라며 “분단 상황을 잊고 살아가는 어린 세대와 후손들이 박물관을 보고 평화와 안보의 중요성을 깨달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밝혔다. 지난 2021년 경기도 문화특화지역(문화마을)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DMZ 접경의 대표적 ... 마을 지도를 보면 누워 있는 한반도 모양새다. 게다가 백학면행정복지센터가 있는 두일리는 연천에서 최초로 3·1만세 운동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3·1만세운동부터 지게부대, 한국전쟁 참전 유공자, 레클리스까지 그 어느 마을보다 나라의 안위를 염려하고 호국에 앞장섰던 백학마을은 호국 정신을 인정받아 지난 2015년 국가보훈처가 ‘호국영웅정신계승마을 제1호’로 지정했다. “미국에는 레클리스 기념관이 있고 여기저기 동상도 많은데, 정작 우리 마을에서는 잘 모르고 있었어요. 뒤늦게 ‘용맹한 사람들의 후예’라는 단체를 주축으로 ‘아침해 기념사업회’를 결성해 다양한 홍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16일에 진행된 레클리스 추모 56주기 기념식에서 만난 이상경 아침해협동조합 이사는 “주민들이 직접 백학역사박물관을 짓고, 마을해설사를 양성해 마을 투어도 진행하는 등 마을의 역사와 정신을 잇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호국과 평화의 맥을 잇는 사람들 백학역사박물관에는 백학면 100년의 역사가 벽화로 그려져 있고, 참전 용사 사진과 유품, 철모, 총기류, 탄알, 포탄류, 제1땅굴, 오토마타(기계장치를 통해 움직이는 인형이나 조형물)로 재현한 지게부대원과 레클리스 등이 작지만 알차게 전시되어 있다. 마을박물관 건립을 추진한 금가현 관장은 “지금은 신기하고 생소한 것이 됐지만 한때는 생계용으로, 혹은 놀잇감으로 사용되던 전쟁 유물”이라며 “분단 상황을 잊고 살아가는 어린 세대와 후손들이 박물관을 보고 평화와 안보의 중요성을 깨달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밝혔다. 지난 2021년 경기도 문화특화지역(문화마을)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DMZ 접경의 대표적 문화 마을로 발돋움한 백학은 거점 공간인 ‘DMZ백학문화활용소’를 비롯해 역사와 문화를 총정리한 <38선과 휴전선을 품은 백학>을 발간했으며, 백학면 두일장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플리마켓 ‘백학3.8장’을 여는 등 다양한 사업을 벌였다. 지난해에는 ‘2023년 경기도 구석구석 관광테마골목’ 사업에 선정되어 ‘연천 백학 호국영웅 레클리스 거리’를 조성하고 평화와 안보를 테마로 한 관광 ... 등이 작지만 알차게 전시되어 있다. 마을박물관 건립을 추진한 금가현 관장은 “지금은 신기하고 생소한 것이 됐지만 한때는 생계용으로, 혹은 놀잇감으로 사용되던 전쟁 유물”이라며 “분단 상황을 잊고 살아가는 어린 세대와 후손들이 박물관을 보고 평화와 안보의 중요성을 깨달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밝혔다. 지난 2021년 경기도 문화특화지역(문화마을)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DMZ 접경의 대표적 문화 마을로 발돋움한 백학은 거점 공간인 ‘DMZ백학문화활용소’를 비롯해 역사와 문화를 총정리한 <38선과 휴전선을 품은 백학>을 발간했으며, 백학면 두일장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플리마켓 ‘백학3.8장’을 여는 등 다양한 사업을 벌였다. 지난해에는 ‘2023년 경기도 구석구석 관광테마골목’ 사업에 선정되어 ‘연천 백학 호국영웅 레클리스 거리’를 조성하고 평화와 안보를 테마로 한 관광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6명의 마을해설사가 뜻을 모아 시작한 ‘백학DMZ마을여행사’에서는 마을 투어뿐 아니라 DMZ평화안보관광 등 생생한 분단의 역사와 아픔, 연천의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여행 상품을 운영 중이다. DMZ를 마주한 경기도 최북단이자 아직도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지만 그 비극과 아픔을 후대에게 물려줄 마을의 정신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백학마을은 주민들이 앞장서 만든 마을 역사와 문화 콘텐츠로 지난날의 총성을 지워가고 있다. 백학마을로 놀러 오세요 면 단위의 작은 마을이지만 역사적 사건이 집약된 곳으로 볼거리가 많다. 연천 백학 호국영웅 레클리스 거리 한국전쟁으로 떠났던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백학마을이다. 경기도 관광테마골목사업으로 조성된 레클리스 거리는 마을 보호수인 느티나무와 백학광장을 중심으로 골목골목 이어지며 레클리스, 지게부대, 제1땅굴, 마을 제사&떡국꺾기(설날부터 보름까지 이웃들이 돌아가며 떡국을 끓여 함께 먹던 풍습) 세시 풍속 등을 벽화로 그렸다. 