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농사를 시작하면,
  •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어요.
  • 정년이 없는 직업이잖아요. 그래서 좋은 거죠."

(사)한국여성농업인경기도연합회

조남미
  • 평생 서울에서 살다가 늦은 나이에 농사를 시작했다. 직접 포크레인을 배우고 연천의 민간인출입통제선 안쪽을 오가며 농경지를 일궈내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어엿한 여성 농업인으로 성장한 조남미를 만나본다.
구술 내용 요약

서울에서 연천으로, 전업농부의 삶, 기계화형 농사, 한국여성농업인경기도연합회 활동, 민간인통제구역 농사, 농사장려
키워드

연천, 한여농, 여성농업인, 영농후계자, 귀농
연천에서 시작한 전업 농부의 길, 농사에는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 연천에서 시작한 전업 농부의 길, 농사에는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

조남미는 30대 초반까지 서울에서 살아왔다. 말을 늦게 시작하고 과묵한 아이였던 그는 서울에 살면서도 항상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섯 살 때까지 살았던 충청남도 부여군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논둑을 타고 오르는 참게, 수로를 새카맣게 헤엄치는 붕어 떼의 모습을 좋아했다. 일 때문에 서울을 쉬이 떠나지 못했던 그는 원인 미상의 건강 악화를 겪는다. 지금의 연천으로 이사를 오는 계기가 되었다.

“몸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병원에 가도 원인을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한의원을 갔더니 그러더라고요. 모든 맥이 너무 안 좋다. 건강상으로는 지금 많이 힘든 상황이다. 그렇게 모든 걸 다 정리하고 연천으로 왔죠. 엄마가 이쪽에 땅을 사놓은 것도 있었고, 동생과 함께 미리 와계셨거든요. 기찻길로 올 때 너무 좋더라고요. 그렇게 연천에 와서도 1년을 방 안에서 손 하나 까딱 못하고 누워 있었어요. 어머니도 그때는 제가 죽는 줄 알았대요. 어느 날, 거실에 누워 있는데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때 생각했어요. 아, 내가 살겠구나.”

외지인이 들어와 농사를 시작하는 게 쉽지 않았기에 건강을 회복한 후 한동안 의정부에서 학생 상담 일을 하며 지냈다. 가는 곳마다 ‘연천에 살고 있는 조남미’로 자신을 소개했던 그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함께 일하던 지인 중 연천에 농사를 맡겨야 하는 땅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했지만 농사엔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 제곱미터와 평을 헷갈려 모판을 너무 많이 주문하는 일도 있었다. 상담할 때 학생을 품던 마음으로 작물을 대하며 농사를 지어나갔다.

“바닥에다가 모판을 펼치고 부직포랑 비닐을 씌우는데 아침에 열고 물을 주고 덮으면 오후 다섯 시가 되는 거예요. 매일매일 했어요. 그랬는데 모판이 들쑥날쑥 자라더라고요. 동네 주민이 지나가면서 다 엎어라, 이거 다 쓸모없다 그랬어요. 그런데도 저는 그 아이들(벼)한테 그랬어요. 사람들이 너희들 다 버리라고 하는데 난 버릴 수가 없다. 잘 살아 올라온 애들이 있잖아요. 걔네까지 다 엎어야 되니까. 매일 걔네한테 뭔가를 보여주라고 얘기를 했는데 나중에는 정말 잘 자라줬어요. 그러더니 주민들도 어 이거 너무 잘 됐다. 이거 누구한테 팔아도 사 가겠다. 너무 잘 키웠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뭐든지 포기하면 안 된다. 이런 식물도 이렇게 포기하지 않으면 잘 자라주는데 사람은 더디구나. 그런 생각을 더 하게 되더라고요.”

트랙터 로타리 작업
혼자서 작업한 모판
기계를 배우면 여성들도 정말 편하게 일할 수 있어요 기계를 배우면 여성들도 정말 편하게 일할 수 있어요 기계를 배우면 여성들도 정말 편하게 일할 수 있어요

결혼하지 않고 40대에 혼자서 농사를 시작한 조남미는 마을에서도 독특한 관심을 받았다. ‘남편 없이 여자 혼자’ 농사를 짓는다는 것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도 있었다. 조남미는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의 교육을 바탕으로 기계를 다룰 줄 알게 되면서 농사야말로 여성이 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54마력짜리 트랙터를 시작으로, 이후에는 80마력, 110마력으로 올려가며 더 큰 기계를 가지고 효율을 꾀할 수 있었다.

