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SCO World Heritage
Namhansanseong in Gyeonggi-do

경기도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남한산성 소개

최종 수정일 : 2022-08-26 15:52

신라시대 남한산성 사진

신라가 주장성을 쌓은 시기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후 당과 투쟁에 들어가는 시기이며 특히 문무왕 12년에는 “한산에 주장성을 쌓았는데 둘레가 4,360보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신라를 도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는 당초의 약속을 어기고 한반도 지배야욕을 드러내게 된다. 이에 대하여 신라는 물러서지 않고 임진강유역과 서해안 일대에서 본격적으로 당나라와 전쟁을 수행하는 한편, 한강유역을 방어하기 위하여 한산에 주장성을 축조하였다.
주장성은 당시 신라가 쌓은 성 중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신라가 한강유역을 장악한 이후 한산이라고 불린 지역은 한강 이남의 광주·하남에 해당된다.
당시의 한산지역에 남아있는 산성으로는 남한산성이 있고, 북쪽으로 5km 지점에 이성산성(둘레 1,653m)이 있으며, 서쪽으로 9km 지점에는 대모산성(둘레 567m)이 있을 뿐이다. 남한산성을 제외하고는 둘레가 4,360보에 달하는 성은 주변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각종 문헌에 보이는 주장성의 규모를 살펴보면 먼저 『삼국사기』에는 성의 둘레가 4,360보라고 하였다. 보통 1보는 6척으로 환산되므로 삼국사기가 발간된 당시의 척도를 송척(1척=31cm)이라고 한다면 주장성의 전체 둘레는 4,360보X6척X31cm로 8,109.6m에 달한다. 이는 최근 측량을 통하여 밝혀진 옹성을 제외한 남한산성 원성의 수평거리 7,545m와 비교할 때 성벽의 고저차를 감안하면 거의 비슷한 규모임을 알 수 있다.

신라시대 남한산성 사진2

인조대의 축성시 “옛 터를 따라 남한산성을 다시 쌓게 하였다”는 남한지의 기록내용은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한다.
반면 조선 초기의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주장성의 규모를 3,993보라고 기록하고 있다. 세종대의 영조척은 한자가 31.2cm이므로 성 둘레는 7,475m이다. 『삼국사기』의 보계치에 비해 600m 정도 차이가 있다. 이후 17세기 들어 인조대에 개축한 남한산성의 규모는 6,297보이다.
이는 주척으로 계측한 것이며, 주척의 길이를 21.5cm로 할 때 전체 둘레는 8,123m에 달한다.
이것은 선조때에 포백척으로 17,400척이라 한것과 비교하면 포백척의 단위길이를 46.73cm로 하면 전체 둘레는 8,131m로서 주척으로 환산한 보계치와 거의 같다. 이러한 기록자료를 통해 볼 때 신라 주장성은 인조때에 수축한 남한산성의 원성과 거의 같은 규모였음을 알 수 있다.