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궁 및 문화재 안내

상세지도

남한산성행궁 (Temporary Palace of Namhansanseong, Namhanhaenggung)국가사적 제 480호

임금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 곳을 행궁이라 한다. 남한산성 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한양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하여 조선 인조 4년(1626)에 건립되었다. 실제로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47일간 항전하였다. 이후에도 숙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등이 여주, 이천 등의 능행길에 머물러 이용하였다. 남한산성 행궁은 1909년까지 잘 남아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훼손되었다. 1999년부터 발굴 조사를 시작하여 2002년에 상궐에 해당하는 내행전을 준공하고 2004년 행궁 좌전을 준공하였다.

내행전 (Upper Palace, Naehangjeon)

상궐 내행전은 왕이 잠을 자고 생활하던 공간으로 인조 2년에 처음 지어졌으며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전체 28칸의 건물이다. 가운데 3칸은 대청을 되어있고, 좌우 2칸씩은 온돌방과 마루방이다. 대청을 제외한 3면에는 퇴칸을 두었고 내행전의 기동 위쪽 공포는 새의 날개처럼 생긴 부재를 두 개 겹쳐 쌓은 이익공 형식으로 행궁 내 건물 중 가장 격식이 높다. 기단은 장방형으로 가공한 돌을 3단 쌓아 경사가급하고 평지가 협소한 약점을 보완하면서 동시에 장엄한 외관과 안정감을 주도록 하였다. 팔작지붕에는 용문양과 봉황문양의 막새기와를 사용하였다. 현재 내행전은 2002년에 중건되었다.

외행전(Lower palace, Oehaengjeon)

외행전은 하궐의 중심 건물로 인조 3년에 준공되었으며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상궐 내행전과 동일한 전체 28칸 건물이지만 바닥 면적이 내행전 보다 작고, 내행전에 비해 6m 정도 낮은 곳에 지었다. 병자호란 당시 왕이 병사들에게 음식을 베푸는 호궤를 이곳에서 행하였으며, 한봉에서 청나라 군이 홍이포를 쏘아 포환이 외행전 기둥을 맞추었다는 기록이 있다. 좌승당이 지어지기 전에는 광주부 유수의 집무실로 사용되었으며 현재 외행전은 2010년에 중건된 것으로, 발굴과정에서 통일신라 관련 유구들이 확인되어 건물지와 기와를 쌓은 곳 일부를 보존하고 있다.

한남루 (Pavilion Hannamnu)

한남루는 상, 하궐을 포괄하는 행궁 외곽 담장의 정문에 해당하는 행궁 외삼문의 누각이다. 정조 22년에 광주 유수 홍억이 행궁 입구에 한남루라는 누문을 대문으로 세웠으나 20세기 초반에 붕괴되었다. 한남루란 한강 남쪽 성진(城鎭)의 누대라는 뜻이며 프랑스 영사 프랑뎅(Hippolyte Frandin)이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2011년 같은 위치에 한남루를 복원하였다.

좌승당 (Local Administration facility, Jwaseungdang)

상궐 내행전의 북쪽, 담장의 밖에 있었던 좌승당은 광주부 유수의 집무용 건물로 순조 17년 광주부 유수 심상규가 건립하였다. 뜰로 나서면 좌우 문이 있는데 왼쪽문은 좌숙문이라 하여 북쪽 담밖으로 나무다리를 놓아서 통했다. 오른쪽 문은 의정문이라 하여 하궐 뒤로 통했다. 좌승이란 ‘앉아서도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발굴 조사 결과 건물의 기초부분이 잘 남아 있음이 확인되었고 정면 6칸, 측면 3칸으로 된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복원이 완료된 상태이다.

일장각 (Local Administration facility, Iljanggak)

일장각은 행궁 하궐에 있던 광주부 유수가 사용하던 건물이다. 일장각은 수어장대가 위치하고 있는 청량산의 다른 이름인 일장산을 건물의 이름으로 한 것이다. 하궐 내부담장 밖에 있었던 여러 건물 중 하나로써, 조 29년에 광주부 유수 이지연이 세운 건물이다. 1900년대에 촬영한 사진에서 일장각의 모습은 확인되지만 행궁지에 있었던 광주군 청사가 철거되는 과정에서 함께 철거된 것으로 보인다. 발굴조사 과정에서 건물지의 일부를 확인하였으며 현재 일장각은 2010년에 중건되었다.

정전(Royal ancestral Shrine, Jeongjeon)

정전은 조선 왕조 임금의 신위를 모신 건물로 영녕전과 구분하여 태묘라 부르기도 한다. 정전은 당시 재위하던 왕의 4대조와 조선시대 역대 왕 가운데 공덕이 있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지내는 곳이다.

영녕전 (Royal ancestral Shrine, Yeongnyeongjeon)

영녕전은 태조의 4대조와 정전에서 계속 모실 수 없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옮겨 모신 곳으로, 영년전의 제례는 정전보다 한 단계 낮게 행해졌다.

