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료원 의정부병원
공공사업과장 김미경

김미경

경기도의료원 의정부병원 공공사업과장 김미경

김미경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그런 간호사로 기억되고 싶어요

  • 경기도의 6개 병원이 경기도의료원으로 통합되기 전부터 포천도립병원에서
  • 간호사로 커리어를 시작한 여성이 있다. 그는 36년간 경기도 여러 지역의
  • 공공병원에서 돌봄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계속해왔다.
  • “제가 이제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내년, 내후년이면 일을 관둬요.
  • 간호사라는 천직을 만나서 이제까지 달려온 시간을 돌이켜보면 어려움이 되게
  • 많았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제가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정년을 맞이하게 되면)
  • 전문직 여성으로서 사회에 기여하고자 한 노력이 마무리되는 거죠.”
  • 우리 병원이 지역사회에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간호사로서
  • 끊임없이 공부해왔다는 그는, 지금 경기도의료원 의정부병원에서
  • 공공사업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미경 과장이다.
구술내용요약
어린시절, 졸업 후 포천도립병원에서 근무, 간호사 생활, 간호과장으로 승진, 공공사업과장의 업무,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후 병원 생활의 변화, 미래에 대한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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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격려로 간호대학에 가다

김미경은 고향인 포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 의료 서비스가 충분하지 않았던 포천에서, 그의 아버지는 동네 주민들이 자신을 필요로 할 때마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려가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대구 의학전문학교를 다니셨어요. 재학 중에 6.25 전쟁으로 군의관으로 근무하시다가 휴전과 함께 병원이나 약국이 없는 포천에 거주하시게 됐거든요. 동네에 출산이 가까워져 와서 애를 놓을 데가 없으면 아버지가 가서 애도 받아주시고. 또 어디가 아파서, 밤에 누군가가 집 대문을 막 두들겨요. 그러면 아버지가 새벽에도 나가서 그런 것들을 봐주시고, 그런 걸 보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 같아요.”
김미경의 어머니는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든데, 그렇게 가서 아무것도 없이 일만 해주고 오면 어떡하느냐’라고 그의 아버지에게 한탄하기도 했다. 김미경은 그 말을 들은 아버지가 그냥 묵묵히 대문을 나섰다고 회상하며,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아버지의 그런 행동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도 말했다.
“그때는 아버지의 그런 행동이 저한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제가 어떤 일을 하고 결정을 내리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포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미경은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지 못하고 서울여자간호대학교(당시 ‘서울간호전문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자신이 전문대학에 갔기 때문에 아버지가 기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아버지는 딸의 간호대 합격을 진심으로 기뻐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6.25 전쟁 이후 학업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셨기 때문에 제가 간호대학에 합격한 걸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제가 태어나서 아버님이 그렇게 기뻐하시는 모습을 처음 봤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제가 아버지와 같이 남들에게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졸업 후에 간호사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경기도의료원 포천병원 ⓒ경기도의료원
김미경은 포천에서 서울까지 버스를 타고 통학하며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후 서울에서 일자리를 찾으려고 했지만, 포천에서 출퇴근을 해야 하는 그는 서울 근거리 거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취업이 쉽지 않았다.
“취업하려고 노력했지만 쉽게 되지는 않는 그 생활에 지친 거예요. 가난한 집에서 엄마가 아빠가 고생해서 대학 공부를 시켜주신 것도 미안했어요. 그래서 제가 집과 가까운 포천도립병원이라는 곳에 처음 들어가게 된 거죠.”
김미경은 당시 포천도립병원이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낙후된 병원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한 환경에도 실망하지 않고 ‘내가 간호사로서 최선을 다해야겠다’라는 마음가짐으로 근무를 계속한 김미경은 병원을 ‘내 집 같이’ 여기며 일한 공로로 내무부장관 표창까지 받을 정도로 성실한 간호사였다.
“신축으로 이전한 포천병원에서 근무할 때, 그 당시 젊은 객기인지 모르지만 ‘내가 주임으로서 열심히 일해봐야겠다’ 생각했고 진짜 열심히 일했어요. 내 집 같이 일했어요. 그러면서 병원에 간호사 인력도 더 투입되고, 선배 간호사들이 들어오고, 선배의 경험 같은 것들을 제가 배우게 되면서 자신감이 붙었어요.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다는 그런 생각도 들고 (그러다 보니) 이직을 생각하게 되거든요. 사실 마음이 좀 흔들렸어요.”

서른 셋, 포천도립병원의 젊은 간호과장이 되다

경기도의료원 포천병원 ⓒ경기도의료원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김미경은 이직을 고려하기도 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근무했던 병원을 떠나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어딜 가나 구석구석 땀과 노력이 배어 있는 포천도립병원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했다. 이직을 포기하고 포천에서 간호사 일을 계속한 그는 일반 간호사, 수간호사, 간호감독을 거쳐 33살의 나이에 포천병원의 간호과장이 되었다.
“빠른 승진이었죠. 다른 실 과장님들이 50대 후반이었으니까. 빠른 승진이 저한테 굉장한 부담이 되었어요. 그때에는 30대 여자 과장을 대외적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런 시대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나이로 인정 받으려 하지 않았어요. 내가 하는 일을 그냥 충실히, 그다음 환자와 병원을 위해서 합리적인 대안을 찾는 역할을 하려고 노력을 했지. 병원 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진짜 많이 했어요. 제가 저를 만들기 위해서 공부를 하기 시작한 거죠.”
젊은 간호과장으로서 김미경이 느끼는 책임감은 작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간호과의 리더로 생각하는 동시에, 자신이 뒤쳐지면 간호과 전체가 뒤쳐진다는 믿음으로 업무와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동료들과 함께 최선을 다해 좋은 병원을 만들겠다는 그의 의지는, 경기도의 6개 병원이 통합된 후 간호관리팀장으로 발령 받아 수원병원에 가게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경기도의료원 의정부병원 공공사업과

