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순수한 이상과 혼이 담긴 장욱진 가옥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장욱진 가옥은
우리나라 서양화가 1세대로 근현대 화단에
큰 발자취를 남긴 장욱진 화백이
1986년부터 작고할 때까지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한 곳이다.

글. 이정은 사진. 경기도청,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장욱진(1917~1990) 가옥은 마치 ‘그림 속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다. 한옥과 양옥으로 이루어졌는데, 한옥은 1884년에 지었지만 양옥은 장욱진 화백이 1953년에 그린 ‘자동차가 있는 풍경’ 속 집을 보고 1989년에 똑같이 지었기 때문이다. 집을 보고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림 속 집을 실제 공간에 옮겨놓은 것이다. 장욱진 화백은 우리나라 서양화가 1세대로, 이중섭〮 박수근 등과 함께 한국 근현대 화단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가족과 자연을 주제로 작은 화폭에 작품을 담아내며 동양적이면서도 소박한 자신만의 독자적 세계를 구축한 화가다. ‘특수성과 보편성의 양극을 극적으로 관통한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화풍을 만들 수 있었던’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마치 동화 속 그림 같으면서도 표현이 세련되고 조형적 구성이 치밀한 점이 특징이다.

백성을 포용하고 기른다 장욱진 화백은 각박하고 번잡한 도시 생활을 몹시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1960년대 이후에는 서울 근교 시골로 거처를 옮겨 다니며 생활했다. 1963년부터는 남양주 덕소의 한강 변에 화실을 짓고 12년 동안 혼자 살며 창작에 매달렸다. 덕소가 개발되면서 수안보로 갔다가 다시 거처를 옮긴 곳이 용인이다. 용인 집에서 장 화백은 자신이 평생 그린 720여 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20점을 그렸다. 가옥이 위치한 용인시 기흥구 마북로 일대는 장 화백이 처음 이주할 때만 해도 집 앞에 야트막한 산이 자리하고 개울이 흘러 운치 있었다는데, 지금은 아파트와 민가로 둘러싸여 있다. 대문으로 들어서면 동서로 긴 사다리꼴의 사랑채 마당을 만나게 된다. 안채와 사랑채, 광채, 별채로 구성된 ‘ㅁ’자 모양이다. 원래는 초가집이던 것을 개조해 현재는 기와를 얹은 팔작지붕 집 이다. 조선 말기 경기도 민가의 전형으로 꼽힌다. 안채 뒤 후원 북쪽으로는 장 화백이 직접 벽돌로 지은 2층 양옥이 있으며, 현재 전시실로 쓰고 있다. 장욱진 가옥은 국가지정문화재로, 건축학적 가치도 있지만 미술사적 가치도 높다. 그의 작품 속에서 ‘집’은 중요한 소재와 상징으로 나타나며, ‘집’에 대한 장욱진 화백의 이상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욱진 가옥은 순수하고 해맑다. 장 화백의 그림처럼.

주소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로 1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