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역사"에 대한
전체 "127"개의 결과를 찾았습니다.

이미지

의병의 역사와 마주하는 길 지평향교길vol.177

일상 경기 허영호의 경기옛길 의병의 역사와 마주하는 길 지평향교길2024. 03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자 대규모 항일 의병 운동(을미의병)이 전개된다. 지평향교길은 항일 흔적과 마주하는, 을미의병의 발상지 지평을 걷는 길이다. 글. 이인철 사진. 전재호 평해길 경기도는 구리시, 남양주시, 양평군, (재)경기문화재단과 함께 평해대로의 옛 노선을 연구해 고증하고, 그 원형을 바탕으로 평해길을 조성했습니다. Info 코스 정보 용문역-지평역-지평면사무소-석불역 거리 10km 소요 시간 3시간 30분 난이도 하 경기옛길6 경기옛길6 그루고개가 그릇고개가 된 이유는? 지평향교길의 출발점은 경의중앙선 용문역이다. ‘지평’이란 지명 때문에 자칫 출발 장소를 지평역으로 착각하기 쉽다. 용문역은 인근에 관광지가 많고 용문산 등산로가 있어 여행자와 등산객이 즐겨 찾는 역이다. 용문역을 나서면 가장 먼저 용문천년시장이 반긴다. 양평의 3대 전통시장 중 하나로 오일장이 선다. 시장을 벗어나 용문을 가로지르는 흑천을 따라 걸으면 ‘그루고개’가 나온다. 이정표에 적힌 그루고개 소개 글이 흥미롭다. 그루고개 밑으로 341번 국지도가 건설돼 있는데 이 고갯길 구간 이름은 ‘그루고개길’이 아니라 ‘그릇고갯길’로 표기돼 있다. ‘그루’는 ‘그릇’을 뜻하는 경상도 방언으로, 이를 표준어로 바꾼다는 의미에서 도로 이름을 이렇게 정했을 터. 경기도 동부 지역인 이곳에서 과연 그루를 그릇의 의미로 사용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평해로의 마지막 도착지가 경북 울산이므로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은 있다. 또한 과거 지평현(양평은 양근과 지평이 합병해 생겼다)에는 그릇을 굽던 ‘요골’ 마을이 많았다고 한다. 이곳의 그릇 장수들이 이 고개를 지나다녀 붙은 이름일지도 모른다. 경기옛길6 경기옛길6 경기옛길6 지평의병이 ... 눈에 들어온다. SNS에서 인증샷 명소로 떠오른 역으로 지평향교길의 종점, 석불역이다. 3시간 30분 정도 걸린 지평향교길, 거리는 짧지만 지평이 품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새길 수 있는 길이었다. Tip 시작점 찾아가기 지하철 경의중앙선 용문역 허영호 산악인이자 탐험가.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작으로 3극점과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오른 인류 최초의 산악인이다. 드림앤어드벤처 대표로 등반, 트레킹 등 다양한 영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모험과 도전을 즐기는 그는 경비행기 세계 일주도 준비 중이다. 경기옛길7 tip사진 촬영 명소 석불역 MZ세대 사이에서 감성 사진 촬영 명소로 꼽힌다. 빨간 지붕이 인상적인 작은 간이역으로 마치 외국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경기도 양평군 지평명 망미리 1319-2 지평향교 조선 시대에 창건한 향교로 비교적 잘 보존돼 있고, 고즈넉한 옛 고택의 느낌을 자아낸다. 평소에 개방하지 않지만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 두 차례 문을 여니 이때 맞춰 방문하면 향교 내부를 구경할 수 있다.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지평로 333 경기옛길8 ...