주소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두백로32번길 일대 레클리스 카페 시골 동네에 ... DMZ평화안보관광 등 생생한 분단의 역사와 아픔, 연천의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여행 상품을 운영 중이다. DMZ를 마주한 경기도 최북단이자 아직도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지만 그 비극과 아픔을 후대에게 물려줄 마을의 정신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백학마을은 주민들이 앞장서 만든 마을 역사와 문화 콘텐츠로 지난날의 총성을 지워가고 있다. 백학마을로 놀러 오세요 면 단위의 작은 마을이지만 역사적 사건이 집약된 곳으로 볼거리가 많다. 연천 백학 호국영웅 레클리스 거리 한국전쟁으로 떠났던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백학마을이다. 경기도 관광테마골목사업으로 조성된 레클리스 거리는 마을 보호수인 느티나무와 백학광장을 중심으로 골목골목 이어지며 레클리스, 지게부대, 제1땅굴, 마을 제사&떡국꺾기(설날부터 보름까지 이웃들이 돌아가며 떡국을 끓여 함께 먹던 풍습) 세시 풍속 등을 벽화로 그렸다. 주소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두백로32번길 일대 레클리스 카페 시골 동네에 있는 작은 카페라고 해서 무시하면 안 된다. 다문화가족의 소통 공간이자 마을 기업인 레클리스 카페는 남궁금복 대표가 공들여 로스팅한 커피 맛이 일품인 곳이다. 레클리스 사진을 비롯해 방한했던 미국 참전 용사들의 자필 서명과 사진, 연천군 출신 참전 용사들의 애국정신을 기리는 여러 기념물이 인테리어를 대신하며 레클리스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주소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두일로143번길 41 문의 031-835-5007 DMZ백학문화활용소 DMZ문화마을 거점 공간이자 커뮤니티 공간으로 조성했다. 백학마을 주민 삶의 가치와 지역 내외의 문화 예술을 연계하는 다양한 전시 및 프로그램을 기획·교육하고 있다. 올해는 경기문화재단에서 시행하는 에코뮤지엄 사업으로 더 많은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마을을 위한 공간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주소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두백로 29-1 문의 031-839-2155 ... 백학마을로 놀러 오세요 면 단위의 작은 마을이지만 역사적 사건이 집약된 곳으로 볼거리가 많다. 연천 백학 호국영웅 레클리스 거리 한국전쟁으로 떠났던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백학마을이다. 경기도 관광테마골목사업으로 조성된 레클리스 거리는 마을 보호수인 느티나무와 백학광장을 중심으로 골목골목 이어지며 레클리스, 지게부대, 제1땅굴, 마을 제사&떡국꺾기(설날부터 보름까지 이웃들이 돌아가며 떡국을 끓여 함께 먹던 풍습) 세시 풍속 등을 벽화로 그렸다. 주소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두백로32번길 일대 레클리스 카페 시골 동네에 있는 작은 카페라고 해서 무시하면 안 된다. 다문화가족의 소통 공간이자 마을 기업인 레클리스 카페는 남궁금복 대표가 공들여 로스팅한 커피 맛이 일품인 곳이다. 레클리스 사진을 비롯해 방한했던 미국 참전 용사들의 자필 서명과 사진, 연천군 출신 참전 용사들의 애국정신을 기리는 여러 기념물이 인테리어를 대신하며 레클리스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주소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두일로143번길 41 문의 031-835-5007 DMZ백학문화활용소 DMZ문화마을 거점 공간이자 커뮤니티 공간으로 조성했다. 백학마을 주민 삶의 가치와 지역 내외의 문화 예술을 연계하는 다양한 전시 및 프로그램을 기획·교육하고 있다. 올해는 경기문화재단에서 시행하는 에코뮤지엄 사업으로 더 많은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마을을 위한 공간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주소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두백로 29-1 문의 031-839-2155 백학방앗간 백학마을 주민들이 애정하는 방앗간. 부모님의 방앗간을 물려받아 이상경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임진강에서 자생하는 물쑥을 이용한 떡과 차는 쑥 향이 가득하고, 연천 콩으로 만든 두부는 고소하고 달큼하다. 연천산 참깨와 들깨로 짠 참기름, 들기름은 선물용으로 인기 만점. 가래떡과 두부는 전곡농협 하나로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다. 주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