이위정 (Iwijeong Pavilion)

이위정은 좌승당 뒤편 후원에 2010년 중건되었다. 순조 17년 광주부 유수부 심상규가 활을 쏘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건축 당시에 지은 ‘이위정기以威亭記’가 탁본과 함께 「중정남한지重訂南漢志」에 그 내용이 전해지고 있는데, 기문은 심상규가 짓고 글씨는 추사 김정희가 썼다. ‘이위(以威)’란 ‘활로써 천하를 위압할 만하지만, 활과 화살이 아닌 인의와 충용으로써도 능히 천하를 위압할 수 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상세지도

남한산성 (Namhan Mountain Fortress, Namhansanseong) 국가사적 제57호

백제의 시조인 온조의 왕성이었다는 기록이 있고, 나당전쟁이 한창이던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한산주에 쌓은 ‘주장성’이라는 기록도 있다. 조선 인조 4년(1626)에 중앙부의 본성이 완성되었고 병자호란 이후 방어력을 높이기 위하여 동쪽의 봉암성, 한봉성 등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 증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서울에서 상대적으로 접근이 쉬운 입지에 산성 도시를 건설하여 백성과 함께 왕조가 대피할 수 있는 조선왕실의 보장처였다. 인조 14년에 청나라가 침략해오자 왕은 이곳으로 피신하여 47일이나 항전한 곳으로 유명하다. 일제강점기 의도적인 훼손과 상징성의 축소, 한국전쟁으로 인한 마을파괴에도 불구하고 발굴 작업 및 복원을 통하여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수어장대 (Command post in the west, Sueojangdae)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호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에서 지은 누각으로 남한산성에 있던 5개의 장대(동장대, 서장대, 남장대, 북장대, 외동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있다. 청량산 정상(해발 482m)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 안에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다. 하층은 정면 5칸, 측면 3칸, 상층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양식의 2층 누각이다. 지붕은 상하층 모두 겹처마루를 둘렀으며 사래 끝에는 토수를 달고 추녀마루에는 용두를 올렸으며 용마루에는 취두를 올렸다. 건물의 기둥은 높이 60cm의 팔각장주초석 위에 올려져있고, 포는 주심포 양식의 이출목 익공식이다. 영조 27년(1751) 2층 누각으로 증축하고 외부에 ‘수어장대(守禦將臺)’ 내부에 ‘무망루(無忘樓)’라고 편액을 제작하여 설치하였다.

숭렬전 (Shrine Sungryeoljeon)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호

백제의 시조 온조왕과 산성축성 당시 책임자였던 이서 장군의 영혼을 모신 사당으로 매년 음력 9월 5일 광주 유도회에서 제를 지낸다. 인조 16년(1638)에 지었으며 정조 19년(1795)에 왕이 ‘숭렬전(崇烈殿)’이라 이름을 지어 내려주었다. 신분이 다른 왕과 신하를 하께 모신 것이 특이한데 이는 병자호란 당시 인조의 꿈과 관련이 있다. 본당은 좌우측에 아래 단이 둥근 형태를 한 방풍벽을 갖은 맞배지붕 형식을 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이다. 내부의 천정은 연등 천정으로 하였다. 2동의 부속 건물은 맞배지붕으로 방풍판이 없는 대신 측면에도 창을 내지 않고 회벽을 도리까지 올려 바람과 비를 막았다.

청량당(Shrine Cheongryangdang)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3호

남한산성 동남쪽 축성의 책임자로서 억울한 모함으로 교수형을 당했던 이회의 원혼을 달리기 위하여 건립한 사당이라고 전해온다. ‘대감당’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남한산성을 ‘청량산’이라고 불렀던데서 기인하여 공식적으로 ‘청량당’이라고 칭한다. 이회장군과 그의 처첩, 벽암대사의 초상화가 안치되어 있다. 청량당은 서장대 서편 1단을 내려서 지어져 있다. 사당은 2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본당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를 두른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건물의 가구는 굴도리식이며 주심포 양식의 기둥을 하고 있다. 본당의 중앙에는 4쪽 여닫이 격자문을 달고 좌, 우측 칸에는 높이 175cm에 정면과 측면에 창문을 각각 내었다.

현절사 (Shrine Hyeonjeolsa)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4호

병자호란 때 적에게 항복하기를 끝까지 반대했던 홍익한, 윤집, 오달제 등 삼학사의 우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청나라에 강제로 끌려가 곤욕 끝에 참형을 당한 삼학사의 영령을 위로하고자 숙종 14년(1688) 유수 이세백의 주도로 세워졌으며 후에 김상헌, 정온의 위패도 함께 모셔졌다. 죽어서도 임금을 향한 강직한 선비정신의 상징적 건물로 여겨진다. 지붕 양식은 홑처마를 두른 맞배지붕이며 이출목 이익공의 주심포 형식이며 본당 좌우의 방풍막은 아래를 직선으로 자르고 있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크기이며 정면 각 칸에는 4쪽의 여닫이 격자문을 달았다.