이미지

아련하고 아릿한 근대를 산책하다vol.177

아련하고 아릿한 근대를 산책하다2024. 03 우리에게 근대란 일제강점기의 폭압과 수탈로 상징되는 돌이키고 싶지 않은 아픔이다. 하지만 아픈 것도, 어두운 것도 역사인 것을. 3월을 맞아 파란만장한 영욕의 역사가 배어있는 근대문화유산을 찾아가본다. 글. 이정은 사진. 전재호, 경기관광공사 짜다 못해 씁쓸한 일제 수탈의 흔적 일제가 소금을 수탈하기 위해 1910년대부터 서해를 중심으로 염전을 개발했는데, 소래염전은 여의도의 2배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소금 생산량도 많았다. 그러나 도시가 개발되면서 1996년까지 소금을 생산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은 시흥시 갯골생태 공원에 남아 있는 소금창고로 과거 흔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소금창고 중 가장 오래되었고, 1910년대 이후 염전의 체제를 파악할 수 있는 역사적 가치를 지녀 경기도 등록문화재 제13호로 선정됐다. 소래염전 소금창고 경기도 시흥시 장곡동, 031-488-6900 로마네스크풍 벽돌조와 한옥의 조화 우리나라에서 성당 건축이 시작된 것은 개화기부터다. 서울 등 대도시에는 고딕 양식의 벽돌 성당이 들어섰고, 지방에서는 한국 전통 목조 건축양식인 한옥 성당이 주를 이뤘다. 안토니오 콩베르 신부가 1922년에 건축한 구포동성당은 이 두 가지를 절충해 건물 전면과 종탑은 로마네스크풍 벽돌조를, 구조와 외관은 목조 건축양식을 택했다. 현재 몇 개 남지 않은 한옥 성당 중 하나로, 경기도 기념물 제82호로 지정되었다. 안성 구포동성당 경기도 안성시 혜산로 33, 031-672-0701 박해에도 굽히지 않았던 믿음 수원은 “무당 짓을 하더라도 천주학쟁이만은 되지 마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극심했던 곳이다. 순교자들의 형이 집행된 토포청(중영)과 심문을 하던 이아(화청관)가 있던 자리에 세운 북수동성당은 수원성지로 거듭났다. 교육을 위해 지은 소화학술강습회(현 소화초등학교, ... 근대란 일제강점기의 폭압과 수탈로 상징되는 돌이키고 싶지 않은 아픔이다. 하지만 아픈 것도, 어두운 것도 역사인 것을. 3월을 맞아 파란만장한 영욕의 역사가 배어있는 근대문화유산을 찾아가본다. 글. 이정은 사진. 전재호, 경기관광공사 짜다 못해 씁쓸한 일제 수탈의 흔적 일제가 소금을 수탈하기 위해 1910년대부터 서해를 중심으로 염전을 개발했는데, 소래염전은 여의도의 2배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소금 생산량도 많았다. 그러나 도시가 개발되면서 1996년까지 소금을 생산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은 시흥시 갯골생태 공원에 남아 있는 소금창고로 과거 흔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소금창고 중 가장 오래되었고, 1910년대 이후 염전의 체제를 파악할 수 있는 역사적 가치를 지녀 경기도 등록문화재 제13호로 선정됐다. 소래염전 소금창고 경기도 시흥시 장곡동, 031-488-6900 로마네스크풍 벽돌조와 한옥의 조화 우리나라에서 성당 건축이 시작된 것은 개화기부터다. 서울 등 대도시에는 고딕 양식의 벽돌 성당이 들어섰고, 지방에서는 한국 전통 목조 건축양식인 한옥 성당이 주를 이뤘다. 안토니오 콩베르 신부가 1922년에 건축한 구포동성당은 이 두 가지를 절충해 건물 전면과 종탑은 로마네스크풍 벽돌조를, 구조와 외관은 목조 건축양식을 택했다. 현재 몇 개 남지 않은 한옥 성당 중 하나로, 경기도 기념물 제82호로 지정되었다. 안성 구포동성당 경기도 안성시 혜산로 33, 031-672-0701 박해에도 굽히지 않았던 믿음 수원은 “무당 짓을 하더라도 천주학쟁이만은 되지 마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극심했던 곳이다. 순교자들의 형이 집행된 토포청(중영)과 심문을 하던 이아(화청관)가 있던 자리에 세운 북수동성당은 수원성지로 거듭났다. 교육을 위해 지은 소화학술강습회(현 소화초등학교, 등록문화재 제697호)는 제4대 주임 신부인 ‘뽈리 ... 서해를 중심으로 염전을 개발했는데, 소래염전은 여의도의 2배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소금 생산량도 많았다. 그러나 도시가 개발되면서 1996년까지 소금을 생산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은 시흥시 갯골생태 공원에 남아 있는 소금창고로 과거 흔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소금창고 중 가장 오래되었고, 1910년대 이후 염전의 체제를 파악할 수 있는 역사적 가치를 지녀 경기도 등록문화재 제13호로 선정됐다. 