공공병원에서 일해온 36년, 그리고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

경기도의료원 의정부병원
김미경은 경기도의료원 산하 6개 병원에서 4개 병원의 간호과장을 맡았던 베테랑이다. 1986년부터 2005년까지 19년간 포천에서 근무하던 그는 경기도 지역 6개 병원이 통합되며 경기도의료원이 설립될 때, 경기도의료원 산하 6개 병원을 통합 관리하는 간호관리팀장으로 발령 받았다. 포천, 수원, 파주, 의정부까지 경기도의료원의 4개 병원을 거치며 일해온 김미경은 지역마다 조직문화가 달랐음에도 어디에서든 더 나은 간호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고, 지금은 의정부병원에서 공공사업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공공사업과는 공공보건의료사업이나 취약계층진료비지원사업, 아니면 무료이동지원사업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가진 문제를 해결해주고 신체적인 돌봄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돌봄 서비스도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공공의료와 공공 간호 서비스가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그런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기획부터 집행, 평가까지 맡아 진행한 사업 중 하나는 포천의료원을 중심으로 시행한 가정전문간호사 시범사업이다. 가정간호사업은 가정전문간호사가 만성질환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대상자의 거주지에 방문하여 의사의 처방과 간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으로, 김미경은 그 서비스를 제공 받은 보호자의 감사 인사를 받은 적이 있다고 뿌듯함을 털어놓았다.
공공병원에서 근무한 그에게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병은 어떤 기억으로 남을 것 같은지 묻자, 김미경은 공공병원이 더욱 내실이 있는 병원이 되도록 노력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답했다.
“(전염병의 확산을 겪으면서) 시민들이나 지역주민들이 공공병원을 바라보는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우리가 전염병의 최전선이었잖아요.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하지 않은 일들을 저희가 한 거잖아요. 사실 나이 어린 친구들이 공공병원에 근무하는데, 아무리 비싼 돈을 준다고 해도 환자들 입원한 곳에 방역을 하러 오지 않으니까 그 친구들이 방역을 하는 거예요. 방역복을 입고 화장실 청소부터 병실 청소까지. 저도 같은 일을 하지만 그게 가장 가슴이 아팠어요. 그런 감염병의 최전선에 우리가 있었고, 상대적이긴 하지만 공공병원의 필요성과 존재감 있는 역할을 저희가 충분히 수행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지역주민들이 거는 기대만큼이나 우리가 더욱 내실이 있는 병원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동시에 생겼다고 생각했어요.”
“(가정간호사업 서비스를 받은 보호자가) 저희한테 가끔 전화하세요. 정말 너무 좋았다, 선생님 때문에 내가 너무 감사하다고. 대상자의 전화도 물론 고맙지만, 가족이 고마워하는 전화를 받을 때 저도 위로를 받는 거죠. ‘아, 내가 정말 잘한 거구나’ 생각이 들었고. 이런 공공사업은 체계 내에서 기획부터 평가까지 일련의 과정들을 볼 수 있는 모범적인 사례였죠. 그래서 굉장히 힘들었지만 뿌듯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경기도민을 위한 무료 이동진료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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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간호사로 남고 싶어요

대학 졸업 후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온 김미경은 전문직 여성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결혼한 뒤에도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의 균형을 맞춰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그는 스스로 인생의 주연이자 전문가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했다고 덧붙였다.
“제가 간호사 생활하고 병원 일을 할 때, 그 당시 사회는 직장 여성이 결혼하면 사직을 하는 분위기였어요. 분만휴가는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저희 간호사가 3교대를 하고 있잖아요. 3교대 근무 생활을 하면서 결혼하고 분만휴가를 간다, 그건 감히 상상을 못하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공공병원에 근무하면서 결혼도 하고, 분만휴가도 가고 그렇게 된 거죠.”
경기도의료원 의정부병원 공공사업과
여성의 비율이 높은 간호계에서 오랜 시간 일해온 김미경은 이제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역할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건 남자인 네가 해야 하고 이건 여자인 네가 해야 해’라고 말하는 일은 차별이라는 것이다. 그는 ‘간호사는 여성의 일’이라는 고정관념은 성별에 따라 사회적으로 직종을 분리하는 일이며, 그로부터 탈피해야 간호 업무 환경이 향상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다 아는 나이팅게일이 있잖아요. 크림 전쟁 때 나이팅게일. 그런 활동을 보고 ‘아, 간호사는 여성이 해야 해’ 이런 생각들이 간호직에 대한 여성 비율을 높이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고. 하지만 그런 성 고정관념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남성 간호사들도 장기간 근무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고, 간호 업무 향상에 기여할 수 있도록 선배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그렇게 한 단계 발전하고 성장하는 발판이 되어서, 간호사라는 직종이 사회적 기여도가 높은 직종으로 인정 받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김미경은 앞으로 지역사회의 의료정책이 중복과 누락 없이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이제까지 함께 일해온 모든 이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고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경기도의료원 의정부병원 공공사업과 구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