침괘정 (Arsenal Chimgwejeong)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5호

무기제작소라 알려져 왔으나 온돌과 마루방, 회랑처럼 된 툇마루 등 건물 구조로 보아 집무실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건물은 영조 27년(1751)에 광주유수 이기진이 고쳐 짓고 ‘침괘정’이라 명명하였다. ‘枕戈'(침과)란 戈,즉 ‘창을 베개삼는다’는 뜻이다. 현재는 침괘정으로 통용되고 있으나 정확한 표기는 ‘침과정’ 이 옳다. 왜냐하면 ‘戈’ 는 ‘괘’ 로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지의 호칭대로 적는 지명관례상 ‘침괘정’ 이라 표기 하였다. 화약을 찧었던 돌절구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무기제작소의 사무를 관장하던 곳으로 추정된다.

연무관 (Martial Arts Training Hall, Yeonmugwan)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6호

군사들의 훈련을 위하여 건립한 곳으로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쌓을 때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연무관은 규모가 크고 육중하여 높은 기단 위에 자리 잡고 있어 멀리서도 그 자태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건물 내부 가운데에 있는 대들보에는 전, 후면에 용을 그렸고 측면 쪽 대들보에는 봉황을 그려 넣은 것이 특이하다. 연무관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비교적 규모가 크고 높이가 높은 육중한 건물로서 멀리서도 그 자태를 알아 볼 수 있을 정도인데 정면 쪽은 2단의 기단을 축조한 이중 기단 형태이다. 이중 기단의 중앙에는 화강석 계단을 1개소 놓았다.

지수당 (Pavilion Jisudang)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 14호

현종 13년(1672)에 부윤 이세화가 건립한 정자로 건립 당시에는 정자를 중심으로 앞뒤에 3개의 연못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2개만 남아 있다. 정자의 동쪽에는 부윤 이세화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고 제3연못지로 추정되는 지역은 현재 논으로 바뀌어 있다. 지붕의 양식은 홑처마를 두른 팔작지붕이다. 정자 크기는 정면과 측면이 각각 3칸으로 되어 있으나 측면의 1칸은 반칸 크기로 되어 건물의 평면은 장방형 꼴을 이룬다.

장경사 (Temple Janggyeongsa)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 15호

인조 2년(1624)에 남한산성을 고쳐 쌓을 때 승려 벽암각성을 팔도 도총섭으로 삼고 전국의 승려들을 번갈아 징집하여 성을 쌓게 하였다. 축성 후에도 승군을 주둔 시켰는데 이들의 숙식을 위하여 인조 16년(1638)에 건립한 절이다. 이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1칸으로 되어 있는데 앞으로는 짧은 툇마루를 내었으며 2쪽 미닫이 卍자문을 달았다. 요사는 홑처마를 두른 맞배지붕 양식의 지붕에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건물이다. 산신각은 홑처마를 두른 맞배지붕 양식으로 좌우에는 밑이 둥근 바람막이를 하였다. 건물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규모인데 정면 2칸에는 2쪽 여닫이 卍자문을 달았다. 현재 장경사만이 유일하게 옛 모습이 남아 있다.

망월사 (Temle mangwolsa) 경기도 기념물 제 111호

남한산성 내에 있는 10개의 사찰 중 가장 역사가 깊은 사찰로 망월암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사찰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한양에 있었던 장의사를 허물고 그곳에 있던 불상, 금자화엄경 등을 옮겨 창건하였다. 옛 망월사는 일제에 의하여 모두 소실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이후에 복원된 것이다. 옛 망월사는 일제에 의하여 모두 소실되었고 4종의 복원된 건물의 규모가 옛터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대웅전, 금당, 요사체 2동, 13층 적멸보궁탑과 병풍석은 망월사의 자랑이다. 망월사의 돌축대는 옛 망월사의 규모와 건물의 배치를 대략 짐작할 수 있게 하며 대형 맷돌이 유물로 보존되어 있다.

개원사 (Temple Gaweonsa) 경기도 기념물 제 119호

남한산성을 보수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승려들을 총지휘하는 본영사찰로 건립되었다. 고종31(1894) 갑오경장으로 의승방번제가 폐지될 때까지 번창하였다. 1907년 일제에 의해 소실되고 1976년 새로 지어 현재의 모습으로 유지하고 있다. 원래 군기고지, 누각지, 종각지 등에는 주춧돌이 남아있어 개원사의 규모와 건물의 배치를 짐작케 한다. 또한 이 사찰에는 남한산성 축성과 산성 수호승군들이 사용했던 유분 1점과 석장, 옹기 함지 등의 유물이 보존되어 있어서 번창했던 사찰의 영광을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