소래염전 소금창고 경기도 시흥시 장곡동, 031-488-6900 로마네스크풍 벽돌조와 한옥의 조화 우리나라에서 성당 건축이 시작된 것은 개화기부터다. 서울 등 대도시에는 고딕 양식의 벽돌 성당이 들어섰고, 지방에서는 한국 전통 목조 건축양식인 한옥 성당이 주를 이뤘다. 안토니오 콩베르 신부가 1922년에 건축한 구포동성당은 이 두 가지를 절충해 건물 전면과 종탑은 로마네스크풍 벽돌조를, 구조와 외관은 목조 건축양식을 택했다. 현재 몇 개 남지 않은 한옥 성당 중 하나로, 경기도 기념물 제82호로 지정되었다. 안성 구포동성당 경기도 안성시 혜산로 33, 031-672-0701 박해에도 굽히지 않았던 믿음 수원은 “무당 짓을 하더라도 천주학쟁이만은 되지 마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극심했던 곳이다. 순교자들의 형이 집행된 토포청(중영)과 심문을 하던 이아(화청관)가 있던 자리에 세운 북수동성당은 수원성지로 거듭났다. 교육을 위해 지은 소화학술강습회(현 소화초등학교, 등록문화재 제697호)는 제4대 주임 신부인 ‘뽈리 신부’를 기념해 뽈리화랑으로 활용하고 있다. 천주교 수원성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42, 031-246-8844 자주독립을 위한 그날의 함성 1919년 3·1운동 당시 제암리 일대는 사람과 가옥, 가축, 의류, 곡식 등이 타는 냄새와 연기가 약 10km 밖까지 퍼져나갔다고 ... 남아 있는 소금창고로 과거 흔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소금창고 중 가장 오래되었고, 1910년대 이후 염전의 체제를 파악할 수 있는 역사적 가치를 지녀 경기도 등록문화재 제13호로 선정됐다. 소래염전 소금창고 경기도 시흥시 장곡동, 031-488-6900 로마네스크풍 벽돌조와 한옥의 조화 우리나라에서 성당 건축이 시작된 것은 개화기부터다. 서울 등 대도시에는 고딕 양식의 벽돌 성당이 들어섰고, 지방에서는 한국 전통 목조 건축양식인 한옥 성당이 주를 이뤘다. 안토니오 콩베르 신부가 1922년에 건축한 구포동성당은 이 두 가지를 절충해 건물 전면과 종탑은 로마네스크풍 벽돌조를, 구조와 외관은 목조 건축양식을 택했다. 현재 몇 개 남지 않은 한옥 성당 중 하나로, 경기도 기념물 제82호로 지정되었다. 안성 구포동성당 경기도 안성시 혜산로 33, 031-672-0701 박해에도 굽히지 않았던 믿음 수원은 “무당 짓을 하더라도 천주학쟁이만은 되지 마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극심했던 곳이다. 순교자들의 형이 집행된 토포청(중영)과 심문을 하던 이아(화청관)가 있던 자리에 세운 북수동성당은 수원성지로 거듭났다. 교육을 위해 지은 소화학술강습회(현 소화초등학교, 등록문화재 제697호)는 제4대 주임 신부인 ‘뽈리 신부’를 기념해 뽈리화랑으로 활용하고 있다. 천주교 수원성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42, 031-246-8844 자주독립을 위한 그날의 함성 1919년 3·1운동 당시 제암리 일대는 사람과 가옥, 가축, 의류, 곡식 등이 타는 냄새와 연기가 약 10km 밖까지 퍼져나갔다고 전한다. 4월 5일에 일어난 만세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했던 제암리교회에 대한 일제의 극악한 보복 때문이었다. 교회에 불을 지르고 무차별 총격을 가해 스물세 명이 목숨을 잃었고 가옥 30여 채가 ... 스물세 명이 목숨을 잃었고 가옥 30여 채가 불탔다. 제암리 3·1운동 순국유적지에는 순국기념탑, 순국기념관, 3·1정신교육관, 23인의 순국묘지 등이 있으며, 경기지역 최대규모 독립운동기념관·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제암리 3·1운동 순국유적지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길 50, 031-366-1663 기차 대신 자전거 타고 달리는 철교 1939년에 개통한 경춘선에 놓인 철교로, 원래 이름은 양수철교다. 난간부를 철제로 마감한, 당시로는 획기적 디자인이었다. 이후 2008년 운길산역과 양수역을 잇는 새로운 철교가 놓이면서 양수철교라는 이름을 내주고 북한강철교라 불리고 있다. 지금은 녹슨 레일을 걷어내고 나무판을 깔아 열차 대신 사람과 자전거가 지나다닌다. 북한강철교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북한강로 366-20 장작불로 도자의 혼을 담다 도자는 경기도 장인 정신의 상징이다. 경기도 곳곳에는 지금도 전통 가마가 타오르며 도예가의 가슴을 달구고 있다. 등록문화재 제657호로 지정된 이천 수광리 오름가마는 1949년에 일본 아리타·미노 지역의 가마 양식을 도입해 만든 근대식 전통 가마로, 12칸의 가마가 언덕을 따라 오르는 모양새라 얼핏 토성 같기도 하다. 이천 수광리 오름가마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경충대로 3234, 031-632-4864 ...