“처음 트랙터를 몰 때는 부끄러워서 창문을 다 선팅했어요, 진하게. 그걸 타고 가면 사람들이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 알더라고요. 조남미가 저 기계를 탄다고. 임대 사업소 농기계는 선팅이 안 되어 있어요. 그걸 몰고 가면 남자분들이 앉아있다가 다 고개가 돌아가요. 처음에는 정말 부끄럽더라고요. 나를 호기심으로 보는 것 같아서. 그런데 시간 지나고 하니까 남자들이 나를 멋있게 보겠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뿌듯하더라고요.”

남성 위주의 농업에서 한국여성농업인(한여농) 연천군연합회의 존재는 큰 힘이 되었다. ‘농업 경영을 이어받을 사람’을 뜻하는 여성 영농후계자, 혹은 남성 영농후계자의 배우자 100여 명이 이곳에 속해있다. 여성 농업인끼리 농사 기술을 전수하기도 하고, 상품 가공과 판매, 유통에 관한 지식까지 공유한다. 올해엔 다음 세대 여성 농업인을 직접 키워보자는 목표로 지역 농과대에 입학하는 여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시도도 해보려고 한다. 조남미는 농사만큼 여성에게 좋은 직업이 없다고 굳게 믿는다.

“주로 남편이 기계를 몰고 여자들은 작은 텃밭에서 호미질하고 괭이질을 한다고만 생각하죠. 하지만 기계를 배우면 여성들이 정말 편하게 일을 할 수가 있어요. 임신하거나 아이를 봐야 할 때는 잠깐 누구보고 도와달라고 하면 돼요. 농촌 사회에서는 그게 가능해요. 아이가 조금 더 크면 트랙터 옆에 태우고 같이 다닐 수도 있죠. 외국 유튜브에서 본 거예요. 그래서 저는 정말 여자한테 아이를 키우면서도 할 수 있는 직업이 농사다. 그리고 농사만큼 정년이 없는 게 없다고 말해요. 그리고 농업은 정말 몸이 건강해지는 것 같아요. 움직임이니까요.”

조남미가 농사짓는 연천군 백학면 두일리
사단법인 한국여성농업인경기도연합회 회원들과
한여농연천군연합회에서 운영하는 농특산물판매장
실패해도 또 해볼 수 있으니까, 저는 75세까지 농사짓는 게 목표거든요 실패해도 또 해볼 수 있으니까, 저는 75세까지 농사짓는 게 목표거든요

경기도 연천은 민간인출입통제구역이 있는 지역이다. 비무장지대(DMZ)의 남방한계선을 경계로 남쪽 5~20㎞를 민간인출입통제구역이라고 부르는데, 이곳 주민들은 군사시설보호법에 따라 일정한 절차를 거치면 농사를 지을 수 있다. 농사를 처음 짓기 시작할 때는 초소를 지나는 게 무섭기도 하고 군사시설에서 훈련으로 인해 총소리가 나면 쭈뼛쭈뼛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민통선의 군사적 긴장감보다도 그것이 지닌 환경적 가치에 더 관심이 있다. 민간인의 발길이 닿지 않아 보존된 자연환경을 앞으로도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천이 땅값이 싸다 보니까 다른 지역의 환경 폐기물 같은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 같더라고요. 이곳엔 임진강과 한탄강이 흐르고 있고 상수원 보호구역인데, 난개발이 되면 오염이 되기가 쉽겠죠. 그래서 연천은 농업 청정특구로 지정해서 여러 가지 오염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군수님을 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야기하고 있어요. 우리 농민들도 친환경 농업에 관심이 많죠. 제초제를 대체하는 우렁이 농법을 많이들 하고, 요즘은 탄소 중립을 실현하는 친환경 기계도 많이 보급되는 추세예요.”

조남미는 10년만 더 일찍 농사를 시작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말한다. 그만큼 농사가 재미있고 체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품어준 연천이라는 도시도 정말 사랑스럽다.

“저를 도와주신 분들을 제가 잊지 않고 항상 기억하거든요. 그분들 덕분에 제가 정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요. 젊은 사람들에게는 지금이 기회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40세 전에 오면 더 좋아요. 젊기 때문에 실패해도 또 도전해볼 수 있거든요. 저는 75세까지 농사짓는 게 목표예요. 그래도 저는 늦게 시작해서 몇 번 못 해보는 거예요. 그런데 만약에 30대에 오면 몇십 번이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정말 30대에 와 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만약에 그 여성분들이 농사를 지으면 더 많은 기회가 있다고 생각해요.”

2014년 연천 숭의전 고려문화제에서
연천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