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의 매력에 감성을 더한 ‘김밥카페곰사냥을떠나자’
김포 고촌의 한 주택가에 예쁜 가게가 있다.
작지만 감성 충만한 이곳은 언뜻 보면 카페 같지만,
MZ세대와 중년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김밥집이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김밥의 매력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김밥카페곰사냥을떠나자’를 찾았다.
글. 박찬일 사진. 전재호
김밥집? 카페?
김포골드라인은 무인 자율주행 경전철이다. 그래서 제일 앞자리가 인기다. 마치 기관사가 된 것처럼 전방을 보며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고촌역에서 내리니 취재 장소인 가게가 금방이다. 과거에는 이곳도 전형적인 농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빌딩과 아파트가 들어서 김포의 변화를 제대로 실감할 수 있다.
“신곡리였죠. 지금은 김포에서 가장 교육열 높고 활력 있는 동네가 됐지요.”
홍용준(58) 대표의 말이다. 그러고 보니 동네는 작은 공원과 솟아오른 아파트, 근린 상가가 넘쳐난다. 낮 시간인데도 동네가 조용하다.
김밥집이라고 해서 찾아갔는데 카페 같기도 하고, 어린이 책이 가지런히 꽂힌 서가도 있어 작은 마을 도서관 느낌도 난다. 밖에서 보면 유럽의 어느 시골 마을을 지나다 눈에 들어온 카페 같달까.
“신곡마을 사람들의 취향을 반영했어요. 카페도 되고 분식집도 되는 거죠. 김밥집은 전통적으로 포근하고 수수하죠. 그 분위기를 기본으로 좀 더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었어요. 아이가 많은 마을이기도 해서 인테리어에 아이들 취향을 반영했고요.”
김밥집은 전형적으로 한국적인 음식업이다. 가벼운 스낵이라고 할 수 있는데, 분식집이나 아담한 밥집은 세계적으로 다 있지만 김밥집이란 ‘장르’는 없다. 김밥집이 현재의 모습으로 정착된 건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의 분식 권장으로 소위 분식집이 생겨나면서 국수와 만두, 떡볶이 등을 팔았다. 김밥은 분식집 메뉴에 포함됐다. 도시 번화가에서 늘어가던 화이트칼라들이 가볍게 즐기는 간식으로 공급되면서 번창한 것으로 보면 될 듯하다. 학교 앞과 매점의 수요도 컸다. 김밥은 빨리 먹을 수 있고 값도 쌌기 때문이다.
“원래 김밥은 엄마가 싸주는 음식이잖아요. 저도 그런 기억을 갖고 있고요. 아마 가장 한국적인 현대의 패스트푸드는 김밥이 아닐까 싶어요. 뜨겁지 않으니 빨리 먹을 수 있고, 식어도 맛이 달라지지 않고, 휴대하기도 쉽고요.”
홍 대표의 설명이다. 그와 얘기하는 동안 주방에선 아내 최은숙(55) 씨가 연신 김밥을 말고 있다. 어쩌다가 남편과 함께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6년을 넘겼다. 요식업 일을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남편은 원래 유명한 출판 마케터이자 기획자였다. 출판업이 기울었고, 인생 후반기에 오래 일할 수 있는 생업을 찾아야 했다. 김밥 싸는 손놀림이 <생활의 달인>에 나와도 될 만큼 엄청 빠르다. 김을 깔고 밥을 퍼서 얹고 손으로 쓱 펴고 여러 가지 속재료를 넣는 게 물 흐르듯 일사천리다. 유연하고 빠르다. 구경하느라 넋이 나갈 정도다.
“다 하게 마련이지요. 먹고살려고 하는 것이라.” 김밥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최 씨가 쑥스럽게 말했다.
좋은 김, 좋은 밥, 직접 만든 재료의 어울림
이 일대는 제법 오래된, 신곡동의 빌라촌이 길 따라 늘어선 주택가다. 그의 가게는 빌라를 개축해 만든 것이다. 오래된 빌라는 점차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주택 양식인데, 이렇게 가게로 바꾸고 보니 또 멋스럽다.
“평범한 이름은 짓고 싶지 않았어요. 이 동네에 아이가 많기도 하고, 또 유니크한 공간이 되길 바랐어요. 커피도 팔고 말이죠. 그래서 가게 이름을 ‘김밥카페곰사냥을떠나자’로 지었어요. 뭔가 소풍 가는 기분이고, 소풍엔 김밥이 있어야 어울리잖아요.”
기획자 출신다운 홍 대표의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가게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서가에 꽂힌 책도 마침 모두 곰을 소재로 한 그림책이다. 홀은 그리 크지 않지만 큰 창을 달아 밖을 내다보며 김밥 한 점, 국수 한 젓가락을 먹기 좋다. 분식집답게 메뉴도 다양하다. 기본부터 묵은지를 넣은 신메뉴까지 온갖 아이디어를 동원해 만든 김밥으로 구색을 갖췄다. 좋은 김, 좋은 밥, 직접 만드는 모든 재료가 어우러져 입안에서 맛있게 씹힌다. 김밥은 어쩌면 ‘어울림’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음식이 아닐까.
“평범한 이름은 짓고 싶지 않았어요.
이 동네에 아이가 많기도 하고, 또 유니크한 공간이 되길 바랐어요.
커피도 팔고 말이죠. 그래서 가게 이름을 ‘김밥카페곰사냥을떠나자’로 지었어요.
뭔가 소풍 가는 기분이고, 소풍엔 김밥이 있어야 어울리잖아요.”
“김과 밥, 나머지 재료가 다 어우러져야 해요. 입에서 서로 섞이죠. 3,000원짜리 김밥인데, 까다로워요.” 잘랐을 때 드러나는 아름다운 단면도 김밥의 멋이다. 섬세하게 지은 밥이 부드럽게 씹히고, 재료 각각의 맛이 밥과 함께 섞이며 겨루는 듯하다가 하모니를 이룬다. 김은 그 재료들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물리적 존재인데, 은은한 향을 남긴다. 이 멋지고도 소박한 음식을 만드는 부부의 마음도 수수하고 아름답다.
“여기 김포 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하고 교육열도 매우 높아요. 공부하는 아이들을 위해 김밥을 사가시는 주부님은 물론 배달 주문도 많죠.”
서부 경기의 핵심인 김포는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지역으로 꼽힌다. 그 동네 구석에 이런 고마운 김밥집이 있다.
“작년부터 장사가 많이 어려워졌어요. 경기가 나빠지니 우리 같은 작은 식당 주인들이 더 힘듭니다. 하루빨리 먹고사는 걱정 없는 세상이 되어야지요.”
김밥 맛이 그저 달기만 한 건 아니었다. 김밥집 주인이 행복한 시대를 우리는 기다린다.
박찬일
누군가는 ‘글 쓰는 셰프’라고 하지만 본인은 ‘주방장’이라는 말을 가장 아낀다.
오래된 식당을 찾아다니며 주인장들의 생생한 증언과 장사 철학을 글로
써서 사회·문화적으로 노포의 가치를 알리는 데 일조했다.
저서로는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이 있고 <수요미식회> 등 주요 방송에 출연했다.
김밥카페곰사냥을떠나자
주소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인향로24번길 6
문의 0507-1856-7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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