이미지

부대찌개의 전설 의정부 경원식당vol.176

있고 지나친 게 없다. 이게 좋은 부대찌개라고 생각한다. 한국 현대사의 아픔에서 당당히 대중적 미식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부대찌개. 아이러니한 음식에서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존재로 바뀌었다. 한국이 재미있는 건, 이런 음식 때문이기도 하다. 전세피해지원센터2 고복수평양냉면6 박찬일 누군가는 ‘글 쓰는 셰프’라고 하지만 본인은 ‘주방장’이라는 말을 가장 아낀다. 오래된 식당을 찾아다니며 주인장들의 생생한 증언과 장사 철학을 글로 쓰며 사회·문화적으로 노포의 가치를 알리는 데 일조했다. 저서로는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등이 있고 <수요 미식회> 등 주요 방송에 출연했다. 경원식당 경기도 의정부시 둔야로49번길 21 문의 0507-1420-5464 ...
이미지

조선왕조의 실록을 옮기던 길 봉화길 덕풍천길vol.176

전 구간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적혀 있다. 봉화길은 조선 시대 김정호가 편찬한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 구획한, 한양과 지방을 연결한 10대로 중 봉화로(奉化路)를 역사적 고증을 거쳐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조성한 길이다. 당시 봉화로는 한양에서 광주, 이천, 충주를 지나 태백산사고(太白山史庫)가 있던 경상북도 봉화 지방을 연결했다. 안내판 바로 옆에 있는 한옥 모양 스탬프함이 봉화길의 의미를 더한다. 바로 경북 봉화에 있던 조선왕조 태백산 사고(史庫)의 모형이다. 사고는 역사 기록을 보관하는 곳으로, 선조는 임진왜란 이후 춘추관, 태백산, 묘향산, 강화 마니산, 오대산 다섯 곳에 사고를 짓고 <조선왕조실록>과 왕실 족보인 ‘선원보(璿源譜)’를 보관했다. 조선왕조의 역사가 옮겨지는 출발점에서 파란만장했던 조선의 역사를 상기하며 남한산성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사계절 새들을 품은 당정뜰의 넉넉한 품 은방울공원을 지나 5분 정도 직진하면 산곡천 변으로 들어선다. 천변을 따라 10여 분 걸으면 팔당대교 아래 한강 변으로 이어지고 하남의 앞마당 당정뜰이 나온다. 당정뜰은 한강 중류의 배후습지로 사계절 내내 새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하는 곳이다. 겨울에는 고니와 오리가 터줏대감이 되고 참수리, 흰꼬리수리가 수시로 날아온다. 주변에서는 새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진가도 자주 볼 수 있다. 당정뜰을 지나면 한강을 벗어나 덕풍천길로 이어지고 고골사거리에서 광주향교를 만난다. ‘고골’은 고읍(古邑)에서 유래한 말로, 광주목 읍치(邑治, 고을을 다스리는 곳)를 남한산성으로 옮기기 전 이곳에 읍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광주향교는 교육 공간은 물론, 학생들의 기숙사를 갖춘 큰 규모의 향교다.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의 역사를 읽어보니 태조 5년 이곳 에 향교를 짓고 식재했다고 한다. 경기옛길6 경기옛길6 경기옛길6 경기옛길6 병자호란의 아픈 역사를 되새기다 광주향교를 지나면 상사창동이 나온다. 조선 시대 이곳에 세미(稅米)를 ... 연결했다. 안내판 바로 옆에 있는 한옥 모양 스탬프함이 봉화길의 의미를 더한다. 바로 경북 봉화에 있던 조선왕조 태백산 사고(史庫)의 모형이다. 사고는 역사 기록을 보관하는 곳으로, 선조는 임진왜란 이후 춘추관, 태백산, 묘향산, 강화 마니산, 오대산 다섯 곳에 사고를 짓고 <조선왕조실록>과 왕실 족보인 ‘선원보(璿源譜)’를 보관했다. 조선왕조의 역사가 옮겨지는 출발점에서 파란만장했던 조선의 역사를 상기하며 남한산성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사계절 새들을 품은 당정뜰의 넉넉한 품 은방울공원을 지나 5분 정도 직진하면 산곡천 변으로 들어선다. 천변을 따라 10여 분 걸으면 팔당대교 아래 한강 변으로 이어지고 하남의 앞마당 당정뜰이 나온다. 당정뜰은 한강 중류의 배후습지로 사계절 내내 새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하는 곳이다. 겨울에는 고니와 오리가 터줏대감이 되고 참수리, 흰꼬리수리가 수시로 날아온다. 주변에서는 새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진가도 자주 볼 수 있다. 당정뜰을 지나면 한강을 벗어나 덕풍천길로 이어지고 고골사거리에서 광주향교를 만난다. ‘고골’은 고읍(古邑)에서 유래한 말로, 광주목 읍치(邑治, 고을을 다스리는 곳)를 남한산성으로 옮기기 전 이곳에 읍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광주향교는 교육 공간은 물론, 학생들의 기숙사를 갖춘 큰 규모의 향교다.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의 역사를 읽어보니 태조 5년 이곳 에 향교를 짓고 식재했다고 한다. 경기옛길6 경기옛길6 경기옛길6 경기옛길6 병자호란의 아픈 역사를 되새기다 광주향교를 지나면 상사창동이 나온다. 조선 시대 이곳에 세미(稅米)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어 붙은 지명이다. 이곳부터 남한산성 북문(전승문) 구간은 병자호란 현장이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10만 대군이 진을 치고 인조의 항복을 강요한 곳이다. 고요하고 한적한 산길이지만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지고, 곳곳에 눈이 쌓여 있으니 주의해서 걸어야 한다. 오르막이 끝날 때쯤 남한산성 ... 곳으로, 선조는 임진왜란 이후 춘추관, 태백산, 묘향산, 강화 마니산, 오대산 다섯 곳에 사고를 짓고 <조선왕조실록>과 왕실 족보인 ‘선원보(璿源譜)’를 보관했다. 조선왕조의 역사가 옮겨지는 출발점에서 파란만장했던 조선의 역사를 상기하며 남한산성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사계절 새들을 품은 당정뜰의 넉넉한 품 은방울공원을 지나 5분 정도 직진하면 산곡천 변으로 들어선다. 천변을 따라 10여 분 걸으면 팔당대교 아래 한강 변으로 이어지고 하남의 앞마당 당정뜰이 나온다. 당정뜰은 한강 중류의 배후습지로 사계절 내내 새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하는 곳이다. 겨울에는 고니와 오리가 터줏대감이 되고 참수리, 흰꼬리수리가 수시로 날아온다. 주변에서는 새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진가도 자주 볼 수 있다. 당정뜰을 지나면 한강을 벗어나 덕풍천길로 이어지고 고골사거리에서 광주향교를 만난다. ‘고골’은 고읍(古邑)에서 유래한 말로, 광주목 읍치(邑治, 고을을 다스리는 곳)를 남한산성으로 옮기기 전 이곳에 읍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광주향교는 교육 공간은 물론, 학생들의 기숙사를 갖춘 큰 규모의 향교다.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의 역사를 읽어보니 태조 5년 이곳 에 향교를 짓고 식재했다고 한다. 경기옛길6 경기옛길6 경기옛길6 경기옛길6 병자호란의 아픈 역사를 되새기다 광주향교를 지나면 상사창동이 나온다. 조선 시대 이곳에 세미(稅米)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어 붙은 지명이다. 이곳부터 남한산성 북문(전승문) 구간은 병자호란 현장이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10만 대군이 진을 치고 인조의 항복을 강요한 곳이다. 고요하고 한적한 산길이지만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지고, 곳곳에 눈이 쌓여 있으니 주의해서 걸어야 한다. 오르막이 끝날 때쯤 남한산성 북문이 그 위용을 뽐낸다. 동서남북에 문이 4개 있는데, 북문은 병자호란 당시 성문을 열고 나가 기습 공격을 감행했던 문이다. 이를 ‘법화골 전투’라고 하는데, 병자호란 ... 태백산, 묘향산, 강화 마니산, 오대산 다섯 곳에 사고를 짓고 <조선왕조실록>과 왕실 족보인 ‘선원보(璿源譜)’를 보관했다. 조선왕조의 역사가 옮겨지는 출발점에서 파란만장했던 조선의 역사를 상기하며 남한산성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사계절 새들을 품은 당정뜰의 넉넉한 품 은방울공원을 지나 5분 정도 직진하면 산곡천 변으로 들어선다. 천변을 따라 10여 분 걸으면 팔당대교 아래 한강 변으로 이어지고 하남의 앞마당 당정뜰이 나온다. 당정뜰은 한강 중류의 배후습지로 사계절 내내 새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하는 곳이다. 겨울에는 고니와 오리가 터줏대감이 되고 참수리, 흰꼬리수리가 수시로 날아온다. 주변에서는 새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진가도 자주 볼 수 있다. 당정뜰을 지나면 한강을 벗어나 덕풍천길로 이어지고 고골사거리에서 광주향교를 만난다. ‘고골’은 고읍(古邑)에서 유래한 말로, 광주목 읍치(邑治, 고을을 다스리는 곳)를 남한산성으로 옮기기 전 이곳에 읍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광주향교는 교육 공간은 물론, 학생들의 기숙사를 갖춘 큰 규모의 향교다.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의 역사를 읽어보니 태조 5년 이곳 에 향교를 짓고 식재했다고 한다. 경기옛길6 경기옛길6 경기옛길6 경기옛길6 병자호란의 아픈 역사를 되새기다 광주향교를 지나면 상사창동이 나온다. 조선 시대 이곳에 세미(稅米)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어 붙은 지명이다. 이곳부터 남한산성 북문(전승문) 구간은 병자호란 현장이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10만 대군이 진을 치고 인조의 항복을 강요한 곳이다. 고요하고 한적한 산길이지만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지고, 곳곳에 눈이 쌓여 있으니 주의해서 걸어야 한다. 오르막이 끝날 때쯤 남한산성 북문이 그 위용을 뽐낸다. 동서남북에 문이 4개 있는데, 북문은 병자호란 당시 성문을 열고 나가 기습 공격을 감행했던 문이다. 이를 ‘법화골 전투’라고 하는데, 병자호란 당시 최대 규모이자 그야말로 참패한 ... 전 이곳에 읍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광주향교는 교육 공간은 물론, 학생들의 기숙사를 갖춘 큰 규모의 향교다.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의 역사를 읽어보니 태조 5년 이곳 에 향교를 짓고 식재했다고 한다. 경기옛길6 경기옛길6 경기옛길6 경기옛길6 병자호란의 아픈 역사를 되새기다 광주향교를 지나면 상사창동이 나온다. 조선 시대 이곳에 세미(稅米)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어 붙은 지명이다. 이곳부터 남한산성 북문(전승문) 구간은 병자호란 현장이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10만 대군이 진을 치고 인조의 항복을 강요한 곳이다. 고요하고 한적한 산길이지만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지고, 곳곳에 눈이 쌓여 있으니 주의해서 걸어야 한다. 오르막이 끝날 때쯤 남한산성 북문이 그 위용을 뽐낸다. 동서남북에 문이 4개 있는데, 북문은 병자호란 당시 성문을 열고 나가 기습 공격을 감행했던 문이다. 이를 ‘법화골 전투’라고 하는데, 병자호란 당시 최대 규모이자 그야말로 참패한 전투였다. 정조 3년 성곽을 개보수하면서 성문을 개축하고 북문을 싸움에 패하지 않고 모두 승리한다는 뜻에서 ‘전승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때의 치욕적인 패전을 잊지 말자는 의미일 것이다. 성문을 지나면 남한산성 역사 테마길과 연결된다. 2코스 국왕의 길을 따라가면 덕풍천길의 종점 남한산성 로터리가 나온다. 뒤돌아 남한산성을 바라보며 돌아온 길을 상기해본다. 아마도 이 길을 따라 병자호란의 기록을 담은 <조선왕조실록>도 태백산 사고로 옮겨졌을 것이다. Tip 시작점 찾아가기 지하철 5호선 하남검단산역 2번 출구 허영호 산악인이자 탐험가.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작으로 3극점과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오른 인류 최초의 산악인이다. 드림앤어드벤처 대표로 등반, 트레킹 등 다양한 영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모험과 도전을 즐기는 그는 경비행기 세계 일주도 준비 중이다. 경기옛길7 tip사진 촬영 ...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의 역사를 읽어보니 태조 5년 이곳 에 향교를 짓고 식재했다고 한다. 경기옛길6 경기옛길6 경기옛길6 경기옛길6 병자호란의 아픈 역사를 되새기다 광주향교를 지나면 상사창동이 나온다. 조선 시대 이곳에 세미(稅米)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어 붙은 지명이다. 이곳부터 남한산성 북문(전승문) 구간은 병자호란 현장이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10만 대군이 진을 치고 인조의 항복을 강요한 곳이다. 고요하고 한적한 산길이지만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지고, 곳곳에 눈이 쌓여 있으니 주의해서 걸어야 한다. 오르막이 끝날 때쯤 남한산성 북문이 그 위용을 뽐낸다. 동서남북에 문이 4개 있는데, 북문은 병자호란 당시 성문을 열고 나가 기습 공격을 감행했던 문이다. 이를 ‘법화골 전투’라고 하는데, 병자호란 당시 최대 규모이자 그야말로 참패한 전투였다. 정조 3년 성곽을 개보수하면서 성문을 개축하고 북문을 싸움에 패하지 않고 모두 승리한다는 뜻에서 ‘전승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때의 치욕적인 패전을 잊지 말자는 의미일 것이다. 성문을 지나면 남한산성 역사 테마길과 연결된다. 2코스 국왕의 길을 따라가면 덕풍천길의 종점 남한산성 로터리가 나온다. 뒤돌아 남한산성을 바라보며 돌아온 길을 상기해본다. 아마도 이 길을 따라 병자호란의 기록을 담은 <조선왕조실록>도 태백산 사고로 옮겨졌을 것이다. Tip 시작점 찾아가기 지하철 5호선 하남검단산역 2번 출구 허영호 산악인이자 탐험가.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작으로 3극점과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오른 인류 최초의 산악인이다. 드림앤어드벤처 대표로 등반, 트레킹 등 다양한 영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모험과 도전을 즐기는 그는 경비행기 세계 일주도 준비 중이다. 경기옛길7 tip사진 촬영 명소 당정뜰 무성한 갈대 사이로 철새들이 한가로이 노니는 풍경이 평화롭다. 날아오르는 새들의 날갯짓을 카메라에 담기 좋고, ... 북문을 싸움에 패하지 않고 모두 승리한다는 뜻에서 ‘전승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때의 치욕적인 패전을 잊지 말자는 의미일 것이다. 성문을 지나면 남한산성 역사 테마길과 연결된다. 2코스 국왕의 길을 따라가면 덕풍천길의 종점 남한산성 로터리가 나온다. 뒤돌아 남한산성을 바라보며 돌아온 길을 상기해본다. 아마도 이 길을 따라 병자호란의 기록을 담은 <조선왕조실록>도 태백산 사고로 옮겨졌을 것이다. Tip 시작점 찾아가기 지하철 5호선 하남검단산역 2번 출구 허영호 산악인이자 탐험가.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작으로 3극점과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오른 인류 최초의 산악인이다. 드림앤어드벤처 대표로 등반, 트레킹 등 다양한 영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모험과 도전을 즐기는 그는 경비행기 세계 일주도 준비 중이다. 경기옛길7 tip사진 촬영 명소 당정뜰 무성한 갈대 사이로 철새들이 한가로이 노니는 풍경이 평화롭다. 날아오르는 새들의 날갯짓을 카메라에 담기 좋고, 한강 너머로 팔당대교와 남양주 예봉산을 볼 수 있다. 경기옛길8 광주향교 경기 지역에서 평지에 세운 유일한 향교. 동재와 서재, 동무와 서무를 모두 갖춘 큰 규모의 향교다. 한옥의 아름다움과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문화해설사의 해설도 들을 수 있다. ...
이미지

3대를 잇는 화상 중국집 문산 은하장vol.175

글. 박찬일 사진. 전재호 Since 1963 지도 앱을 보고 가는데도 자꾸 헤맸다. 목적지는 입구가 잘 보이지 않는 2층에 있었다. 역사 60년의 노포 중국집이 빌딩 2층에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내 탓이다. 1층 입구엔 낡은 나무로 만든 간판이 세로로 붙어 있다. 은하장. 중국집 이름치곤 예쁘장하고 꿈같은 느낌이다. 반면 주인은 넉넉한 풍채랄까, 하지만 아직 젊어 보이는 얼굴. “제가 중국집 은하장 3대 주인입니다.” 우술인 쓰부(중국 요리장을 뜻하는 호칭)다. 그는 화교(華僑) 출신 할아버지 우수금 씨가 시작한 은하장(개업 당시는 은하루)을 잇는 젊은 주인장이자 주방장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인근 파주 선유리에서 시작했다. 시장이 있고, 사람들이 흥성하던 때였다. “저는 거의 기억이 없어요. 1963년도쯤 개업해서 이 자리로 옮긴 게 1983년이니까 제가 아주 어릴 때예요.” 지금 자리는 낮은 빌딩이지만 건축 당시는 위용이 있었다. 2층 넓은 공간을 임대하고 은하루를 은하장으로 바꿨다. 부친 우경업(72) 씨가 웍을 잡았다. 파주 문산은 이북과 가까워 화교가 많이 살았다. 원래 산둥 출신인 우술인의 증조할아버지 집안도 자연스레 장사를 하며 이 지역에 둥지를 틀었다. “본래 고향은 산둥 무핑이라 합니다. 저는 못 가봤어요.” 은하장은 면과 볶음밥 등 요리를 잘하는 지역 명소였다. 할아버지의 솜씨가 좋았고, 대를 이은 아버지도 서울 조선호텔 중식당 요리사를 거치는 등 고급 요리를 전수한 일급 셰프였다.중국요리는 화교들이 대를 이었지만, 1970년대생 이후부터는 다른 직업군으로 바뀌었다. 힘든 주방 일을 물려주지 않으려 해서 공부를 많이 시키는 게 당시 화교 사회 분위기였다. 우술인 주방장도 명동부터 연희동까지 쭉 화교 학교를 다녔다. “대학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하고 광고, 뮤직비디오 등을 제작하는 프로듀서 일을 오래 했어요.” ...
이미지

의회인사이드 경기도의회 여성가족평생교육위원회vol.175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평생교육 기반 구축 및 평생교육 진흥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 취약 청소년 발굴·지원 등 청소년 안전망 강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도서관 활성화 사업 추진, 여성 폭력 예방 및 피해자 지원 체계 강화, 1인가구·한부모가정 등 다양한 가족을 위한 지원 서비스 등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아울러 수요에 맞는 안심 보육 환경 조성, 아동의 안전과 권리 보장, 고용 평등을 위한 가족 친화 사회 환경 조성 등 영유아 보육부터 청소년, 여성 그리고 평생교육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에 걸친 정책을 맡고 있다. 특히 이와 관련된 조례안 입안 및 심사, 집행부에 대한 예산 및 결산안 심사, 행정사무감사 등을 실시함으로써 입법기관으로서 역할 및 견제와 감시 기능을 충실히 수행 중이다. 위원회 소관 실국은 평생교육국·여성가족국·여성비전센터, 그리고 산하 공공기관으로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경기도청소년수련원·경기도여성가족재단이 있으며 소관 기관에 대한 관리ㆍ감독을 통해 소통과 협치를 구현하고 있다 의회뉴스1 경기도 맞벌이 부부 지원 강화를 위한 정책 연구 용역 추진 위원회는 일·생활 균형 지원 정책 추진을 위해 경기도 맞벌이 부부 지원을 강화하는 정책 연구 용역을 추진했다. 이를 통해 맞벌이 부부 지원 정책에 대한 국내외 사례를 정리·분석하고, 전문가 자문을 바탕으로 경기도 맞벌이 부부 지원 정책을 설계, 실행 조직 신설 검토, 예산 확보, 입법 활동 등을 추진하기 위한 것으로 최근 출생률 저조와 경력 보유 여성문제 등에 따른 대응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위원회는 정책 연구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집행부와 지속적으로 협력하고 소통해 경기도 맞벌이 부부를 위한 정책이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다. 의회뉴스3 스토킹 ...
이미지

과학자로 키우고 싶으면 과학책을 주지 마세요 이정모 펭귄각종과학관 관장vol.175

별명을 갖고 있다. 또 과학 커뮤니케이터로도 유명하다. 그가 사람들에게 과학을 알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그는 과학을 인문·철학·역사 등 다양한 분야와 접목해 이해를 돕는다. 모두 책, 서점, 도서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릴 때는 가난해서 책 한 권 가져본 적이 없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이모가 사준 <꽃들에게 사랑을>이 제 첫 책이었어요. 얼마나 좋았던지. 책을 읽고 싶어도 환경 때문에 폭넓게 읽지 못한 것이 화가 나기도 해요. 정말 대학 들어가기 전까지 6년 동안 죽어라 책을 읽었는데, 도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는 대학에 와서 알았어요. 청소년기에 좀 더 다양한 책을 읽었다면 제 세상이 어땠을까 생각하면 아쉬움이 커요. 그래서 독서에는 지도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래서일까. 가끔 자녀에게 과학책이나 인문책을 읽으라고 하는 부모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 관장은 세계 최고 교육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빌려 초등학교 1·2학년 때는 과학이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아이가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3학년 때부터 과학을 공부한다 해도 단순 지식일 뿐 과학 원리는 중학교에 진학한 후 배우게 된다. 발달 과정에 맞춘 교과과정인데, 부모들이 자꾸 어릴 때부터 과학책을 권해 오히려 아이들이 과학과 멀어지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어릴 때 과학책을 읽으면 지식은 조금 얻겠지만,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으로 나뉘게 합니다. 또 인문학이나 과학책은 굉장히 논리적 구조입니다. 너무 논리적이라 독서력이 늘지 않죠. 정보만 흡수할 뿐 상상이나 흥미를 느끼게 하는 독서력은 키우기 힘들어요.” 이 관장은 어릴수록 문학책을 많이 읽게 하라고 권했다. 문학책을 읽다 보면 다음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상상하게 되고, 스스로 이야기 구조도 만들어보기 마련이다. 또 단단하게 성장하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